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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여 년간 아동들에 대한 인권침해가 이뤄졌던 '선감학원' 사건에 대해 진상규명 결정이 내려졌습니다.
지난 18일 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는 이 사건이 '국가 공권력'에 의한 중대한 인권침해 사건이라 판단했습니다.
당시 아동들은 어떻게 사방이 바다로 막혀있던 섬 '선감도'까지 가게 됐는지, 그 안에서는 어떤 일들이 일어났는지 살펴봤습니다.
■"수용 과정 자체가 위헌·위법 행위"
선감학원은 1942년 설립돼 1982년까지 부랑아 수용 시설로 운영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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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감학원 원아대장 /진실화해위 제공 |
경찰은 정부 정책에 따라 거리에서 '부랑아'들을 단속했는데, 법률적 정의가 없어 모든 판단은 '자의적'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상당수 아동들은 가족이 있었는데도 강제 수용됐습니다.
수용 절차도 적법하지 않았습니다.
생존 피해자 한일영 씨는 경기 가평에서 가족들과 살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방학을 맞아 서울 성북구에 있는 할아버지 댁을 찾았습니다.
도착했을 무렵, 경찰이 다가와 "집이 어디냐"고 물어봤습니다.
주소를 말했더니, 파출소로 끌고 갔습니다.
그 길로 서울시립아동보호소에 강제로 수용된 한씨는 "집에 보내주겠다"는 말에 차에 올랐다가 선감학원으로 보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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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영씨의 서울시립아동보호소 수용아동접수부 내용 |
한씨가 처음 수용됐던 서울시립아동보호소 기록에는 집 주소가 가평이 아니라 서울로 적혀 있고, 입소 동기는 "가정불화로 가족이 헤어져 거리를 방황했다"고 적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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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영씨의 선감학원 원아대장 내용 |
반면 선감학원 원아대장에는 주소가 가평으로 되어 있고, "입소 전에 부랑성이 있어 구두닦기 일을 했다"고 써있습니다.
단속 대상이 아닌 아동을 잡아다 시설에 강제로 보내놓으니, 사실과 다른 내용을 멋대로 기록한 겁니다.
한씨는 가까스로 섬을 탈출했지만 뒤쫓아 온 선생들을 피하려다 다른 섬 주민들에게 잡혔고, 1년간 노예에 가까운 노동 착취를 당하다 다시 도망쳤습니다.
■총체적 인권침해…"폭행·강제노동·부실급식·사망 등"
이렇게 선감학원에 끌려온 아동들은 강제노동, 가혹행위, 성폭력, 교육권리 박탈 등 중대한 인권침해를 당했습니다.
피해자 김성한씨는 자신을 때린 선생의 이름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배가 고파서 땅에 떨어진 수수 이삭을 주워 먹었다가 몽둥이로 맞았어요. 눈 옆이 찢어져 세 바늘을 꿰맸습니다."
진실화해위 조사에 따르면 선감학원 측은 양잠, 농경, 가축 사육 등에 아동들을 동원했습니다.
심지어는 염전을 농지로 개량하는 작업까지 시키려 했습니다.
아이들은 학교에 다니면 오전 수업 후 오후부터 노동을 해야 했고, 학교를 다니지 않는 아동들은 하루 약 8시간을 일했다고 합니다.
학대를 견디다 못한 상당수는 바다를 헤엄치고 갯벌을 달려 섬 탈출을 시도했습니다.
그러나 제대로 먹지 못하고 몸이 성치 않아 익사한 아동들이 다수였습니다.
이들에 대한 유해는 학원 부지에 암매장 됐습니다.
"묻기 전에 원생들을 앞에다 세워놓고 교육을 시켰습니다. 도망가면 이렇게 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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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된 치아와 단추 /진실화해위 제공 |
이번 진실 규명 과정에서 암매장 위치로 추정되는 봉분 5기를 시굴한 결과 치아 68개와 원복에 달려 있던 단추 6개가 발견됐습니다.
진실화해위는 "지역 토양이 산성이고, 매장 후 40년 이상 지나 유해가 삭은 걸로 보인다"며 전면 유해 발굴을 권고했습니다.
■"국가와 경기도는 공식 사과하라"
위원회는 정부의 부랑아 정책과 제도가 선감학원 사건을 유발했다고 봤습니다.
공무원을 파견해 선감학원을 운영하고 관리했던 경기도에도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이에 "법무부·행정안전부·보건복지부, 경찰, 경기도 등이 피해자와 유족에게 공식적으로 사과하라"고 권고했습니다.
20일 기자회견에 참석한 피해자 천종수씨는 사과의 뜻을 전하는 김동연 경기도지사의 손을 잡고 흐느꼈습니다.
"사과를 받으니 오늘은 집에 가서 두 발 뻗고 잘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피해자 측은 상당수 수용자들이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가 있으며 건강 악화나 극심한 생활고를 겪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선감학원 폐원 40년 만에 처음으로 국가 기관이 인권침해 사실을 규명했습니다.
하지만 갈라지고 조각난 피해자들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치유하기 위해서는 국가 차원의 진심어린 사과가 먼저겠지요.
빠른 시일 내에 국가가 정식으로 "잘못했다, 죄송하다" 밝히고, 실질적으로 피해자를 도울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길 바랍니다.
(영상취재: 서재민, 영상편집: 오영진)
안윤경 기자(you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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