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당역 살인’ 전주환 신상공개
시민들, 땜질식 처방에 허탈감
“검사·판사 등 새로운 시각 필요”
20일 헤럴드경제가 찾아간 서울 중구 신당역 인근에는 일주일째 추모의 발길이 끊기지 않았다. 날이 갈수록 벽면을 채우고 있는 포스트잇과 쌓이는 국화는 한 명의 피해자가 아닌 모두의 일로 이 사건을 인식하는 것을 보여준다. 다만 스토킹범죄의 재발과 반복된 대처에 시민들은 무력감을 느끼고 있었다.
여성 직장인 최모(28)씨는 “신상공개가 여론 잠재우기용 같다”며 “바뀌지 않는 현실을 확인받는 것 같아 괴로워 당분간은 뉴스를 보지 않기로 했다”고 토로했다. 사건 현장을 지나던 60대 남성 오모 씨도 “애석하다”며 “법치국가인데도 법 집행이 미약해 이런 범죄가 되살아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해 10월 스토킹처벌법이 시행된 후 언론의 주목을 받은 주요 스토킹 살인 사건의 피의자는 같은 해 11월 신변보호를 받던 전 연인을 살해한 김병찬(36), 같은 해 12월 자신을 신고한 성폭행 피해여성의 가족을 살해한 이석준(26)에 이어 전주환까지 세 명이다. 이들 피의자의 사건은 모두 가해자·피해자 분리가 안 됐고 그 배경엔 경찰·검찰·법원 조치의 미흡함이 있었다. 시민들이 스토킹 살인 사건에서 국가의 책임을 호소하는 이유다. 스마트워치 오류 등으로 인한 경찰의 늦은 대응, 구속영장 미신청, 구속영장이 신청 후 검찰·법원 기각 등 조치의 틈새로 범행이 발생했다.
그러나 스토킹 살인 사건 후 대응은 되풀이되는 모양새다. 지난해 나왔던 대응이 반복되는 게 대표적이다. 지난 19일 경찰청은 전국 스토킹 사건 전수조사를 지시하며 피의자 보복 위험성 판단, 피해자 보호조치 필요성을 검토해 줄 것을 시도경찰청에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해 11월 19일 김병찬 스토킹 살인 사건 당시에도 서울경찰청은 역시 여성청소년과에 성범죄와 스토킹 사건 전수 재조사를 지시했다.
‘김병찬 사건’ 이후인 지난해 11월 말, 경찰은 스토킹범죄 대응TF를 만들어 개선책을 마련하겠다고 했었다. 당시에도 위험성 높은 가해자에 대해 잠정조치 4호를 적극 활용하도록 하겠다는 말은 나왔다. 매뉴얼이 있어도 작동되지 않았던 현장이 문제가 되기도 했다. ‘이석준 사건’은 신고자의 가족까지 보호해야 하는 경찰 내규가 있었지만 예산과 인력 부족 등으로 적극적으로 작동되지 못했다.
‘전주환 사건’ 후에도 윤희근 경찰청장이 ‘제2의 신당역 사건’을 막기 위해 피해자 보호를 위해 긴급잠정조치를 신설하는 법을 개정하고 검경 협의체를 만들겠다고 밝힌 상태다.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제도도 제도지만 이를 집행하는 현장의 판단이 바뀌어야 한다”며 “처벌이 강화되고 경찰의 잠정조치 신청이 늘어난들 검찰·법원의 시각이 안 바뀌면 무용지물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유치장에서 피해자-가해자 분리에 그칠 게 아니라 조치 이후 가해자가 가진 생각을 바꿔서 나갈 수 있는 치료사법적 처우가 함께 이뤄져야 이후 보복 위험 소지를 낮출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희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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