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법알 사건번호 111] 아이 앞에서 엄마 때리고, 밥 억지로 먹이고…정서적 학대 수사·재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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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살과 7살짜리 아이들이 엄마와 함께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타려 합니다. 이웃 한 명이 이들을 발견한 뒤, 엘리베이터를 함께 탑니다. 그리고 이 이웃은 다소 격하게 층간 소음 문제를 따지기 시작하죠.
아이들 엄마에게 "너는 왜 집에서 놀면서 애들을 이따위로 보느냐"고 하더니, 아이들에게도 얼굴을 들이밀며 "너 요즘 왜 이렇게 시끄러워?"하며 캐묻습니다. 엄마가 아이들을 데리고 엘리베이터 밖으로 나가려고 하자, 문을 막고 엄마를 밀치기도 합니다. 자리를 떠나려는 세 사람을 끝까지 따라가 아이에게 "너 똑바로 들어라, 지금 너 얘기한 거다"라고 무섭게 이야기했다고 합니다. 엄마를 한 차례 더 벽으로 밀치자, 아이들은 공포에 질려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아이들은 이 사건으로 인한 급성 스트레스 장애 등으로 우울, 불안, 불면 증세를 겪었다고 합니다. 약물치료와 상담 치료를 받는 등 사건 이후에도 공포심을 호소했죠. 이 이웃 A씨는 엄마에 대한 폭행 혐의로 벌금 200만원의 약식명령이 확정됐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에 대한 아동 학대 혐의로도 재판에 넘겨졌죠. 타이들의 정신건강과 발달에 해를 끼치는 '정서적 학대' 행위를 했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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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법령은?
아동복지법 제17조는 '아동의 정신건강 및 발달에 해를 끼치는 정서적 학대행위'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대법원은 법에서 규정하는 '정서적 학대'를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르면 아동의 정신건강과 정상적인 발달을 현실적으로 저해한 경우뿐 아니라, 이를 초래할 위험이나 가능성만이 발생한 경우도 포함합니다.
학대 목적이나 의도가 반드시 증명돼야만 하는 것도 아닙니다. 대법원은 피고인이 자신의 행위로 인해 아동의 정신건강과 발달을 저해하는 결과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을 인식했다면, 정서적 학대 혐의를 인정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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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판단은?
법원은 A씨가 아이들에 대해 아동복지법상 정서적 학대를 저질렀다고 판단했습니다. 지난해 1심에서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이 선고됐고, 이는 2심과 3심에서도 바뀌지 않았죠. 18일 대법원 2부(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A씨의 상고를 기각했다고 밝혔습니다.
A씨는 재판 과정에서 "아동학대에 해당하지 않고, 고의도 없었다"고 주장했습니다. "층간소음에 항의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이라 사회상규에 반하지 않는 정당한 행위"라고도 했죠.
그러나 1심 재판부는 경위가 어떻든, A씨가 적극적으로 아이들 엄마에게 싸움을 걸고 밀치는 행동 등을 한 것은 정서적 학대가 맞는다고 봤습니다. 대법원 판례에 비춰봤을 때, A씨에게는 아이들이 정서적으로 극심한 고통을 받을 것이라는 점을 인식할 수 있다는 거죠.
엄마가 폭행을 당한 모습을 본 아이들은 A씨가 언제든지 자신들에게도 위해를 가할지도 모른다는 극도의 불안과 두려움을 느꼈을 것으로 보인다고 했습니다. "무조건 의지해야 하는 어머니가 자신들이 일으킨 층간소음으로 폭행당한 것을 목격하면서 극심한 자책감과 정신적 고통을 받았을 것"이라고도 짐작했죠. A씨가 아이들에게 억압적인 말을 한 것, 엘리베이터 바깥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막은 것 모두 정서적 학대 행위가 맞는다고 했습니다.
A씨의 혐의가 인정된 데에는 엘리베이터 CCTV 화면 캡쳐 증거가 결정적이었습니다. 그런데 해당 아파트의 CCTV는 녹음까지 된다고 하는데요. A씨 측은 '영상정보처리기기 운영자는 녹음기능은 사용할 수 없다'는 개인정보 보호법 조항 등을 들어 이를 지적했습니다. 위법한 영상물을 캡쳐했으니, 이를 캡쳐한 자료에는 증거능력이 없다고요.
그러나 1심과 2심 재판부는 "아파트 관리사무소가 설치한 CCTV 촬영물 중 소리를 제외한 화면을 캡쳐한 것에 불과하므로 위법성이 없다"고 했습니다. 아이들이 수사기관에서부터 법정에까지 일관되고 구체적인 진술을 한 점도 재판부는 고려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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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서적 학대 신고해도 CCTV 없으면 무용…경찰 “진술뿐인데 왜 신고”
이슬이(가명)가 피해 사실을 호소하며 쓴 메모. 보호자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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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서적 학대는 수사관들의 눈앞에 상처가 드러나지 않아서일까요? 앞선 사건에서처럼 CCTV와 같은 증거가 없다면, 수사에 난항을 겪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지난해 8월, 여섯 살 이슬이(가명) 엄마는 인형 놀이를 하던 아이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새로 산 장난감 식판을 갖고 놀던 아이가 대뜸 "먹어!"라며 소리를 질렀기 때문입니다. 이슬이는 지난해 2월까지 유치원 담임을 맡았던 선생님이 입을 억지로 벌리고 소리를 지르며 먹기 싫은 음식을 강제로 먹였다고 엄마에게 털어놨습니다. 엄마는 바로 경찰을 찾았습니다.
당시 해바라기센터에서 이슬이는 "선생님이 밥과 김치, 부추, 고기를 모두 섞어 숟가락으로 억지로 먹였다"며 구체적인 진술을 이어갔습니다. "억지로 먹이는 게 제일 싫다", "더 이상 못 먹어서 화장실로 달려가 뱉었다"라고도 했죠.
당시 담임 선생님을 유치원에서 만날 때면 "또 소리칠까 봐 걱정되고 떨린다", "심장이 움직인다"고 했습니다. "선생님이 사과했으면 좋겠다"라고도 합니다.
8월에 처음으로 이 사실을 알린 이슬이는 집에서도 자주 이 일을 이야기합니다. 이슬이 엄마가 녹음한 파일에 따르면 몇 달이 지나도 아픔을 호소하고 있는데요. 현재 이슬이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진단을 받아 치료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슬 "나는 이제 점점 아무리 힘을 줘도 다해봐도 부서지지가 않아"
엄마 "뭐가?"
이슬 "아무리 해봐도 그 기억이 부서지지가 않아"
엄마 "어떻게 해줘야 할까, 어떤 기억?"
이슬 "억지로 먹였던 기억"
엄마 "억지로 먹일 땐 그냥 먹여주는 것과는 받아들이기가 많이 달랐어?"
이슬 "너무 힘들어. 그냥 김치를 올려서만 줄 땐 맛있는데, 막 넣을 때는 조금 힘들어"
전문가들은 이슬이가 정서적 학대를 당한 것이 맞다고 평가합니다. 임현택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 회장은 "선생님이 음식을 떠먹이는 나이가 훨씬 지났는데도 폭압적으로 먹이는 것은 아이를 학대하는 것"이라며 "아이가 섭식 장애 등의 후유증을 겪을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당시 정신적 충격이 뇌에 생생하게 새겨져 있어 구체적이고 일관적으로 진술할 수 있는 것"이라고도 했죠. 임 회장은 부모가 사실관계를 묻는 말에 이슬이가 '아니다' 싶으면 바로 부인하는 점을 주목해, 진술의 신빙성을 특히 높게 평가하기도 했습니다.
이슬이(가명)가 피해 사실을 호소하며 쓴 메모. 보호자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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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아직 이 사건은 여전히 수사 중입니다. 경찰의 초동 수사가 지연된 탓에 CCTV나 목격자 진술 같은 증거 수집에 실패한 때문입니다.
이슬이 엄마는 경찰 신고 당시 CCTV 확보를 요청했는데, 수사팀은 두 달 뒤 확보에 나서 사건 발생이 추정되는 시점의 영상은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이슬이 엄마는 "사건을 목격한 아이, 이슬이가 힘듦을 호소한 다른 선생님을 조사해 달라"고도 했지만, 수사팀이 이들을 조사하는 데 6~7개월의 시간이 더 걸렸습니다. 시간이 너무 지난 뒤라 진술을 부담스러워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수사관이 "이슬이 진술만으로 처벌하기 어려운데 신고한 이유가 무엇이냐"고 말했다고도 합니다. 경찰은 결국 증거불충분 의견을 달아 검찰에 사건을 넘겼고, 검찰이 사건을 수사 중입니다.
이에 이슬이 엄마는 사건을 담당한 경찰 수사관들을 직무유기로 고소한 상태입니다. 국민권익위원회는 앞서 해당 수사관들이 수사 진행 상황을 통지해야 하는 규정을 지키지 않았다고 보고, 시정을 권고하기도 했습니다.
오선희 변호사(법무법인 혜명)는 "아동학대 사건 수사는 지나치게 CCTV에 의존하는 측면이 있다"며 "아동 대상 범죄의 특성을 이해하는 개별 수사관의 역량에 따라 사건 처리 결과가 달라지는 게 현실"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지난해 10월 관할 구청이 아동학대 판단 회의를 열어 "억지로 음식을 먹였다면 그 당시에 아이에게 증상이 나타났어야 한다"며 학대가 아니라고 결론을 내린 과정도 석연찮습니다. 이슬이 엄마는 "당시 회의에서 이슬이의 해바라기센터 진술 기록조차 들여다보지 않았다"며 문제 삼고 있습니다.
CCTV가 없는 정서적 아동 학대 사건 수사는 1년 넘게 이렇게 흘러왔습니다. 어느새 이슬이에게는 초등학교 입학도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슬이 엄마는 "아이 인생의 첫 선생님으로부터 이런 기억이 생겼다"며 안타까워합니다. 이슬이는 최근에도 PTSD 치료 센터에 다녀왔는데요. 놀이 치료 시간마다 이슬이가 자꾸 인형들을 치료하거나 약을 지어주는 행동을 한다고 합니다.
■ 그법알
‘그 법’을 콕 집어 알려드립니다. 어려워서 다가가기 힘든 법률 세상을 우리 생활 주변의 사건 이야기로 알기 쉽게 풀어드립니다. 함께 고민해 볼만한 법적 쟁점과 사회 변화로 달라지는 새로운 법률 해석도 발 빠르게 전달하겠습니다.
오효정 기자 oh.hyo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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