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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벤치 이강인, 벤투의 고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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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27일 카메룬과 평가전에서 끝내 이강인에게 기회를 주지 않은 파울루 벤투 감독. 그는 한국 지휘봉을 잡은 뒤 FIFA랭킹을 28위까지 끌어올렸지만 논란의 중심에 서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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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인! 이강인!”

지난 27일 한국과 카메룬 축구대표팀의 평가전이 열린 서울월드컵경기장. 후반 막판 약 6만 명이 들어찬 관중석에서 이강인(21·마요르카)의 이름이 울려 퍼졌다. 몸만 풀다 끝내 출전하지 못한 이강인의 플레이를 보고 싶다는 항의의 외침이었다.

축구대표팀 사령탑 파울루 벤투(53·포르투갈) 감독은 경기 중 5명을 교체하면서도 이강인은 외면했다. 경기 후 “다른 옵션을 선택했을 뿐, 전술적인 선택”이라고 해명했다. 팬들이 이강인을 연호한 것에 대해서는 “귀가 2개니 안 들릴 수 없었다”며 얼버무렸다.

벤투 감독은 1년 6개월 만에 재발탁한 이강인을 단 1분도 기용하지 않았다. 올 시즌 스페인 라리가 어시스트 공동 1위(3개)에 오르며 쾌조의 경기력을 선보였지만, 23일 코스타리카전에 이어 카메룬전에서도 ‘패싱’ 당했다.

이웃 나라 일본의 ‘9월 A매치 2연전’ 선수 기용 방식은 벤투호와 대조적이었다. 같은 날 독일에서 열린 에콰도르와 평가전에 파격적인 실험을 했다. 지난 23일 미국전(2-0승) 선발 11명을 모두 새 얼굴로 바꿨다. 결과는 0-0 무승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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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카메룬과 평가전에서 끝내 이강인에게 기회를 주지 않은 파울루 벤투 감독. 그는 한국 지휘봉을 잡은 뒤 FIFA랭킹을 28위까지 끌어올렸지만 논란의 중심에 서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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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벤투 감독은 카메룬전 후반에 권창훈(김천)과 나상호(서울) 등 기존 멤버를 투입하는 ‘복붙(복사 후 붙여넣기) 교체’를 했다. 전반과 비교해 후반 공격력은 무뎠다. 한 K리그 감독은 “주축 선수 부상 등에 대비해 이강인은 물론, 양현준(20·강원)도 짧은 시간 만이라도 써볼 필요가 있었다. 훈련과 실전은 다른데, 혹시라도 이강인을 월드컵 최종 명단에 뽑는다면 어떻게 활용할지 계산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반면 벤투 측근은 “유럽파를 포함한 최종 평가전인 만큼, 감독이 원하는 플랜A를 써 조직력을 끌어 올리는 게 맞다. 벤투 감독은 주변에서 어떤 얘기를 하든 크게 개의치 않는 스타일이다. 한국 매체 기사도 거의 읽지 않는 편”이라고 전했다. 카메룬전도 월드컵 경기라 생각하고 교체 옵션을 가동했다는 분석이다.

유럽 3대리그에서 창조적인 플레이로 ‘의외성’을 만들어 낸 이강인이 대표팀에서 경쟁력을 입증할 기회조차 얻지 못한 것에 대해 의문의 목소리가 높다. 박문성 해설위원은 “이강인은 대표팀 자체 연습 경기 때 공격 포인트를 여러 개 올렸다고 들었다. 그러나 벤투 감독은 황인범(26·올림피아코스) 중심의 미드필드진으로 공-수 밸런스를 잡으려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이영표 강원FC 대표이사가 ‘외국 감독은 미디어에서 특정 선수를 기용하라고 목소리를 내면 (일부러) 더 안 쓰는 경향이 있다’고 하더라. 플랜A, 즉 다른 다리를 불사르고 자기 다리로 건너 가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셈”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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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룬전이 끝난 뒤 후배 이강인을 안아주며 위로하는 손흥민(오른쪽). 그는 주장으로서 이강인 기용과 관련해 소신 발언도 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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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 손흥민(30·토트넘)도 카메룬전 후 “(이)강인이가 정말 좋은 선수고 소속팀에서 잘하고 있지만, 강인이 만을 위한 팀은 안 된다”면서 “모두의 관심이 강인이한테만 쏠리는 게 큰 상처가 될 수 있다. 나 또한 비슷한 경험을 했다”는 소신 발언으로 감독의 판단을 지지했다.

월드컵 엔트리가 23명에서 26명으로 늘어난 만큼 이강인이 카타르로 향할 여지는 남아있다. 이강인은 “당연히 (출전 불발이) 아쉽지만, 제가 선택할 수 없는 부분이다. 소속팀에 돌아가 최고의 모습을 보여드리는 것 밖에 없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벤투 감독은 포르투갈대표팀을 이끌던 지난 2011년 핵심 멤버 히카르두 카르발류(당시 레알 마드리드)와 조세 보싱와(당시 첼시)의 정신 상태를 지적하며 발탁하지 않았다. 끝내 두 선수를 외면한 채 유로 2012에서 4강에 올랐다. 반면 2014년 브라질월드컵에선 특정 선수 위주의 기용 방식을 고수하다 조별리그에서 일찌감치 탈락했다.

소신 혹은 고집. 벤투 감독의 ‘마이웨이’는 카타르월드컵에서 어떤 결과로 이어질까.

■ ▶파울루 벤투 축구대표팀 감독

부임기간: 2018년 8월22일~현재(1500일, 한국 역대 감독 73명 중 최장수)

승률: 52경기 33승12무7패, 승률 63.4%

FIFA랭킹: 부임 당시 57위→현재 28위

연봉: 코치진 포함 총 연봉 220만 달러(24억원, 추정)

주요 성적: 카타르월드컵 본선행, 2019 아시안컵 8강

장점: 빌드업 플랜A 추구, 주축 선수 신뢰

단점: 붕어빵 같은 선수 선발과 전술

박린 기자 rpark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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