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킹법 없던 시절 판례…법조계 "바뀐 국민 법 감정과 안 맞아"
전화통화 |
(인천=연합뉴스) 손현규 기자 = 집요하게 전화를 했더라도 상대방이 받지 않았다면 스토킹법으로 처벌할 수 없다는 법원 판결을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스토킹법이 없던 시기의 오래된 판례를 적용한 이번 판결은 그동안 변화한 국민 법 감정과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7일 법조계에 따르면 최근 인천지법 형사9단독 정희영 판사는 스토킹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A(54·남)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A씨는 지난 3월 26일부터 6월 3일까지 전 연인 B씨에게 반복해서 전화를 걸어 스토킹한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그는 주로 자신의 휴대전화 번호가 상대방에게 노출되지 않는 '발신 표시 제한' 기능을 이용해 전화를 걸었고, 영상 통화를 시도하기도 했다. 하루에 4시간 동안 10차례 연속으로 전화를 건 적도 있었지만, B씨는 아예 받지 않았다.
그러나 법원은 계속 전화했는데도 상대방이 받지 않아 벨 소리만 울렸다면 스토킹법으로 처벌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정 판사는 그 근거로 17년 전인 2005년 선고한 대법원 판례를 들었다. 당시는 스토킹법이 없어 정보통신망 이용 촉진 및 정보 보호 등에 관한 법률로 반복된 전화 등 스토킹과 유사한 행위를 처벌하던 시기였다.
정보통신망법 44조 7 '불법 정보의 유통금지 등' 조항에 따르면 누구든지 정보통신망을 통해 공포심이나 불안감을 유발하는 부호·문언·음향·화상·영상을 반복적으로 상대방에게 도달하게 해서는 안 된다.
당시 대법원은 "상대방 전화기에 울리는 '벨 소리'는 정보통신망을 이용해 송신된 음향이 아니다"라며 "반복된 벨 소리로 상대방에게 공포심이나 불안감을 줬더라도 법 위반이 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스토킹 (CG) |
정 판사는 이 대법원 판례에 더해 "'부재중 전화'가 표시됐더라도 이는 휴대전화 자체 기능에서 나오는 표시에 불과하다"며 "A씨가 B씨에게 도달하게 한 부호에 해당한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해석했다.
그러나 법조계 안팎에서는 이번 판결이 스토킹법과 유사한 법 조항의 오래된 판례에 근거한 탓에 지난해 10월부터 시행한 스토킹법의 취지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이명숙 한국여성아동인권센터 대표 변호사는 "스토킹법 2조 다항은 '반복해서 전화를 상대방에게 도달하게 하는 행위'를 스토킹으로 규정하고 있어 이번 사건의 피의자도 얼마든지 처벌할 수 있다"며 "이번 판결은 스토킹법의 취지에 맞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반면 전화가 아닌 문자메시지의 경우 상대방이 읽지 않았더라도 반복해서 보내 불안감이나 공포심을 줬다며 발신자를 처벌한 사례가 있다.
2018년 대법원은 "'도달'을 상대방이 직접 접하는 경우뿐 아니라 객관적으로 이를 인식할 수 있는 상태에 두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그러면서 "상대방이 별다른 제한 없이 문자메시지를 바로 접할 수 있는 상태였다면 문자메시지 확인 여부와는 상관없이 공포심이나 불안감을 유발하는 문언을 상대방에게 도달하게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인천 한 법무법인 소속 변호사는 "보통 스토킹 피해자들이 전화를 받지 않는 이유는 불안감이나 공포심을 느끼기 때문"이라며 "이번 판결은 '전화 스토킹'을 처벌하려면 피해자가 전화를 꼭 받으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2005년 선고한 대법 판례를 근거로 한 이번 판결은 그동안 스토킹 범죄를 강력하게 처벌하기 위해 관련 법까지 만든 지금의 국민 법 감정을 전혀 반영하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so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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