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학대 예방의날’ 현주소는
서울 25區중 6곳, 전담인력 2명
7곳은 ‘1인당 업무권고기준’ 초과
자치구별 배치인력 편차도 커
인력부족·업무고충 스트레스 토로
조직 내 ‘기피 부서’ 분위기 만연
“팀원은 두 명인데 현장 업무와 행정 업무를 모두 소화해요. 제시간에 퇴근하지 못해 매일 밤까지 일합니다.”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제16회 아동학대 예방의 날을 하루 앞둔 18일, 헤럴드경제가 만난 서울의 한 구청 소속 아동학대전담공무원 A씨는 이같이 토로했다. 올해 초 일을 시작한 후 살인적인 업무 강도에 매일 과로에 시달린다고 한다. 밤낮없이 들어오는 학대 신고를 아동학대전담공무원 두 명이서 모두 담당하기 때문이다.
A씨는 “야간에도 신고 전화가 올 수 있어 자리를 비우면 안 된다. 일손이 부족한 나머지 아동보호전문기관과 협업해서 당직을 돌고 있을 정도”라고 토로했다.
정부가 아동학대 대응을 위해 아동학대전담공무원을 도입했지만, 서울 자치구 4곳 중 1곳은 전담인력이 2명에 그치는 등 인력 부족이 심각한 것으로 확인됐다. 현장에서 인력에 비해 근무 강도가 과도하다고 한목소리로 호소하는 가운데, 과도한 업무 강도로 인해 조직 내에선 아동학대전담공무원을 기피하는 분위기가 만연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날 본지가 서울시에서 제공받은 서울시 자치구별 아동학대전담공무원 현황에 따르면, 올해 9월 기준 서울시 아동학대전담공무원은 총 96명으로 파악됐다. 또 25개 자치구 중 아동학대전담공무원이 10명이 넘는 자치구는 전무한 것으로 확인됐다.
자치구별 배치인력 격차도 큰 편이다. 자치구들 중 아동학대전담공무원이 가장 많은 서울 강서구청이 9명을 두고 있는 반면, 관악구·동대문구·성동구·용산구·종로구·중구(가나다순) 등 6개 자치구는 2명에 불과했다. 자치구 4곳 중 1곳은 아동학대전담공무원이 2명뿐인 셈이다.
전국적으로 보더라도 인력 부족은 심각했다. 보건복지부는 아동학대 의심사례 50건당 아동학대전담공무원 1명을 배치할 것을 권고하고 있지만, 17개 시·도 중 1인당 업무량이 복지부 권고기준을 초과하는 지역은 7곳이나 됐다.
복지부로부터 받은 ‘아동학대전담공무원 시도별 배치현황 및 1인당 담당 건수’에 따르면, 세종시는 1인당 84건(9월 기준)의 사례를 맡아 가장 많았다. 세종시의 최근 3년간(2019~2021년) 아동학대 의심사례건수는 연 평균 337건으로 전국에서 가장 낮은 수준이다. 그러나 전담인력이 4명뿐인 탓에 1인당 할당 업무량은 전국에서 가장 많게 됐다.
세종시 다음으론 ▷제주(70건) ▷경기(63건) ▷대전·인천(62건) ▷울산·충북(55건) 순으로 1인당 담당 사례건수가 권고기준을 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아동학대전담공무원들은 신고접수를 바탕으로 ▷아동학대 현장조사 및 학대여부 판단 ▷분리보호 결정 및 아동학대행위자에 대한 고발조치 ▷피해아동보호계획 수립 ▷피해아동 보호 사례회의 참여 ▷아동보호전문기관과 협의를 통해 사례관리 종결 등을 수행한다.
하지만 지자체에 배정된 인원만으론 이 같은 업무를 모두 소화하기 어렵다는 게 아동학대전담공무원의 공통된 의견이다. 통상 신고접수부터 사례관리까지 두 달 이상의 시간이 걸리는 데다, 사건을 조치하는 와중에도 새로운 신고가 수없이 들어온다는 지적이다.
서울 한 자치구 아동학대전담공무원으로 일하는 B씨는 “통상 아동학대 신고가 들어오면 2인 1조로 조사를 나가지만 부서에 전담 공무원이 둘 뿐이면 한 사람은 언제 들어올지 모를 신고를 받기 위해 (사무실에) 남아 있어야 한다. 인력 보충이 무엇보다 가장 시급한 이유”라고 강조했다.
공무원 체계상 순환 보직으로 운영되는 점도 아동학대를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어려운 점으로 지목됐다. 김미숙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박사는 “공무원들은 통상 1~2년마다 보직이 바뀌기 때문에 전문성을 기르는 데 한계가 있다. 아동학대 신고를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어려운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공공의 영역에서 아동학대를 대응하고 있어도 구청 공무원에 대해 비협조적인 가해자들이 많은 점도 근무를 어렵게 한다. A씨는 “사법권을 가진 경찰과 달리 (우리는) 구청 공무원이라서 협조 요청을 해도 학대 부모들이 좀처럼 연락을 받지 않는다”며 “업무에 따라 보호조치나 응급조치를 취하면 ‘너가 뭔데 우리 가정에 끼어드냐’며 민원을 넣거나, 심지어 고소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숨을 쉬었다.
부족한 인력, 험난한 현장 대응으로 인해 아동학대전담공무원이 소속된 팀은 구청 공무원들 사이에서 ‘험지’라고 불린다. 공무원 특성상 보직을 순환해야하지만, 해당 부서로 희망하는 사람들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 현장의 목소리다. 이에 대해 A씨는 “워낙 아동학대대응팀이 ‘험지’로 알려져 주변 부서에서도 기피하려는 분위기가 역력하다”고 털어놨다.
김영철 기자
yckim6452@heraldcorp.com
Copyright ⓒ 헤럴드경제 All Rights Reserved.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