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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9월, 허리케인 '아이다'가 뉴욕에 엄청난 비를 쏟아부으면서 많은 사상자를 냈습니다. 폭우로 인한 사상자의 대부분은 지하층에 사는 저소득층이었죠. 당시 마부뉴스는 재해가 사회적 약자에게 더 큰 피해를 준 미국의 이야기를 전했었습니다. <자연재해는 사회적 약자를 먼저 삼킨다>(https://bit.ly/3SYDzuJ) 레터를 통해서요. 오늘은 1년 만에 다시 자연재해와 사회적 약자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이번엔 미국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나라의 이야기이고요. 오늘은 8월 8일부터 쏟아부은 중부지방의 폭우와 그 피해에 대해 살펴보려고 합니다. 오늘 마부뉴스가 다룰 주제는 이겁니다.
수해는 사회적 약자를 먼저 삼킨다
이번 집중호우가 갈아치운 기록들
우선 지난주에 내린 집중호우가 갈아치운 숫자들부터 살펴볼게요. 일단 강수 기록을 갈아치웠습니다. 8월 8일 동작구의 신대방동에서는 시간당 141.5㎜의 엄청난 비가 쏟아졌어요. 시간당 141.5㎜가 어느 정도냐면 호우경보 발표 기준이 3시간에 90㎜ 혹은 12시간에 180㎜거든요. 이번 집중호우는 호우경보 기준을 가뿐하게 넘겨버렸습니다.
찾아보니까 20년 전 역대 최악의 태풍 중 하나였던 태풍 '루사'보다도 강력한 강수 기록이더라고요. 2002년 8월에 상륙했던 태풍 루사는 강릉에 일일 870.5㎜라는 기록적인 비를 뿌렸습니다. 당시 강릉이 시간당 100.5㎜의 강수량을 기록했는데, 이번 서울에 내린 비는 그보다 훨씬 많았죠. 당연히 서울의 역대 강수 기록을 갈아치웠고요. 서울시가 가지고 있던 1시간 최다 강수량은 1942년의 118.5㎜. 기상이 관측되기 시작된 1907년 이래로 이번만큼 비가 많이 온 경우는 없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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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대방동 관측소에 기록된 데이터를 조금 더 들여다보면, 8월 8일 0시부터 8월 9일 24시까지, 그러니까 총 이틀간 기록된 강수량은 무려 515.5㎜! 지난해 서울 전체를 통틀어서 내린 비가 1,186.5㎜였는데, 2021년 365일간 내린 비의 43.4%가 올해 8월 단 이틀에 내린 셈인 겁니다. 수도권을 할퀸 정체전선은 이후엔 강원도 지역을 중심으로 비를 쏟아부었고, 8월 10일부터는 충청도 쪽으로 내려가서 많은 비를 뿌렸어요.
이례적인 규모의 비가 내린 만큼 피해 규모도 상당합니다. 8월 16일 기준으로 보험사에 신고 처리된 침수차만 1만 1,142대. 피해액은 1,583억 원 규모로 집계되고 있어요. 지난해 자동차보험으로 가장 많은 영업이익을 낸 곳이 DB손해보험인데, 한 해 동안 벌어들인 영업이익이 2,143억이었는데요. 이번 집중호우가 자동차보험 영업이익 1등 회사의 1년 치 영업이익의 70%가 넘는 피해를 준 셈입니다.
인명 피해도 있습니다. 8월 19일 기준으로 14명이 사망했고, 2명이 실종 상태입니다. 특히 사회적 약자들의 피해 상황이 심각해요. 동작구의 상도동에선 기초생활수급자이자 발달장애가 있던 여성이 반지하 주택 침수로 사망했고, 관악구 신림동에선 발달장애인 한 분을 포함한 일가족 3명이 역시 반지하 침수로 사망했죠.
반지하에 들이닥친 수해
지금부터는 반지하에 대해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우리나라에 태생부터 반지하가 있었던 건 아닙니다. 원래 우리나라에선 지하층을 주택으로 활용하는 게 금지되어 있었거든요. 우리나라 건축법이 제정된 때가 1962년인데, 이때엔 주택의 거실을 지하에 설치하는 걸 법으로 금지했죠. 지하에 사람 살지 말라고 법으로 정해둔 겁니다.
그런데 1970년에 건축법이 개정됩니다. 당시는 남과 북의 갈등이 심했던 시절이라 전쟁의 위험성도 커졌던 때죠. 전쟁이 언제 터질지 모르니 지하 대피소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있었고, 법을 개정해서 주택에 지하층을 무조건 설치해야 하는 조항을 만들었어요. 방공 목적으로 시작된 지하층은 집이 부족한 당시 시대상과 맞물려 셋방으로 활용되기 시작해요. 그리고 1984년엔 지하층이 지상으로 노출될 수 있는 높이가 3분의 1에서 2분의 1로 완화되면서 본격적인 반지하 주택이 시작됐고요.
이렇게 만들어진 반지하는 대대로 상습 침수 지역이었습니다. 1998년 여름으로 가볼게요. 공교롭게도 이번 집중호우와 같은 날인 1998년 8월 8일, 서울에만 332.8㎜의 비가 쏟아졌어요. 이때도 침수 피해는 반지하가 다 받았죠. 건설교통부와 서울시가 분석해보니 침수 피해의 70~80%가 지하, 반지하 가구에 집중됐어요. 당시 정부의 선택은? 침수 피해가 잦은 재해위험지구에는 지하와 반지하 주택을 못 짓게 하는 거였습니다. 2001년과 2010년 수해에도 비슷했어요. 2010년에도 침수 피해의 90%는 반지하 주택의 몫이었고, 그 대안으로 침수 지역의 반지하 주택 건축 허가를 제한하는 법 개정이 이루어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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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지하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상습적으로 피해를 입으면서, 정부는 법을 통해 계속해서 반지하를 없애고 있어요. 그 결과 확실히 반지하에 거주하는 가구는 줄어들고 있죠. 5년마다 진행하는 인구총조사에서 반지하 현황을 조사한 건 2005년부터인데, 매 조사 때마다 반지하에 거주하는 가구 수는 줄어들고 있어요. 2005년 반지하에 살고 있는 가구는 모두 58만 6,649가구였는데, 2020년 조사 땐 32만 7,320가구로 확 줄어들었어요. 전체 가구 중 반지하 거주 가구의 비율도 2005년 3.7%에서 2020년 1.6%로 줄었고요.
위의 지도는 전국의 시·군·구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반지하에 살고 있는지를 나타낸 지도입니다. 면적에 따른 왜곡을 막기 위해 동일한 면적으로 시·군·구를 재구성했기 때문에 실제 위치와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이미 눈치챘겠지만 반지하 주택의 수도권 비율이 상당하다는 걸 알 수 있을 거예요. 2020년 조사된 반지하 가구 중 95.9%가 서울, 경기, 인천, 즉 수도권에 몰려있어요. 별표로 표시된 가장 많은 가구가 거주하는 곳은 서울 관악구로 무려 20,113가구가 반지하에 살고 있죠.
그렇다면 수도권에 반지하 주택 비율이 높은 이유는 뭘까요?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높아져버린 수도권의 주거비가 핵심 이유입니다. 2019년 주거실태조사 데이터를 보면 지하와 반지하에 살고 있는 임차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182만 원 수준입니다. 반면 수도권에 임차해서 살고 있는 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284만 원이고요. 두 평균 소득이 거의 100만 원 가까이 차이가 나고 있죠. 반지하에 살고 있는 저소득층의 비율은 무려 74.7%이고, 비정규직의 비율은 52.9%나 됩니다. 가파르게 오르는 수도권의 주거비를 감당하기 어려운 사회적 약자와 빈곤층이 선택할 주택이라곤 저렴한 반지하뿐인 상황입니다.
침수 피해를 줄이려고 만든 지도가 있다
독자 여러분들은 혹시 하천홍수지도라고 들어본 적 있나요? 하천홍수지도는 환경부에서 운영하는 사업인데, 최악의 홍수 상황을 가정해서 하천 주변 지역의 침수 범위와 그 규모를 나타낸 지도입니다. 최악의 상황을 상정한 만큼 혹시 생길지 모를 자연재해에 대비해서 인명 피해, 재산 피해를 줄이겠다는 목표로 시작된 사업이죠.
하천홍수지도는 시나리오에 따라 크게 2가지로 나뉘어 있어요. 하나는 비가 많이 와서 하천이 범람했을 때를 그린 하천홍수위험지도, 또 하나는 하천의 범람 없이 도시의 빗물 처리 용량을 넘어설 경우의 침수 피해를 그린 내수침수위험지도죠. 이번 수도권 폭우 상황이 딱 내수침수위험지도의 목적에 맞아요.
그렇다면 하천홍수지도는 이번 자연재해 때 제 역할을 했을까요? 아쉽지만 그렇지 못했습니다. 홍수지도 사업이 생각보다 속도가 많이 걸리고 있거든요. 사실 이 사업은 시작한 지 벌써 20년이 넘었어요. 하지만 내수침수위험지도는 이제 막 시범사업이 끝났다는 사실. 현재 서울 426개 행정동 가운데 내수침수위험지도가 만들어진 곳은 9곳에 불과합니다. 왜 이렇게 지지부진할까요? 아무래도 집값의 영향이 큽니다. 홍수지도의 침수 범위에 해당하는 지역 주민들이 집값이 떨어질까 봐 사업을 반기지 않고 있거든요.
사업 자체도 속도가 걸리지만 만들어진 데이터도 제대로 공개하지 않고 있어요. 제작된 지도라도 공개를 해야 할 텐데 동네 주민들의 민원을 이유로 디지털 데이터가 아닌 인쇄물 지도만 제공하고 있죠. 웹에 올려둔 지도 시스템도 왜인지 동 단위 확대를 막아두었고요. 홍수위험지도정보시스템에 들어가면 "급격한 사용자 증가에 따라 확대 기능에 일부 제한이 있다"는 공지사항만 뜰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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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렇다고 마부뉴스가 가만히 있을 순 없죠. 환경부 시스템에서 제공해주는 지도 이미지를 크롤링해서 확대된 이미지를 확보했습니다. SBS 홈페이지의 기사 페이지에서는 고화질의 홍수위험지도 이미지를 다운로드받을 수 있습니다. 홍수위험지도는 공공누리 4유형 조건(출처 표시, 상업적 이용 금지, 변경 금지)에 따라 이용할 수 있는 만큼, 환경부의 지도는 건드리지 않았어요. 우리나라 전체를 정리하기엔 시간이 걸려서 부득이하게 서울을 우선적으로 진행했다는 점은 양해 바랍니다.
위의 그림은 이번 집중호우 피해가 극심했던 서울의 7개 구의 내수침수위험지도입니다. 참고로 서울시는 구로구, 금천구, 영등포구, 동작구, 관악구, 서초구, 강남구 등 7개 자치구에 특별재난지역 선포를 요청했어요. 7개의 구 중에 내수침수위험지도가 갖춰진 자치구는 영등포구, 동작구, 서초구, 강남구 이렇게 4개 구뿐이죠. 물론 이곳들도 모든 행정동의 지도를 다 만든 건 아닙니다.
아직까지 미완성인 지도이지만 이번 서울 침수 피해를 살펴보기엔 좋은 데이터로 볼 수 있어요. 당장 침수심 영역이 강조된 곳의 지역을 보시죠. 최대 침수심 5m 영역이 포함된 강남역 부근은 지난주의 폭우가 심했던 지역과 일치하죠. 폭우 때 이슈가 되었던 서초동 현자의 위치(서이초등학교 사거리)도 내수침수위험지도를 보면 침수 예상 지역으로 나와 있고요.
● 서울 하천홍수위험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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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내수침수위험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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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먼저 해야 할까?
반지하 일가족이 사망한 서울 관악구 신림동, 침수 피해를 입은 강남구 대치동 일대… 이곳들은 아직까지 내수침수위험지도가 없어요. 이곳뿐만이 아닙니다. 전국의 250개 시·군·구 중에 아직까지 지도가 만들어지지 않은 곳은 모두 201곳. 전국에서 딱 49개의 시·군·구만 내수침수위험지도가 갖춰져 있죠. 시군구라고 모든 읍면동을 커버한 것도 아니라 더 작은 지역 단위로 보면 제작 비율은 훨씬 줄어들 수 있습니다.
역사는 반복되기 마련입니다. 1998년의 폭우 대책과 똑같이 서울시는 반지하 주택을 없애겠다고 선언했어요. 당장 한순간에 반지하에 거주하는 사람들을 내쫓을 순 없으니 20년 정도의 유예기간을 주고 순차적으로 없애겠다는 계획입니다. 궁극적으로 반지하를 없앤다는 계획에 반대할 사람은 어느 누구도 없을 거예요. 하지만 없앴을 때 주거 빈곤층이 선택할 수 있는 제대로 된 대안이 갖춰지지 않는다면 정책은 또다시 흐지부지 되겠죠.
대안 공간이 없다면 불법이라고 반지하가 완전히 사라질지도 미지수입니다. 뉴욕에선 엄연히 사람이 거주할 수 있는 지하실이 금지돼 있지만 뉴욕의 비싼 집세를 감당하기 어려운 저소득층, 그리고 이민자들은 여전히 불법으로 개조된 지하실에 많이 거주하고 있으니까요. 2021년 뉴욕을 덮친 허리케인 아이다로 목숨을 잃은 저소득층 대부분이 바로 이 불법 개조된 지하실과 지하 아파트에 살고 있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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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로 인해 자연재해의 방문은 앞으로 더 잦아질 겁니다. 그리고 그 세기도 강해지겠죠. 안타깝게도 자연재해는 모든 사람들에게 공평하게 상처를 남기지 않아요. 재해는 가장 먼저 빈자를 향할 거고, 그들에게 남기는 피해는 훨씬 더 크겠죠. 피해를 막기 위해선 조기에 대응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는 게 필요할 겁니다. 그 중 하나가 위에서 소개한 하천홍수지도가 될 거고요. 가난한 사람들을 보호할 수 있는 시스템을 부자들이 그들의 경제적 이득을 위해 방해하는 것, 지금 우리가 해결해야 하는 건 이것부터 아닐까 싶어요.
오늘 마부뉴스가 준비한 레터는 여기까지입니다. 오늘은 수해와 사회적 약자에 대해 데이터로 정리를 해봤어요. 이번 주에 독자 여러분에게 묻고 싶은 것은 이겁니다. 산불, 홍수 같은 자연재해로 피해받는 이웃을 돕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 혹시 독자는 어떤 행동을 실천해봤나요? 수해로 피해를 본 지역에 봉사활동을 나간다거나, 기부를 한다거나 말이죠. 어떤 경험이 있는지 아래 댓글을 통해 알려주세요! 오늘도 긴 글 읽어줘서 고맙습니다. (*본 기사는 마부작침 뉴스레터를 편집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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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안혜민 디자인 : 안준석 인턴 : 김도연, 주해람
안혜민 기자(hyeminan@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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