방역 대신 관료주의 유지 수단 변질
3년간의 통제에 지친 시민들 거리로
NYT "중국인들 반골기질 깨어났다"
내년초 양회 전 경제성과 다급한 정부
오미크론 저위험성 명분삼아 규제 완화
방역정책 실패 외면한채 시위 잠재우기
【파이낸셜뉴스 베이징=정지우 특파원】이른바 '백지 시위'에 화들짝 놀란 중국 시진핑 집권 3기가 '오미크론 변이 저위험성 확인'을 명분으로 사실상 위드코로나로 전환을 선언했다. 방역 완화가 시위에 굴복한 모양새를 취하지 않으면서도 중국 특색 방역정책인 제로코로나의 성과 주장은 그대로 고집하려는 속내로 이해된다.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지 않으면 내년 3월로 예정된 양회(전국인민대표대회·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의 성공은 장담할 수 없다. 양회는 새 지도부의 공식 출발점이다.
■3년의 통제에 지친 시민 '거리로'
제로코로나는 시 주석의 최대 치적 중 하나로 꼽힌다. 시 주석은 코로나19 첫해인 2020년 이미 코로나와 전쟁에서 승리를 선포했다. 올해 가을 20차 전국대표대회(당 대회) 이전에도 중국식 방역의 효과를 자화자찬하며 3연임 명분으로 만들어왔다. 리창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이 상하이 당서기 시절인 올해 4월 인구 2500만 도시 상하이를 65일간 봉쇄해 중국 경제를 반 토막 내놓고도 최고지도부에 올라설 수 있었던 것 역시 제로코로나 정책에 대한 중국 공산당의 확고한 의지가 반영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러나 지나친 통제로 인해 사실상 방역보다는 사회 통제용 혹은 관료주의 유지, 돈벌이용 수단으로 변질됐다는 불만도 터져 나왔다. 파산한 은행이 고객의 항의를 차단하기 위해 지방정부와 짜고 건강코드를 조작했다. 핵산(PCR) 검사업체가 수익 극대화 차원에서 일부러 감염자를 만들다가 여론의 뭇매와 함께 당국의 조사를 받기도 했다.
지방정부나 지역의 방역 관계자들은 정밀 방역을 골자로 한 중앙정부의 20개 완화 조치를 귓등으로 듣는 모습이 여기저기서 포착됐다.
중앙정부가 연일 불필요한 통제 금지를 지시해도 베이징, 광저우, 정저우 등의 공장과 기업은 문을 닫았다. 학교 수업은 중단, 대학은 폐쇄됐으며 주민들은 최소 수일 동안 집안에 갇혔다. 일본 노무라증권은 지난달 말 기준 중국 전역에서 도시 봉쇄는 49개 도시, 이동제한 대상자는 약 4억1200만명에 달한다고 전했다.
하지만 3년의 지속적인 통제에 시민들의 인내심도 한계에 도달했다. 전국 각지에서 시민들은 거리로 나섰고 대학교, 공장 등에서도 외침이 잇따랐다. 대만 자유시보는 해외까지 포함해 175개 대학이 시위에 동참하고 있다고 전했다.
당 대회를 이틀 앞둔 지난 10월 13일 베이징의 한 고가도로에 내걸린 '핵산 말고 밥을 달라' '시진핑 파면' 등을 쓴 현수막이 사실상 불씨가 됐다. 곧바로 상하이에선 젊은 여성 두 명이 '원치 않는다(不要), 원한다(要)'는 글씨만 적힌 현수막으로 베이징 시위를 지지했다. 당사자들은 모두 체포됐으나 영웅으로 불렸다.
신장위구르 우루무치 화재 참사와 카타르 월드컵 노마스크 관중 영상은 분노의 불꽃에 기름을 끼얹었다. 뉴욕타임스(NYT)는 시진핑 주석 통치 10년간 시들어 버린 것으로 보였던 중국인들의 반골 기질이 코로나19 봉쇄에 반대하는 시위를 계기로 다시 깨어나고 있다고 진단했다.
■놀란 中 정부, 외세 탓
중국정부의 놀란 모습이 역력했다. 격리 해체, 봉쇄 완화를 부랴부랴 꺼내는 지방정부가 잇따랐다. 중국 고위직 중 방역을 담당하는 쑨춘란 부총리는 지난달 31일 "오미크론 변이의 병원성이 낮다"고 처음으로 인정했다.
급기야 권력의 정점인 시 주석은 지난 1일 샤를 미셀 유럽연합(EU) 상임의장과 만난 자리에서 코로나19 기존 변이보다 덜 치명적인 오미크론 변이가 확산하고 있어 봉쇄 규정 완화가 가능할 수도 있음을 시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도 중국 정부 입장에선 시위에 굴복했다는 인상을 남겨줘서는 안 된다. 이는 '뭉쳐서 외치면 통한다'는 시그널을 시민들에게 줄 수 있다. 오미크론 변이의 저위험성을 언급한 것도 시위 대신, 내세운 방역 완화의 명분으로 읽힌다. 중국 정부와 관영 매체는 시위가 벌어졌다는 사실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공교롭게 중국의 3대 정파 중 하나인 '상하이방'의 수장 장쩌민 전 국가주석이 사망했다. 1989년 톈안먼 사태 때도 후야오방 전 총서기 사망을 계기로 시민에게 결집 장소가 제공되면서 일파만파로 확대됐다는 역사적 사실이 중국 지도부 머릿속에 오버랩 됐을 가능성이 있다. 당국은 이번에는 시민의 조문이나 추모식을 허락하지 않고 있다.
중국 정부가 돌파구로 꺼내든 것은 외국 세력이다. 적대세력이 침투해 사회질서를 교란하고 있다는 것이다. 공안 당국이 각국 대사관과 밀접한 량마차오루나 르탄공원 일대에 병력을 대거 투입해 삼엄한 경계 태세를 유지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면서 위법·범법 행위 결연한 단속을 언급, 향후 강력 진압 방침을 분명히 했다. 홍콩 민주화 시위 때와 흐름이 유사하다.
■'오미크론 저위험성' 출구전략
종합하면 오미크론 저위험성을 내세운 점진적 위드코로나 전환으로 시위 명분은 없애고 제로코로나 실패는 인정하지 않아도 된다. 향후 반발 세력이 등장하면 외국 세력을 구실로 내란 혹은 국가전복 혐의를 적용해 처벌할 수도 있다.
나락으로 추락한 경제를 되살릴 기회도 된다. 제로코로나 3년 동안 파산하는 부동산 업체들이 속출했다. 지방정부는 공사 대금이나 핵산검사 비용을 주지 못할 정도로 재정 상황이 나빠졌다. 수입이 줄어든 자영업자, 근로자 등은 소비(중국 경제성장률 기여율 64%)를 포기하고 저축을 선택했다.
시장에 돈이 돌지 못하면서 경제 주체되는 연쇄 충격을 받고 있다. 올해 연간 경제성장률 목표치 5.5%는 불가능하다는 게 중국 안팎의 판단이다.
중국 최대 정치 이벤트 양회는 시 주석 집권 3기 출범과 마찬가지로 성공 개최가 담보돼야 한다. 내부 결집이 완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새로운 최고 지도체계가 시작되는 것은 향후 정권을 유지하는데 부담이 될 수 있다. 전년도 경제 성과와 제로코로나 업적은 이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핵심 요소로 꼽힌다. 주요 외신들은 한 해 경제 성과와 내년 목표의 줄기를 잡는 중앙경제공작회의를 통해 올해 방역 성과를 자화자찬하면서 2023년 정책 기조를 친성장으로 정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중앙경제공장회의는 내년 양회 이전인 12월 중순에 미리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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