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리포트]백신공화국, 무엇을 남겼나④
코로나19 백신 접종 수요가 떨어지면서 개발 제약사와 정부의 고민이 깊어진다. 화이자는 수요 급감에 대비해 단가를 높인다. 정부는 지난해 백신 도입을 위해 치열하게 협상을 벌였던 것과 달리, 남은 백신 처리라는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 폐기 외에는 뾰족한 방안이 없는 상황이다. '백신 신화'가 열병처럼 지나간 뒤 남은 숙제 중 하나다.
1일 제약·바이오 업계에 따르면 화이자는 코로나19 백신 1회분 가격을 기존 30달러에서 내년 1분기까지 110~130달러로 인상하기로 했다. 향후 코로나19 백신 수요가 감소할 것에 따른 조치다. 앞서 의학 저널 '뉴잉글랜드저널오브메디신(NEJM)'은 코로나19 부스터샷이 매년 1회 이하로 권장돼야 한다는 논문을 발표했다.
수요 감소는 백신 폐기로 이어진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지난 달 24일 0시 기준 국내에서 코로나19 백신은 누적 826만회 분량이 폐기됐다. 폐기 백신의 99.4%(822만회분)는 유효기간·사용 가능 기간이 지났다는 이유로 버려졌다. 미개봉 백신은 유효기간, 이미 개봉된 백신은 사용가능 기간 내 사용해야 한다.
한 의약품 폐기물 업체는 "주기적으로 코로나19 백신 폐기물이 접수되는 것으로 안다"고 했다.
코로나19 백신을 두고 정부의 과제는 1년 만에 정반대로 바뀌었다. 지난해 전 세계적으로 수요가 폭발하면서 각국 정부는 빠른 도입을 위해 경쟁적으로 협상을 펼쳤지만, 이제는 확보해둔 백신을 효과적으로 처리하는 것이 관건이 됐다.
남는 백신을 처리하는 방법은 크게 접종 확대로 백신 활용을 늘리거나, 폐기하거나, 해외에 공여하는 등 세 가지가 대표적이다. 다만 현실 가능한 방안은 폐기뿐인 것으로 보인다.
올해 들어 국내에 들어온 코로나19 백신은 총 3892만회분이다. 지난 달 24일 기준 코로나19 백신 재고 물량은 1986만회분이다. 단순 계산하면 국내 도입된 물량의 51%는 남아있는 셈이다.
있는 백신도 다 쓰지 못하고 남아있는 상황에서 추가로 더 들어올 물량도 있다. 당초 계약에 따라 앞으로 9820만회분이 더 들어온다.
질병청은 "도입된 백신은 현재 진행중인 3·4차 접종에 활용된다"고 설명했으나, 당장 백신 접종률을 이전처럼 끌어올리고 백신 활용을 늘리기는 어렵다. 인구 대비 코로나19 백신 접종률은 차수별로 1차 87.9%, 2차 87.1%에서 3차 65.4%, 4차 14.4%로 뚝 떨어졌다. 개량백신 접종률은 1.3%에 그친다. 코로나19의 치명률이 떨어지면서 접종이 의무에서 자율로 바뀌고, 돌파감염으로 백신에 대한 국민 신뢰가 떨어지면서 접종 참여가 대폭 낮아진 것이다.
해외 공여도 쉽지 않다. 전 세계적으로 백신 물량이 충분해 공여할 국가를 찾기가 쉽지 않다. 개발도상국과 저개발국가에는 백신을 유통하고 보관할 인프라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또한, 오미크론 변이 이후 치명률이 낮아지면서 저소득 국가에서도 백신 수요가 줄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정부는 코백스(글로벌 백신 분배 프로젝트)로 국내에 배정됐던 483만회분을 들여오지 않고 코백스에 공여했고, 이를 포함해 총 974만회분을 공여했다.
우리 정부 뿐 아니라 미국, 캐나다, 독일 등 여러 나라들도 접종 수요가 줄면서 코로나19 백신을 폐기하는 추세다. 모더나도 지난 7월 수요처를 찾지 못한 백신 3000만회분을 버렸다.
국회에서는 정부가 백신을 구매하는 과정에서 충분한 검토가 이뤄졌는지 따져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조명희 국민의힘 의원실에 따르면 정부는 3년간 백신 구매에 총 6조3770억원을 썼다.
조명희 의원은 "코로나19 백신 수입에 막대한 국민 혈세가 들어갔음에도 전 정부의 오락가락한 백신 수급정책으로 인해 대량 폐기되는 일이 발생했다"면서, "전 정부의 백신 수요와 공급량에 대해 적절한 근거와 검토가 있었는지 살펴보고, 정부는 재발 방지 대책을 세워 과도한 예산 낭비를 막아야 한다"고 했다.
박다영 기자 allzero@mt.co.kr, 이창섭 기자 thrivingfire21@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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