윈드폴리 대표 이병희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1. 아직도 아이들에겐 퇴직했다고 말 못 했어요
회사를 들어오기는 어려웠지만 나가는 것은 쉬웠다. 서류 전형, 필기 시험, 카메라 테스트, 1박 2일 합숙 면접에 이어 임원 면접까지 거쳐 언론사에 들어왔지만 나갈 때는 도장 한 번 찍으니 끝이었다. 2001년 입사해서 퇴사하던 2020년까지 받은 상이 30개가 넘었다. 2018년에는 언론계에서 가장 권위를 인정받는 한국기자상, 한국방송기자대상을 휩쓸었다. 달리기 선수로 치면 단거리 선수라기보다 중장거리형 선수, 전반보다 후반으로 갈수록 힘을 받는 스타일이었다. 이 사람을 보도국을 맨 마지막까지 지킬 사람으로 여긴 것은 필자만이 아니었다. 2016년 미국 연수를 다녀온 뒤 3년 동안 비서실, 탐사보도부, 대선 선거기획팀 등 무려 8개 부서를 옮겨 다녔다. 그만큼 이 사람을 찾는 곳이 많았고 가는 곳마다 자기 맡은 것 이상의 역할을 했다. 퇴직 시점이 기자 인생의 정점이었다. 꽃길만 남은 것처럼 보이던 바로 그 시점에 기자를 그만뒀다. 놀라고 아쉬워하는 사람들이 한두 명이 아니었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회사 나갈 때 많은 사람들이 붙잡았잖아요.
"작별 인사한다고 그냥 '잘 가' 하지는 않죠. (웃음)"
-어떤 말이 제일 기억에 남습니까.
"선배들 말보다 후배들 말이 더 걸렸어요. 예를 들면 '선배 나가면 이런 이야기를 이제 누구랑 하죠?' 이런 말 들었을 때 제가 한 거라고는 들어준 거밖에 없지만 후배들이 정말 나를 좋아해줬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회사 그만둔 다음 날 후배들이 카톡을 많이 보내줬는데 그거 보면서 울었던 거 같습니다. 후배들이 나를 이렇게 생각해줬네 싶었거든요. 그 카톡을 아내에게도 보여줬는데 아내도 울더라구요."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하자 아내는 그동안 해온 것이 아깝지 않느냐는 말을 몇 번을 했다.
"그 조직에서 너무나 재미있게 하고 또 잘했는데 그게 아깝지 않냐, 아이들 생각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봐라, 아깝지 않냐. 아내가 그러더라구요. 그게 서운해서 울었다고…."
아내는 아이들이 가장 먼저 마음에 걸렸다. 언젠가는 자기 일을 할 사람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왜 하필 지금인가 싶었다.
"어느 날 저녁 밖에서 식사를 하자고 하더라구요. 그만둔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너무 울어서 사실 밥도 못 먹었어요. 회사를 그만두던 때가 큰 아이 고1, 작은 아이 중2 때였어요. 아내로서는 남편이 안정된 직장을 다녀주는 게 제일 좋잖아요." 서은희/이병희 윈드폴리 대표 아내
주말에 책장 정리하며 잠깐 책을 보고 있는데 아들이 곁에서 따라 하는 모습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남편은 언젠가는 자기 일을 하겠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했다. 그때가 조금 일찍 왔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단다. 남편으로 말고 한 인간으로도 지금까지 해온 것을 보면 뭘 해도 할 수 있겠다는 믿음도 있었다. 그렇지만 두 아이에겐 아직도 아버지가 방송사를 그만두었다는 말을 못했다. 대입 준비를 하는 예민한 시기에 아버지의 이직이 아이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지는 못할 것이라는 걱정 때문이다.
-그러면 이 부분은 제가 안 쓰는 게 좋을까요.
"아니 상관없을 거 같습니다. 아이들은 이미 알고 있더라구요. 제가 큰아이한테 어떻게 해서 알게 되었느냐고 물어봤어요. '아빠가 맨날 스타트업 이야기만 하는데 어떻게 모를 수 있느냐, 그런데 아빠가 자기들한테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것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해서 아빠가 자기들한테 이야기해줄 때까지는 그냥 모른 척하고 있겠다' 그러더라구요. 남편한테 얼마 전에 그 이야기를 해줬습니다." 서은희/이병희 대표 부인
2017년 이후 같은 부서에서 두 번 일했다. 회사 나갈 때 비교적 소상히 퇴사 이유를 들었다. 이야기를 들을 때는 고개를 주억거렸지만 의문이 말끔히 해소된 것은 아니었다. 이제 꽃길만 남은 사람인데 왜 나가는 거지 싶었지만 함께 일할 때 그랬듯이 이 사람이 그렇게 결정했다면 그 결정이 맞는 것이려니 싶었다. 나가서 하겠다는 일은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들을 때마다 그 말이 그 말 같았다.
이병희 대표 가족여행 모습. 항상 비슷한 포즈라고 한다.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2. 한 번 엎어지고 다시 일어서는 중입니다
2020년 8월, 스타트업 '윈드폴리'를 창업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악전고투의 연속이다. 창업 후 처음 출시한 서비스는 '시장의 선택을 받지 못하고' 지난해 11월 접었다. 아버지와 자녀가 소중한 시간을 함께 보내도록 도와주는 맞춤형 체험 콘텐츠 서비스였는데 창업과 함께 시작된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았다. 만나지 말고, 말 섞지 않는 게 미덕이자 상식인 시대에는 맞지 않는 서비스였다. 사람 탓, 주변 탓하지 않았다. 운이 없었다는 말 정도는 할 수도 있으련만 그 단어도 아꼈다. '비가 와도 대표 탓, 눈이 와도 대표 탓'이라며 모든 것은 대표인 자신의 책임이라고 했다.
"투자가가 여기에 100을 넣었을 때 100 이상의 결과가 나오느냐는 질문에 그럴 수 있다고 답을 할 수 없더라구요. 호의적인 반응도 적지 않았지만 아무리 계산기를 두드려봐도 이게 지속 가능한, 전국적인 기반의 플랫폼이 되기는 어렵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지난 겨울 추위가 오는지 가는지 모를 만큼 왜 실패했는지 분석하고 새 사업 아이템을 찾는 데 집중했다. 하던 사업을 포기하고 새로운 사업을 찾는 것을 스타트업계 용어로 피봇팅(pivoting)이라고 한다. 이 과정은 창업에 못지않게 힘들고 고통스럽다. 우선 투자자와 주주를 설득해야 한다. 당신이 투자한 돈으로 이 사업을 이렇게 해왔는데 지금까지 실적이 이렇고 미래 전망은 이렇다, 더 이 사업을 가져가는 것은 힘들다. 미안하지만 이 사업은 여기에서 접어야 한다고 말해야 된다. 자기를 믿고 돈을 댄 사람들에게 얼굴 들기 어렵다.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 서비스를 개발한 직원들에게 설명하고 양해를 구하는 일도 쉽지 않다.
-피봇팅 과정이 대단히 힘들고 고통스러운 과정이겠군요.
"이게 말로 '내일부터 이렇게 바꿉시다' 한다고 되는 게 아니거든요. 작지만 투자자들, 주주들이 있고 서비스를 위해서 밤을 새우며 개발을 했던 직원들도 있잖아요. 그런 것들을 아깝지만 과감히 다 버리고 처음부터 다시 테스트를 해야 하는 거고요."
-버리는 것 중에 투자도 포함되는 겁니까.
"쏟아부은 매몰비용이 있겠죠. 아무래도 시간이나 인건비 이런 것들 것 다 매몰되는 거죠. 투자자를 찾아갔더니 당연히 처음에는 걱정이죠. '대표님. 그게 작년부터 했던 거 ABC부터 다시 해야 돼요' 그래도 이런 과정을 통해 저희들이 많이 배우고 성장했다고 생각합니다."
이 사람이 회사를 나간다고 했을 때 적극적으로 붙잡지는 않았다. 아까운 인재가 나간다는 생각은 했지만 어디에 가든 자기 몫은 할 사람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아직까지 뚜렷한 성과가 없다.
"어떤 분야에서 잘했다고 해서 이 비즈니스에서도 사람들의 마음을 곧바로 사로잡고 통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회사를 나올 때 뭐 이 부분을 확 잡겠다 이렇게 생각하고 나온 것은 아니지만 막상 나와보니 생각지도 못했던 변수들, 책에서 보고 배운 것만으로는 알 수 없는, 직접 부딪혀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들이 정말 많더라구요. 책으로 아는 지식과 사람들이 마음을 열고 지갑을 여는 것은 전혀 다른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거의 열 달에 가까운 산고 끝에 지난달부터 새로운 서비스를 시작했다. 대입 수험생들에게 일대일 코칭 서비스를 제공하는 서비스다. 올 연말 투자를 받는 게 목표다. 전망이 나쁘지는 않다고 했는데 결과는 두고 봐야 한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3. '용기 잘 냈다' 지금도 저를 칭찬해주고 싶어요
억대 연봉, 안정된 직장, 장밋빛 미래가 자랑이었지만 이 사람에게는 구속의 쇠사슬이기도 했다. 입사할 때 30년 후 자기 모습을 그려보라는 질문에 내가 마지막으로 퇴직할 곳이 언론사는 아닐 거 같다고 했다. 연세대학교 신방과에 다닐 때부터 창업을 꿈꿨고 창업하면 도움이 될까 싶은 마음에 특허권도 4개를 가지고 있다. 기자 일에 몰두할 때도 언제 떠날까 늘 고민했고 결단 직전에 몇 번이나 주저앉았다. 방송사 기자로서 누리는 게 적지 않았고 그것을 놓기가 쉽지 않았다. 입사 20년을 앞두고 더 이상 늦추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작더라도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내 브랜드를 만드는 게 오랜 꿈이었다. 그 꿈으로 자신을 묶고 있던 쇠사슬을 끊어 냈다. 좀 더 일찍 나왔더라면 더 좋았겠지만 그때라도 나온 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일흔이 되고 여든이 되어 뒤돌아봤을 때 내가 그때 결정을 하지 않았다면 반드시 후회했을 것이라고 했다.
"회사에 그대로 있었으면 이런 거는 참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 때는 있지만 저는 제 나이 45살 되던 해, 그때 그 결정을 한 저에게 등 두드려주고, '정말 용기를 잘 냈다'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물론 이렇게 초심을 가져야 제가 덜 힘든 것도 사실이지만 그 당시 저에 대해서는 진심으로 칭찬해주고 싶은 마음입니다."
세상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고 그들의 수고를 덜어주는 일을 하고 그 대가로 돈을 버는 일을 하고 싶다. 그런 꿈을 이 사람 혼자 꾸는 것은 아니다. 공식적으로 등록된 스타트업이 3만 4천 곳이 넘는다. 이들이 다 경쟁자들이다. 그래서 매일매일이 생존 경쟁이고 하루하루 넘기는 게 아슬아슬하고 언제 망해도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스타트업계는 정글이겠다고 하니 정글이 아니라 지옥이라고 했다. 아군도, 적군도 없고 최소한의 공급 파이프, 긴급 수혈 장치 같은 것도 없다. 믿을 것이라곤 자기뿐이다. 여기가 채워진 듯하면 저기가 구멍이고 저기를 메우고 나면 또다른 틈이 발견된다. 늘 어딘가에 구멍이 있고 빈 구석이 있다. 그럴 때마다 직접 나선다. 경리도 하고 총무도 하고 홍보도 하고 때로는 개발도 한다. 후회할 법도 한데 그래도 2020년 자신의 이직 결정을 후회하지 않는다.
언론사에 있을 때는 'SBS 이병희 기자입니다'라는 말이면 충분했다. 그 이상 자신을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이제는 매번 자신이 누구인지, 무슨 용건으로 전화를 하고 방문했는지 이야기하지 않으면 안 된다.
"언론사를 나오는 순간부터 저를 설명해야 되는 상황인 거죠. '누구라구요?' 그러면 저희 법인명, 서비스명으로 이렇게 이야기하면 '어디요?' 그 다음에 또 한참을 설명해야 '그래서요?'라는 말이 나오는 겁니다…. 저희가 투자자들의 선택을 받으려면 젊고 열정으로 가득 찬 친구들과 경쟁해야 됩니다. 64강 예선전부터 그 친구들과 붙어서 한 단계 한 단계 올라가는 기분입니다. 매번 그래야 돼요. 부전승 같은 것은 없어요. 저희 스스로를 입증하지 않으면 '너희가 뭔데? 왜 우리가 너희한테 투자해야 되는데?' 이렇게 되는 거죠."
제2의 인생을 시작하면서 달라진 게 있느냐고 했더니 한 가지 있다고 했다. 예전에는 완벽주의자 기질이 있어 자신이 납득될 때까지 사안을 들여다봤지만 이제는 대충 넘길 일은 넘기고 포기할 것은 포기한다고 했다. 어차피 안 될 일을 붙잡고 고민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시간과 속도가 생명인 스타트업계에 적응하는 것일 텐데 한 번 엎어진 일에 미련을 두지 않으려 애쓰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4. 돈은 널려 있고 돈 벌 기회는 많습니다
기자들은 자기 이야기보다는 남의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다. 사석에서도 남의 이야기를 더 많이 한다. 자기 이야기를 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이 사람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글을 쓰려고 보니 아는 게 많지 않았다. 참고할 만한 자료도 별로 없었다. 일을 할 때 동료로서 아는 것과 인터뷰 대상자로서 바라보는 것은 사뭇 달랐다.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 고민스러웠다. 적지 않은 연봉과 사회적 평판, 안정된 미래를 포기하고 나온 이 사람의 꿈의 크기가 궁금했다. 얼마나 꿈이 크길래 남들이 다 부러워할 만한 것들을 던지고 나온 걸까.
-회사 다닐 때 꿈의 크기가 10이었다 치면 회사를 나올 때, 그리고 지금 꿈의 크기는 어느 정도 됩니까.
"솔직히 말씀드리면 제 꿈은 되게 소박합니다. 저를 이렇게 설명하면 투자자들이 싫어하는데 기자 20년은 멋진 관찰자의 삶이었다면 나머지 20년은 플레이어로 살고 싶다…. 내가 직접 뛰면서 땀도 흘리고 부딪히고 하는 삶을 살고 싶다…. 작은 구멍가게라도 내 브랜드를 갖고 싶다는 거죠. 이병희가 만든 브랜드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작더라도 의미 있는 기억만 있으면 저는 진짜 만족하거든요."
그렇게 소박하게 이야기하는 사람에게 투자하고 싶은 마음이 들겠느냐는 핀잔성 말을 듣기도 했다는데 말이 거창해야 꿈이 큰 것은 아니다. 매출 1조 원이 넘는 유니콘 기업 같은 것은 생각해본 적 없지만 일단 자기 브랜드를 가지면 초연결사회에서 큰 파워를 발휘할 거라고 믿는다. 어려운 형편에 있는 아이들에게 일 년에 두 번 좋은 새 신발 신겨주고 아이스크림을 나누어 먹는 게 꿈이다. 그 아이들과 함께 그림 그리고 글 쓰는 것도 버킷 리스트에 적혀 있을 것이다. 그런 꿈의 크기가 유니콘 기업을 만들겠다는 것보다 몇 배는 크게 보였다. 이 사람 아내가 지금까지 <그 사람>에서 다룬 사람들이 대부분 유명하고 힘 있는 사람들인데 자기 남편 같은 사람을 다뤄도 되느냐고 했을 때 망설이지 않고 "이병희 대표보다 꿈이 큰 사람은 없었습니다"라고 답한 이유다.
-스타트업을 하는 것은 결국 많은 돈을 벌자고 하는 거겠지요.
"저는 모든 스타트업 대표들이 돈 때문이라고 하지는 않지만 돈이 아닌 경우는 하나도 없다고 생각해요. 돈은 경제적으로 자유를 주는 동시에 좋은 일을 할 수 있는 최고의 도구라고 생각합니다. 스타트업은 당연히 돈을 벌어야 하고 돈 벌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해야 성공하는 스타트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돈을 벌고 싶고 그렇게 벌어서 저와 제 가정만이 아니라 필요한 곳에 멋지게 쓰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저부터 축적이 있어야 생판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흘러갈 수 있는 것이겠죠."
-밖에 나와보니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는 많다라는 생각이 듭니까.
"돈은 흔하죠. 어느 책에서 돈은 마치 바다에 있는 크릴새우와 같다는 표현을 봤습니다. 돈은 어딘가에 막 넘치고 그걸 스마트한 사람들이 건져내는 거지 돈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것이 있는 위치를 알고 건져낼 수 있는 장비를 가지고 시의적절하게 건져내는 거고 실제로 역량 있는 스타트업들이 지금 많이 벌고 있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기회는 분명히 있다고 봅니다. 근데 그걸 크게 누리는 사람들이 소수라는 게 문제죠."
5. 잘 나가는 사람일수록 험지로 나와야죠
아침 7시에 출근해 밤 10시, 11시에 퇴근한다. '죽지 않기 위해' 주말 하루는 쉰다. 창업하고 6개월 동안은 집에 단 한 푼 가져가지 못했다. 지난 해 초부터 최저생계비 수준의 월급을 가져간다. 아내가 일을 해서 보태고 모아 놓은 돈으로 살지만 살림 규모가 많이 줄었다. 고3 아들, 고1 딸에게 예전에는 해줄 수 있었던 것을 지금은 해주지 못한다. 그래도 언론사를 떠나 창업한 것을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다. 자랑할 만한 성취가 있는 것도 아니고 전망이 뚜렷하게 보이는 것도 아니고 매일매일 생존의 위기를 느끼는 사람이다. 신중하고 말수도 많지 않은 이 사람이 왜 인터뷰 요청에 응했을까.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있었을 것이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왜 인터뷰 요청에 응하셨습니까.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 재능이나 잠재력에 대해 의심하는데 조금 덜 의심해도 좋을 거 같다는 말을 하고 싶었습니다. '난 이 자리로 충분하다, 이 자리에서 끌려 나갈 때까지 여기 무조건 붙어 있을 거야'라고 말하는 분들 많이 봤거든요. 사람들이 자기의 재능을 의심하고 애써 외면하는 경우가 많다고 봅니다.... 나는 이 대학 나왔으니 여기까지 가면 되겠다. 나는 이 회사에 들어왔으니 무슨 무슨 맨으로 불리는 것으로 만족하고 거기에 고착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라고 생각해요."
사람들은 광활한 대자연을 보면서 감탄하면서도 정작 자기 안에 있는 재능에 대해서는 감탄하지 않는다며 아무리 바쁘더라도 스스로를 돌아보는 미 타임(me time)이 필요하다고 했다.
"내가 어떤 재능을 갖고 있는지, 나는 어떤 사람인지 스스로 묻지 않는 거 같아요. 자기 자신에 대해 무심한 거죠. 호구지책에 몰두하면서 자신의 재능은 다 발견하지 못하고 그냥 남들 살아가는 대로 살아가는 부분이 있다고 봐요…. 저는 그게 인생 낭비, 재능 낭비라고 봐요. 저희 회사 캐치 프레이즈도 '너의 놀라운 재능을 방치하지 말라'입니다."
2015년부터 1년 동안 미국 USC에서 석사 과정 공부를 했다. 고3 때보다 더 열심히 공부했던 시절이다. IT 기술을 지렛대로 삼으면 초연결사회에서 사람들이 굳이 큰 조직에 속하지 않고도 개인 역량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게 석사 논문의 주요 내용이다. 논문을 쓰면서 일의 미래가 달라지고 노동 환경이 달라지면서 멋지게 살 수 있는 방법은 많다는 확신을 얻었다.
"이 논문을 학위 하나 얻고 던져버리는 게 아니라 나도 이렇게 살면 되게 좋겠다, 이 논문이, 여기에 쓰는 단어 하나하나가 앞으로 내 삶과 직결되겠구나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내가 직접 이렇게 살아보는 것도 괜찮겠다, 여기에서 나름의 방법과 확신을 얻었으니까 이 방법대로 살아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승객과 차량을 연결시켜주는 우버의 예를 들어 초연결사회의 특징을 설명했다.
"차가 주차장에 세워져 있으면 경제적 가치가 0원이지만 이게 연결돼서 움직이면 가치가 만들어지고 다른 사람에게 편익이 생기잖아요. 저는 사람의 재능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내가 어느 직장에 속하는 순간 나는 그 직업에 무슨 무슨 맨이 되어버리고 내가 갖고 있는 반짝반짝 빛나는 재능이나 경험은 그냥 주차돼 있고 방치되어 있는 거죠…. 저는 사람과 사람이 제때 제대로 연결이 되면 사회 문제의 상당 부분은 잘 해결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투자 받은 돈이 6억 원 남짓이다. 투자자들이 이 사람의 아이디어와 열정에 투자한 돈이다. 초기 법인 설립 자금을 제외하면 자기 돈을 가져다 쓰지는 않았다. 도전하는 사람에게 기회가 열려 있다며 특히 우리 사회에서 잘 나가는 사람일수록 도전해야 한다고 말했다. 창업을 전후해서 몇 군데서 자리를 제안받은 적이 있다. 공직 제안도 있었고, 홍보업체, 언론사에서도 제안이 있었지만 관심을 두지 않았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제가 회사 나와서 들었던 말 중에 조금 기분 나쁜 이야기가 '그렇게 회사 잘 다니다가 왜 나왔습니까' 하는 말이었습니다. 그 말 들으면 속으로 '회사에서 못 나가는 사람들이 창업해야 합니까' 하는 생각이 들곤 했어요. 저는 잘 나가는 사람들일수록 험지로 나와야 된다고 생각해요. 좋은 대학 나온 사람들 우리 사회가 배려해주잖아요. 그러는 이유는 우리 사회의 미래를 만들 사람들이기 때문이잖아요. '너희가 잘해야 우리 사회가 잘되는 거잖아' 하는 생각 때문인데 그런 사람들이 그냥 안정 지향적으로만 가는 것은 사회적으로 낭비라고 생각해요…. 이제 초연결사회니까 기회는 더 큰 거죠. 국내에만 있는 게 아니거든요. 우리 사회에서 교육 잘 받고 스마트하고 이런 사람들이 글로벌로 진출하면 저는 훨씬 큰 기회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싶고 굳이 이 작은 공간에서 아웅다웅하지 않고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SBS에 합격했을 때 청주 고향 마을에 축하 플래카드가 내걸렸다. 아버지의 자랑, 가문의 영광, 그 동네의 경사였다. 유쾌한 낙관주의자였던 아버지는 둘째 아들과 장난치고 이야기하는 것을 즐겼고 이 사람도 아버지를 존경하고 사랑했다. 초등학교 시절 일기장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사람이 아버지라고 했다. 병원에 의식 없이 누워있는 아버지를 그림으로 그린 사연을 말할 때 목이 메었다. 목수였던 아버지는 아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뚝딱뚝딱 만들어줬다. 팽이도 만들어주고 얼레도 만들어주고 책상에 책장까지 만들어줬다. 중학교에 갈 때는 공부방이 필요하다는 말을 듣고 이틀 만에 소 외양간을 고쳐 공부방을 만들어주기도 했다. 아버지는 아들이 방송사에 다니는 것을 참으로 자랑스러워 하셨지만 거기에 묶여 있는 것은 원하지 않으셨다.
이병희 대표의 "베스트 프렌드 아빠"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네가 하고 싶어 하는 게 있으면 뭐든지 해. 하나도 겁내지 마. 아빠도 이 기술 가지고 너희들 먹여 살리고 가르쳤는데 너는 대학도 나왔는데 뭐가 두려워. 네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아' 늘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그런 말씀이 제가 창업하는 데 영향을 줬다고 생각합니다."
아버지는 이 사람이 창업하는 것을 보지 못하시고 2018년 세상을 떠났다. 하늘나라에서도 사랑하는 둘째를 응원하리라 믿는다. 힘들 때면 그런 아버지를 생각하면서 힘을 낸다.
6. 너무 작은 악을 너무 모질게 공격한 게 후회됩니다
대(大)이직의 시대다. 언론계 역시 이직 열풍에서 자유롭지 않다. 미풍인가 싶었는데 이제는 돌풍이다. 정치권으로, 기업으로 가고, 학계로도 진출하지만 창업을 하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 내 사업을 하기 위해 언론사를 떠난 기자는 SBS의 경우 이 사람이 처음이었고 다른 언론사에서도 전례가 드물다. 언론인 이직에 대한 의견을 물었더니 언론사 안에 너무 많은 인재들이 모여 있다고 했다.
"언론사가 사람들을 붙잡아놓는 것이 능사는 아니잖아요. 언론사에도 출구가 있어야 됩니다. 그래야 새로운 친구들이 들어올 수 있고 조직에도 활력이 돌고 나간 사람들이 언론에서 쌓은 경험을 밖으로 확산할 수 있다고 보거든요. 미국 같은 경우는 언론인 출신 베스트셀러 작가도 많고 교수도 많고 기업가도 많잖아요. 저는 언론인들이 그런 식으로 좀 더 대중적으로 퍼져나가야 언론의 영향력도 커질 수 있다고 봅니다."
언론사에 있을 때 했던 보도 중에 후회되는 것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기자 시절 초창기에 약자들만 너무 모질게 때린 것이 후회가 된다고 했다. 조직으로부터 인정받고 선배들에게 잘한다는 말을 듣기 위해 '너무 작은 악을 너무 모질게 대한 거 같다'는 것이다. 너무 모질게 공격한 예로 중소 기업인, 자영업자를 들었다.
"잘못된 거를 지적한 것은 맞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기자로서 더 큰 문제, 더 심층적으로 다뤄야 할 것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너무 작고 약한 사람들을 극한으로 밀어붙였다, 너무나도 괴롭게 했다 이런 부분은 후회가 됩니다. 그런 것들을 방치하라는 뜻은 아니지만 기자들은 조금 더 큰 문제를 지적해야 되고, 그런 것만 하기에도 모자라는 거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듭니다."
SBS 탐사보도 <끝까지 판다> 팀 일원으로 2018년 삼성 에버랜드 공시지가 문제, 군병원 진료 문제 등을 집중적으로 파헤친 것도 진짜 큰 문제는 외면하고 눈에 쉽게 보이는 작은 문제를 다뤘던 것에 대한 반성이라면 반성이었다. 언론사를 나온 지 2년, 기자 물이 쏙 빠졌을 법한데 그래도 언론 이야기가 나오니 신이 나는 표정이었다.
"제가 언론사에 있던 2017년부터 2019년까지 많이 들었던 말이 이제는 플랫폼의 시대라는 말이었습니다. 제가 입사를 하던 2000년대 초반에는 콘텐츠가 왕이라고 하던 것과는 분위기가 확 달랐는데 2010년 이후 네이버와 카카오가 성장하면서 우리는 거기에 납품하는 하청업체에 불과하다는 자조 섞인 말들을 하곤 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여전히 콘텐츠의 힘이 더 커질 거라고 봅니다. 플랫폼이 콘텐츠를 구걸하는 시대, 콘텐츠가 귀해지는 시대가 오고 있다고 봅니다."
언론사에는 좋은 인재, 자원, 인프라가 있으니 그 안에 있는 인재들이 제대로 일할 수 있는 환경만 만들어주면 언론인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의 독립 법인처럼 일하고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언론이 사양산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밖에 나와보니 안에 있을 때는 몰랐던 언론의 힘, 언론의 장점이 보이는 모양이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7. 이 사람의 꿈이 실현되길 원하는 이유
경기가 어렵고 금리도 오른다. 투자 분위기가 좋을 리 없다. 얼마 전에는 스타트업계에서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중견 업체가 전 직원에게 권고 사직 조치를 했다. 올 연말 추가 투자를 받아야 하는 이 사람에게 좋은 소식은 아니다.
"타이밍이 왜 이렇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사실이죠. 신문 기사 제목 중에 '스타트업 파티는 끝났다'는 게 있던데 그거 보면서 나는 아직 시작도 못했는데 하는 생각도 들더라구요. 절대적으로 돈이 부족하다기보다는 심리가 얼어붙어서 지금은 다들 지켜보는 상황 같습니다. 대출을 받을 때도 은행에서 심사를 받잖아요. 투자는 얼마나 더 깐깐하겠어요. 돌려받는 돈이 아니니까요…. 저희가 정말로 비전과 확실한 수익 모델을 제시하지 않으면 단 500만 원도 투자받기 어려울 거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가끔 눈에 불꽃이 튀었다. 매일매일이 생존의 위기라고 말할 때, 스타트업은 심장과 머리만 있으면 된다고 말할 때 그랬다. 어떤 직원과 일하고 싶으냐는 질문에 망설임 없이 일잘러, 일 잘하는 사람이라고 대답했다. 상냥하고 소통 잘하고 진중한 사람도 좋지만 일자러만은 못하다는 것이다. 이 말을 들을 때는 스타트업 대표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일한 고객의 시간과 돈을 누가 가져가느냐 싸움인데 절박하지 않으면 밀려나는 게 맞구요. 제가 같이 일하는 후배에게 가끔 묻습니다. 우리 지금 절박하게 일하는 게 맞나? 혹시 대기업 방식, 예전에 있던 조직의 방식을 따라가는 거 아니냐고 묻습니다."
이 사람 아내에게 창업 이후 좋아진 것이 뭐가 있느냐고 했더니 더 많이 신 앞에서 몸을 낮추고 더 자주 무릎 꿇는 것이라고 했다. 절대자에게 호소할 일이 많아진 것은 그만큼 어려운 일도 많았다는 뜻이다. 우리 나이로 48살, 20-30세대가 주축인 스타트업계에서 나이가 많은 축에 속한다. 조금 더 젊었더라면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나이 든 사람이 유리한 점도 있다고 믿는다.
연 매출 몇백억 같은 성취를 이루었다면 굳이 이 사람을 만날 이유는 없다. 그 정도 성공한 사람들은 얼마든지 있고 그런 성공 스토리라면 이 사람에게 들을 이유는 없다. 어려운 아이들에게 좋은 신발을 신기는 꿈을 이룰 수 있을지 아니면 자기 손에 쥔 작은 것마저 잃을지는 신만이 아는 일이겠지만 분명한 것은 이 사람에게는 결과에 못지않게 과정도 중요하다는 점이다. 평탄한 길을 갈 수도 있는 사람이 어둡고 긴 터널을 온몸으로 기어가려는 이유를 다시 듣고 싶었다.
공적인 대화의 힘을 느낀 만남이었다. 사적인 대화였다면 듣는 이는 적당히 짐작하고 넘겼을 테고 말하는 이는 눙치고 넘어갔을 대목을 이번 만남에서는 거듭 확인하고 따져 묻기도 했다. 어떤 질문은 이 사람에게 편하지 않았을 것이다. 2017년 이 사람이 장인을 간병하기 위해 병원에서 출근하고 병원으로 퇴근했다. 같은 부서에 있었지만 그 사실을 전혀 몰랐다. 2018년도에는 아버지를 간병하기 위해 병원에서 출근하고 병원으로 퇴근했다. 그 사실도 주변에서 몰랐다. 카메라 앞에서 이루어진 3시간 정도 인터뷰가 아니었다면 이 사람 속내를 이 정도라도 듣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하고 싶은 말을 다 털어놓은 것은 아닐 테고 했던 말 중에서 도로 주워 담고 싶은 말도 있을 것이다. 이룬 것이 아직 없는데 이런 말을 해도 되는지 망설이는 기색이 역력했고 하고 싶은 말을 꿀꺽 삼키는 듯한 대목도 있었다.
인터뷰를 시작하기 전에 내가 궁금한 것은 이병희라는 사람이지 이병희가 하는 사업은 아니라는 말을 하려고 했다. 그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잠시 망설이는데 먼저 자신이 지금 하는 사업을 참고로 알고 있는 게 좋겠다며 간단히 설명을 해줬다. 인터뷰 중간에 자신의 사업에 대해 묻지 않을 수 있도록 마음을 쓴 것이다. 못 본 사이 체중이 조금 늘었고 이제는 원숙한 중년의 모습이지만 남을 먼저 배려하는 마음은 여전했고 꿈의 크기는 더 커진 듯싶다. 이 사람 꿈이 실현되기를 기원한다. 우리 사회에 좋은 운동화 신는 아이들이 늘어나길 바라는 마음에서 그러하고, 힘든 길 일부러 선택한 용기에 박수를 보내는 마음에서 그러하다. 이 사람 가슴 안에 있는, 그러나 이번엔 듣지 못한 더 많은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라도 이 사람 꿈이 꼭 이루어지길 바란다.
윤춘호(논설위원)(spring84@sbs.co.kr)
▶ 네이버에서 S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가장 확실한 SBS 제보 [클릭!]
* 제보하기: sbs8news@sbs.co.kr / 02-2113-6000 / 카카오톡 @SBS제보
※ ⓒ SBS & SBS Digital News Lab. : 무단복제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