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 10집서 환경 문제 목소리…철학자 최진석 교수 작사 '눈길'
내달 6∼7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서 단독 콘서트…"K팝과 함께 K재즈도 레벨업"
재즈 가수 웅산 |
(서울=연합뉴스) 이태수 기자 = "국악인이 보시면 수박 겉핥기식이라고 하실 수도 있겠지만, 재즈는 세상의 모든 소리를 활용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번에는 제가 국악을 소화한 앨범인 거죠."
쉬운 길을 어렵게 돌아가는 사람이 있다. 대부분은 '몰라서' 이 같은 우를 범하고는 하지만, 이 관록의 재즈 디바는 음악적 자유를 위해, 혹은 자신의 역량을 시험하고자 '알면서도' 굽이굽이 험로를 택했다.
바로 최근 정규 10집 '후 스톨 더 스카이즈'(Who Stole the Skies)를 낸 가수 웅산 이야기다. 민요와 판소리 등 한국 전통 음악과의 접목을 시도하면서도 국악기를 일절 사용하지 않고 오롯이 본인의 목소리로만 이를 구현해냈다.
웅산은 29일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10집은 '나'라는 악기가 국악을 어떻게 활용해낼 수 있는지 스스로 테스트하는 계기가 됐다"며 "편곡하는 과정에서 국악기를 넣을지 고민하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내가 혼자 해내자고 결심했다"고 돌아봤다.
음반에는 더블 타이틀곡 '아임 낫 어 버터플라이'(I'm not a butterfly)·'후 스톨 더 스카이즈'를 비롯해 남도 민요를 재해석한 '꿈이로다', 자작곡 '광대가', 리메이크곡 '사주팔자' 등 10곡이 담겼다.
그는 "(대학 시절에는) 록커였고, 이후 재즈를 하게 돼 블루스를 찾아 헤매다가 국악까지 가게 됐다"며 "이 모든 음악적 경험을 통해 더 큰 자유를 찾고자 했다. 음악적 자유를 향한 간절함을 내 나름대로 만끽하는 앨범"이라고 소개했다.
'자유'라는 키워드에 딱 들어맞게도 타이틀곡 '아임 낫 어 버터플라이'는 자신을 향한 세상의 구속에 단호히 '노'(No)라고 선언하는 노래다.
웅산은 "아티스트는 자기 경험을 음악으로 토해내야 하는데, 국악을 하고 싶은데도 대중의 시선이 두려워 시도하지 못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생각했다"며 "이러한 생각을 솔직하게 털어놓고, '나를 섣부르게 판단하지 말라'고 호소하는 노래다. 나를 정해진 틀 안에 가둬두지 말라는 메시지"라고 강조했다.
그는 1번 트랙 '꿈이로다'에서는 남도 민요, 9번 트랙 '광대가'와 10번 트랙 '손님아'에서는 판소리를 각각 시도했다. 국악에 천착하게 된 계기가 궁금했다.
"국악인 안숙선 선생님과 장구 연주가 김덕수 선생님을 좋아해서 어렸을 적부터 협연을 많이 했어요. 음악적 고민을 하던 어느 날 밤에 산책하다가 갑자기 안숙선 선생님의 '시나위'가 듣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매일 조금씩 노래를 따라 하면서 연습했어요. 해보니 재미있어서 우리나라 국악의 역사부터 파고들었죠."
그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시간이 많아지면서 국악 연습을 많이 할 수 있었다"며 "아침에 소리 한번 뽑아내는 연습을 하니 에너지를 많이 써서인지 밤 9시만 되도 졸음이 쏟아졌다"고 웃었다.
웅산은 "재즈 뮤지션은 고독한 자기 연마의 시간을 많이 가짐으로써 음악적 자유를 조금씩 늘려나가고, 이로부터 희열과 행복감을 느낀다"며 "국악을 음악적 도구로 사용하는 것에 대해 아직은 호기심에 가득 차 있다"고 짚었다.
"재즈와 국악은 결국은 같은 이야기를 한다고 생각해요. 사과를 '애플'(Apple)·'링고'(リンゴ)라고 언어마다 달리 부르는 것처럼, 아르헨티나는 탱고로, 우리는 한(恨)이라는 이름으로 각각 블루스를 표현한다고 봐요. 블루스가 없는 나라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웅산은 "이렇게 장르를 오가며 노래로 표현하는 게 뮤지션으로서의 기쁨"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국무총리 표창 받는 웅산 |
웅산은 앨범명과 동명의 '후 스톨 더 스카이즈'에서는 환경 문제를 꼬집는다. 그는 '우리 모두가 책임이 있다'(We're all to blame)며 맑은 하늘을 잃어버린 데에는 너와 내가 따로 없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듣는 이의 귀를 자극하는 스캣(Scat)은 묘한 불협화음으로 마치 인간에게 혀를 차는 지구의 질책처럼 들린다.
그는 "지구가 얼마나 위험한 상태에 놓였는지를 표현하고자 일부러 듣기 불편하도록 사운드를 난해하고 공격적으로 편곡했다"며 "'이래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를 반복해서 주고자 스캣을 넣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재킷 배경도 환경을 상징하는 녹색, 그렇지만 어두운 전망을 표현하고자 밝은색이 아니라 칙칙한 녹색을 썼다"며 "나 자신도 쓰지 않는 물건은 버리는 대신 무료 나눔을 하고 외출 시에는 모든 전기 플러그를 빼는 등 사소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덧붙였다.
웅산은 6번 '오늘'과 '7번 '틔우리라'를 통해서는 삶에 대한 사색을 음악으로 풀어놓는다. 두 노래의 가사는 도가 철학자로 이름을 날린 최진석 서강대 명예교수가 직접 썼다.
웅산은 '오늘'에서는 '너의 어제는 내게 없어 넌 그저 오늘이야'라고 청자에게 따뜻한 위로를 건네고, '틔우리라'에서는 '둥둥둥둥'하고 마치 장구처럼 심금을 울리는 콘트라베이스 사운드로 메시지의 깊이를 더했다.
그는 "최 교수님이 나와 처음 만난 날 나눈 이야기를 토대로 가사를 써주셨는데, 그날 창작의 영감이 강하게 와서 하루에 네 곡이나 작곡했다"며 "최 교수님은 머물러 있는 것은 썩게 된다며 '건너가기'라는 표현을 많이 쓰시는데 나도 이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 날 구속하는 모든 것에서 벗어나겠다는 '아임 낫 어 버터플라이'와 일맥상통하는 메시지"라고 말했다.
박재천의 노래를 리메이크한 '사주팔자'는 절친한 동생 MC스나이퍼가 피처링으로 참여해 랩을 넣었다. '광대가'는 제목에서 엿볼 수 있듯 끊임없이 무대에 오르는 웅산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가사로 담아냈다.
웅산은 "나는 무대에 올라가기 전에 늘 '관객·스태프·뮤지션이 하나될 수 있는 음악을 만들어달라'·'이 순간을 가장 아름다운 순간으로 만들어달라'고 스스로 주문을 외며 화이팅을 외친다"며 "기존 음악과 새 음악을 잘 섞어서 차려내야 한다는 점에서 라이브 콘서트는 늘 내게 고민거리"라고 털어놨다.
그는 다음 달 6∼7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신보 발매 기념 단독 콘서트 '더 재즈'(The Jazz)를 열고 무대에서 팬들을 만난다. '일시에 청운이 관도에 올라 장안을 편답하니' 하고 한자어가 쏟아지는 '사주팔자' 가사가 익숙지 않아 인터뷰하러 오는 차 안에서까지 가사를 외웠다며 너스레도 떨었다.
"한국재즈협회장을 작년부터 맡고 있는데 회장 임기 동안 한국 재즈의 부흥기를 맞게 해 줬다는 평가를 듣고 싶어요. K팝은 이제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졌지만, K재즈도 지난 10년간 함께 레벨업을 하고 있었답니다. 대한민국에는 너무나도 훌륭한 재즈 뮤지션이 많아 뿌듯합니다."
ts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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