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대여성인권센터 상담원 6명이 지난 5월 30일부터 6월 14일까지 15일간 각기 다른 연령대(16~18세)의 아바타를 설정해 제페토 내 성범죄 실태 조사를 실시하는 과정에서 만난 B씨와의 대화 내용. /십대여성인권센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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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버스 내 성범죄가 최근 급증하고 있다. 올해 1월 메타의 가상현실(VR) 플랫폼 ‘호라이즌 베뉴’에 접속한 한 여성이 세 명의 남성 아바타에 둘러싸여 성추행을 당한 일이 대표적이다. 메타는 베타 테스트 기간 발생한 이 사건을 계기로 아바타 간 일정 거리(1.2m)를 유지하는 정책을 시행 중이지만, 다양하게 발생하는 범죄 행위를 예방하기 위해 기업이 취할 수 있는 조치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한국 국회는 이에 거의 매달 새로운 규제 법령을 발의하며 선제적인 입법 보완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으나, 가상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을 기존 성폭력 관련 법으로 처벌할 수 있는지 여부를 놓고 전문가 견해는 첨예하게 엇갈리고 있다.
1일 경찰청에 따르면 2019년 2698건이던 사이버 성폭력 범죄는 2021년 4349건으로 61% 증가했다. 별도로 집계하진 않았지만, 이 중 상당수가 메타버스 내에서 발생했다는 게 경찰 측 설명이다. 현재 메타버스 플랫폼의 주 이용자는 10대인 만큼 대부분 피해자는 아동·청소년으로 추정된다. 국내 대표 메타버스 네이버 ‘제페토’의 경우 지난해 1월 기준으로 7~12세 이용자 비율이 전체의 50.4%에 달했다. 13~18세 이용자 비율은 20.6%였다. 제페토보다 이용자가 훨씬 많은 외국의 로블록스도 7~12세 이용자가 전체의 49.4%, 13~18세 이용자가 12.9%를 차지했다.
조진경 십대여성인권센터 대표는 지난달 31일 국회에서 열린 메타버스 관련 토론회에서 “2014년 이후 스마트폰이 광범위하게 보급되면서 성착취 범죄의 매개로 사용된 디지털 매체는 PC 중심의 채팅 사이트에서 스마트폰 채팅 앱으로 변화했다”며 “피해자 유형도 크게 달라졌는데, 사실상 스마트폰을 들고 다니는 모든 아동·청소년으로 범죄 대상이 확대됐다”고 설명했다.
조 대표는 “스마트폰 채팅 앱은 별도의 성인인증 절차가 없고 임의로 성별과 나이만 입력하면 사용이 가능하고 상대방이 채팅방을 나갈 경우 대화 내용을 지우기 쉬워 오랫동안 성착취자들이 애용해왔다”며 “2017년 이후 소셜미디어, 메신저 등으로 접근할 수 있는 디지털 매체 범위가 확대되면서부터 정서적 친밀감과 신뢰 관계를 형성할 때까지 시간을 충분히 쏟아 개인정보를 수집한 뒤, 신체 사진 및 영상을 요구하는 이른바 ‘그루밍’ 수법이 늘었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처럼 성착취자들의 수법이 교묘해지면서 이제는 아동·청소년이 이용하는 모든 온라인 플랫폼에서 범죄 행위가 일어나고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했다.
실제로 십대여성인권센터 상담원 6명이 지난 5월 30일부터 6월 14일까지 15일간 각기 다른 연령대(16~18세)의 아바타를 설정해 제페토 내 실태 조사를 실시한 결과, 6명 이상의 성인이 이들에게 성적 목적의 대화를 시도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중 1명은 4명의 상담원에 접근해 선물을 사주고 자위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등 성착취를 시도했다. 제페토는 십대여성인권센터의 조사가 끝난 이후인 7월 10일, 선물을 거절할 수 있는 기능을 추가했다.
로블록스의 '자녀 보호 기능'. /로블록스 홈페이지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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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은 이런 상황을 인지하고 부모가 아이에게 유해한 콘텐츠로의 접근을 막을 수 있는 기능(로블록스), 메시지 수신 범위 설정 기능(제페토)을 도입하는 등 안전장치를 더하고 각종 범죄 예방 캠페인을 벌이고 있지만 역부족이라고 토로한다. 한기규 네이버제트 대외협력팀 리드는 “상대 아바타의 옷을 벗기거나 성적 수치심이 드는 행동을 취할 수 없도록 아바타의 행동 패턴을 눕고, 앉고, 뛰는 등으로 한정하고 있다”며 “꾸준히 관련 정책을 갱신하고 모니터링을 이어가고 있지만 (피해자의 신고 없이) 가해자의 의도를 먼저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고 했다.
국회에선 기존 형법이나 성폭력처벌법, 스토킹처벌법 등 ‘인간 대 인간’ 사이에서 행해지는 범죄를 벌하는 조항을 활용해 이 문제를 해결하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민형배 무소속 의원은 지난 5월 ‘다른 사람이 생성한 아바타의 신체 내부에 성기나 도구를 넣는 행위’ 등을 행하는 이용자에 최대 2년의 징역형을 내리도록 하는 성폭력범죄처벌 특례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신현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6월 온라인 공간에서 상대방 의사에 반해 성적 욕망 내지 만족을 위해 성적 언동을 하면 최대 징역 1년 또는 벌금 1000만원을 부과한다’는 내용의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다만 이들 법안은 메타버스 플랫폼 생태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거나, 추상적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민 의원의 법안은 대부분 메타버스 플랫폼 아바타에는 성기가 없다는 점을 짚지 못했고, 윤 의원의 법안은 아바타 간 범죄 행위를 ‘성적 언동’으로 뭉뚱그렸다는 것이다. 윤영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7월 대표발의한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은 그나마 ‘성적 수치감이나 혐오감을 일으키는 행위’와 ‘정당한 이유 없이 접근하거나 따라다니거나 진로를 막아서는 행위(스토킹)’를 언급해 범죄 행위를 구체적으로 서술했다는 평가를 받지만, 마찬가지로 근본적인 문제에 해답은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바로 모호한 처벌 기준이다.
법무부 디지털성범죄대응전문위원회 위원을 역임한 오지원 법률사무소 법과치유 변호사는 “현행법상 처벌은 ‘이용자가 상대 이용자에게 한 행위로 볼 수 있는가, 아니면 아바타에게 한 행위인가’와 ‘이용자가 상대 이용자의 실제 나이를 인식했는가’ ‘기타 범죄 구성 요건에 해당하는가’ 등에 달려있다”고 했다. 기준별 쟁점도 많다. 오 변호사는 “아바타에게 한 행위를 처벌할 경우엔 ‘아바타에게 인격권을 부여할 것인가’가 핵심이 될 것”이라며 “’가상 세계에 현실과 동일한 규제를 적용하는 것이 바람직한가’라는 질문이 제기될 것”이라고 했다. 현실의 자아와 세계를 가상의 자아 및 세계와 동일시하면 법적 혼란과 수사력 분산을 초래할 것이란 견해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다행히 현재 법안은 발의 단계에 있어 보완이 가능하다. 각 의원실은 전문가 의견을 수렴해 법안에 반영하겠다는 입장이다. 수사기관도 관련 입법의 필요성을 납득하고 있다. 올해 대검찰청 계간 논문집인 ‘형사법의 신동향’ 여름호에 실린 ‘메타버스 공간에서의 성폭력 범죄와 형사법적 규제에 대한 연구’ 논문에서 현직 검사인 저자들(김정화, 김윤식, 차호동)은 “메타버스 플랫폼의 기술 수준, 규제와 기술발전의 조화, 일반인의 메타버스 인식 정도를 고려할 때 메타버스 내 성폭력 범죄를 정보통신망법을 통한 규제의 형식으로 접근, 과도기적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박수현 기자(htinmaking@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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