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19년 2월27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정상회담을 하며 악수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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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남·북·미 대화 국면이 전개되던 2018~2019년 당시 한반도 비핵화 문제와 관련해 문재인 대통령이 아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직접 논의하길 바랐던 것으로 확인됐다. 김 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분명히 저는 정말로 기분이 상했다”며 한·미 연합군사훈련에 대한 강한 반발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전·현직 주미 특파원들의 모임인 ‘한미클럽’은 외교안보 계간지 <한미저널 10호>에 이러한 내용이 담긴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 간 친서 전문을 공개했다고 25일 밝혔다. 공개된 친서는 2018년 4월1일부터 2019년 8월5일까지 두 정상 간 교환된 27통이다. 당시는 남북, 북·미, 남·북·미 정상이 잇따라 만나 한반도에 대화 분위기가 무르익었던 시기다.
김정은 “문 대통령의 과도한 관심은 불필요”
김 위원장은 비핵화 문제 논의에서 문 대통령보다 트럼프 대통령과의 대화를 최우선 순위에 뒀던 것으로 나타났다. 김 위원장은 2018년 9월21일자 친서에서 “저는 향후 한국의 문재인 대통령이 아니라, 각하와 직접 한반도 비핵화 문제를 논의하길 희망하며, 지금 문재인 대통령이 우리의 문제에 대해 표출하고 있는 과도한 관심은 불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이 문 대통령과 평양에서 손을 맞잡고 ‘9·19 평양공동선언’을 발표한 이틀 뒤 트럼프 대통령에게 이러한 속내를 드러낸 것이다. 김 위원장과 문 대통령은 평양공동선언에서 “남과 북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추진해나가는 과정에서 함께 긴밀히 협력해나기로 했다”고 밝힌 바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19년 6월30일 판문점에서 두손을 맞잡고 대화하고 있다. 가운데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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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식 전 통일부 차관은 <한미저널>에 “김 위원장은 문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 사이의 협상에 끼어드는 것을 원치 않은 것”이라며 “김 위원장이 문 대통령의 (평양 방문)귀환 보고를 보고 불신이 싹텄는지, 문 대통령을 환대하고 합의서를 만든 것이 속임수였는지는 알 수 없다”고 분석했다.
트럼프 “보도와 달리 엄청난 진전 이뤄”
김 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과의 담판을 통한 ‘톱다운 방식(하향식)’ 문제 해결을 추구했다. 김 위원장은 2018년 9월6일자 친서에서 폼페이오 당시 미 국무장관의 평양 방문 취소에 양해를 구하며 “저로서는 각하의 의중을 충실히 대변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기 어려운 폼페이오 장관과 우리 양측을 갈라놓는 사안에 대해 설전을 벌이기보다는, 탁월한 정치적 감각을 타고난 각하를 직접 만나 비핵화를 포함한 중요 현안들에 관해 심층적으로 의견을 교환함이 더 건설적일 것”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과 만난 뒤 매번 김 위원장을 높게 평가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사흘 뒤인 2018년 6월15일자 친서에서 “북한과 위원장님에 대한 언론 보도들은 환상적이었다”며 “저는 우리가 얼마나 잘 어울렸고 서로 호감을 가졌는지도 전달했다. 이는 사실”이라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노딜’로 끝난 베트남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한달 뒤인 2019년 3월22일자 친서에서 “위원장님은 저의 친구이고, 앞으로도 항상 그럴 것”이라며 “우리의 만남에 대한 일부 언론 보도와 달리, 위원장님과 저는 엄청난 진전을 이루었다”고 밝혔다. 하노이 회담에서 성과가 없었다는 비판을 일축하며 김 위원장에게 호의적 태도를 재차 드러낸 것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미국 트럼프 대통령과 2018년 6월12일 싱가포르의 센토사섬에서 역사적인 첫 북미정상회담을 가졌고 이 자리에서 공동성명을 채택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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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통령은 판문점에서 열린 남·북·미 정상회담 사흘 뒤인 2019년 7월2일자 친서에선 “위원장님의 나라로 넘나들고 우리의 중요한 논의를 재개할 수 있어 영광이었다”고 밝혔다. 이정철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한미저널>에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 관계 개선 의지는 분명했고, 대북 압박을 기조로 한 실무자들의 태도와는 달리 현실적이고 가시적인 성과를 내는 데 관심이 많았다”며 “북한이 트럼프 행정부가 (다시) 들어서기를 기다리며 바이든 행정부와 협상을 거부하고 있다는 워싱턴의 평가가 전혀 우스꽝스러운 것만도 아님을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김정은 “분명히 저는 정말로 기분 상했다”
김 위원장은 한·미 연합군사훈련에 강한 반발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기도 했다. 김 위원장은 2019년 8월5일자 친서에서 “저는 우리가 중요한 문제를 계속 논의하게 될 실무급 양자 협상을 앞두고 도발적인 연합 군사훈련이 취소 또는 연기될 것으로 믿었다”며 “한반도 남부에서 실시되는 연합군사훈련은 도대체 누구에 대한 것이며, 봉쇄시키려 하며, 물리치고 공격하려는 대상이 누구입니까”라고 항의했다.
김 위원장은 “저는 분명히 기분이 상했고, 이를 각하에게 숨기고 싶지 않다. 분명히, 저는 정말로 기분이 상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그는 “저는 우리의 신뢰를 유지하기 위해 매우 호응적·실용적으로, 현 단계에서 제가 할 수 있는 것보다 그 이상을 했다”며 “하지만 각하께서 해주신 것은 무엇이며, 저는 우리가 만난 이후 무엇이 바뀌었는지에 대해 인민들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합니까”라고 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이 2019년 2월 27일 베트남 하노이의 한 호텔에서 열린 정상회담에서 촬영해 응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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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서에서 “지금이나 미래에나 한국군은 우리의 적수가 될 수 없다” “저는 한국을 공격하거나 전쟁을 시작할 의도가 없다”고 자신감을 드러낸 김 위원장은 한·미 연합군사훈련을 문제삼아 대화의 문을 닫았다. 김 위원장은 “제 요점을 말씀드리자면 유감스럽게도 지금은 실무급 대화를 가질 시점이 아니라는 것”이라며 “한국과의 ‘군사 게임’과 ‘전쟁 연습’이 끝났을 때 제게 다시 연락을 주기 바란다. 그때에 실무급 대화의 시간과 장소를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 위원장은 해당 친서에서 “실무급 대화는 제가 그렇게 강력히 중단을 요청했던 미국과 한국의 ‘전쟁 연습’이 지난 주말의 문제가 되어버린다 해도 재고할 일은 없을 것”이라며 “도대체 어떠한 종류의 실무급 대화가 가능하겠나. 제가 간절히 원했던 제재 완화 문제에 대한 것도 아닐 것이며, 4차 정상회담의 장소에 대한 것도 아닐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김 위원장이 ‘강력하고 간절하게’ 트럼프 대통령에게 관철시키려 한 핵심 과제가 한·미 연합군사훈련 중단과 대북제재 완화였음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박광연 기자 lightyea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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