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장 기각부터 회사 내부망 접속까지 안일한 대처
첫 고소 당시 보호조치, 피해자 요구에 한달만에 종료
전문가 “스토킹처벌법 친고죄 폐지 요구 들었어야”
“불법촬영물 증거인멸 우려 없다?…오히려 확산 위험”
서울 지하철 2호선 신당역. 여자화장실 입구 바로 앞에 CCTV가 설치돼 있다. 박혜원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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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박혜원 기자] 수년에 걸쳐 직장 동료에 스토킹을 당해온 여성 역무원이 결국 2호선 신당역을 순찰하다 살해당하는 사건이 벌어진 가운데, 일각에서는 “모두의 안일한 인식이 낳은 비극”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피해자는 두 차례에 걸쳐 피의자를 고소했지만 지난해 구속영장이 기각된 뒤 1개월의 짧은 신변보호만을 받았다. 선고를 하루 앞둔 14일 피의자는 회사 내부망을 통해 피해자 근무지를 파악하고, 신당역에 1시간 10여 분 동안 머물렀지만 역사(驛舍)에서는 아무런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다.
16일 경찰 등에 따르면 서울 중부경찰서는 15일 오후 역무원 A(28) 씨를 살해한 혐의를 받는 범 서울교통공사 전 직원 전모(31) 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서울중앙지검에 신청했다.
전씨는 14일 오후 9시께 여자화장실을 순찰하러 들어간 A씨를 뒤쫓아 흉기로 찔렀다. 전씨는 현장에서 경찰에 체포됐으나, A씨는 같은 날 오후 11시께 사망 판정을 받았다.
15일 오후 헤럴드경제가 찾은 신당역 여자화장실부터 직원들이 머무는 고객안전실까지는 불과 30m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다. 성인이 뛰어가면 수초 안에 닿을 수 있는 거리다.
또 여자화장실 근처에만 폐쇄회로(CC)TV가 3개, 신당역 전체에는 50개가 설치돼 있지만 1시간 넘게 전씨가 샤워 캡을 쓰고 A씨를 기다리는 동안 이를 이상하게 여긴 직원은 없었다. 서울교통공사 관계자는 취재진에 “CCTV를 24시간 내내 쳐다볼 순 없다”며 “시민의 신고도 따로 들어오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앞서 전씨는 A씨를 상대로 수년에 걸쳐 스토킹을 저질러온 만큼, 이번 비극은 사전에 충분히 예방이 가능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씨와 A씨는 서울교통공사에 2018년 입사한 동기다. 전씨는 2019년 말부터 A씨에게 300여 차례에 걸쳐 전화와 문자 메시지로 ‘만나자’ 는 등 협박성 내용을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A씨를 불법촬영해 이를 유포하겠다며 협박하기도 했다.
이에 A씨는 지난해 10월과 올해 1월 각각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스토킹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등 혐의로 전씨를 고소했다. 그러나 전씨는 불구속 기소 상태로 두 사건이 병합된 재판을 하루 앞둔 시점에 범행을 저질렀다.
신당역 역무원이 15일 여자화장실 입구 등 역사 내에 설치된 CCTV 화면을 모니터링하는 모습. [연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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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 사이에선 수사·사법기관이 초기 대응에 실패한 결과라는 분석이 주로 나온다. A씨는 지난해 10월 전씨를 고소했을 당시 112에 신고하면 경찰이 즉시 출동하는 신변보호를 받았지만 한 달 만에 종료됐다. 스마트워치나 경찰의 주변 순찰은 A씨가 원하지 않아 이뤄지지 않았다는 게 경찰 측 설명이다.
친고죄, 즉 피해자가 원하지 않으면 처벌하지 못하는 조항에 빈틈이 있었다는 지적도 있다. 스토킹 끝에 신변보호 여성과 가족까지 살해한 김병찬(36), 김태현(26)처럼 단순 스토킹으로 끝나지 않은 사례가 잇따르는 만큼, 경찰의 보다 적극적인 보호가 필요했다는 것이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스토킹처벌법 제정 때부터 친고죄 폐지 주장이 지속적으로 나왔음에도 반영이 되지 않았다”며 “피해자 입장에선 신고를 하고 또 하고, 마지막 순간에 비상벨까지 누르며 끝까지 도움을 요청했는데 보호를 받지 못한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A씨 유족도 15일 장례식장에서 취재진과 만나 “(신변보호를 받는 동안) 특별한 문제가 없으니 평범하게 지내려 했던 것 같다. 그런데 가해자 입장에선 앙심을 품고 있었던 것”이라고 호소했다. A씨는 피해 사실에 대해 가족에 전혀 알리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이 지난해 10월 A씨 고소장을 접수한 뒤 서울서부지법에 신청한 구속영장도 기각됐다. 당시 법원은 ‘주거가 일정하고, 증거인멸 및 도주 우려가 없다’는 사유를 들었다. 이와 관련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불법촬영 혐의의 경우) 증거인멸이 아니라 오히려 촬영물 유포 등으로 피해가 확산될 수 있었던 문제”라고 했다.
그러면서 “최근 불구속 피고인이 검찰 구형 후 도주하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며 “구속영장 기준 자체가 높다 보니 판사가 판단하기 어려운 한계도 있다. (범죄가 중대하면) 우선 구속한 뒤 구속적부심 등으로 사후에 해방될 수 있는 사후 구제 방안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황미향 젠더연구소 상임이사도 “처음 영장이 기각됐을 때부터 피해자는 무력감을 느끼고, 보복행위에 대한 두려움도 느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울교통공사 측도 경찰로부터 불법촬영 관련 수사 통보를 받은 직후 전씨를 직위해제 조치했지만, 정작 전씨의 내부망 접속을 차단하지 않았다. 범행이 이뤄진 다음날인 15일에도 전(全) 직원을 대상으로 발송하는 ‘종합상황보고’에 ‘특이사항 없음’이라고 알려 내부 반발을 산 것으로 알려졌다. 〈헤럴드경제 15일자 온라인판 참고〉
이와 관련, 서울교통공사 관계자는 “회사에서 일어난 충격적 상황 때문에 직원들 울분이 많이 쌓인 상태”라고 말했다.
‘역무원 스토킹 피살 사건’이 발생한 서울 지하철 2호선 신당역 여자화장실 입구에 마련된 추모공간에 16일 오전 국화꽃들이 놓여 있다. [연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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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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