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이 지난 10일 평양에서 열린 전국비상방역총화회의에 참석 연설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1일 보도했다. 연합뉴스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북한은 19일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 담화를 통해 윤석열 정부의 ‘담대한 구상’ 제안 내용과 진정성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윤석열 대통령을 노골적 표현으로 강도 높게 비난하며 남한의 대화 요구에 응할 생각이 없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담대한 구상으로 남북 관계 개선의 물꼬를 트려던 윤석열 정부의 시도가 수포로 돌아가면서 한반도 정세는 더욱 경색될 것으로 전망된다.
19일 노동신문·조선중앙통신 등을 통해 공개된 김 부부장 담화는 담대한 구상에 대한 거부 선언과 같다. 윤 대통령이 지난 15일 광복절 경축사에서 담대한 구상을 제안한 이틀 뒤 북한이 순항미사일 2발을 발사하며 긴장을 고조시키고, 발사 이틀 뒤 담대한 구상을 비난하는 공식 입장을 밝힌 것이다.
“국체인 핵을 경제협력과 바꾸자는 발상”
김 부부장은 “하도 남쪽동네에서 우리의 반응을 목빼들고 궁금해하기에 오늘 몇마디 해주는 것”이라며 운을 뗀 담화에서 담대한 구상의 내용을 일일이 문제삼았다.
김 부부장은 “우선 ‘북이 비핵화 조치를 취한다면’이라는 가정부터가 잘못된 전제이라는 것을 알기나 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북한이 비핵화를 실질적으로 진전시키면 단계별로 획기적 경제지원을 하겠다는 조건부식 해결 방안에 선을 그은 것이다.
김 부부장은 또 “우리의 국체인 핵을 ‘경제협력’과 같은 물건짝과 바꾸어보겠다는 발상”이라며 “판돈을 더 대면 우리의 핵을 어째볼 수 있지 않겠는가 하는 부질없는 망상”이라고 비난했다. 정치·군사적 안전보장 방안 없이 막대한 경제적 지원만으로 핵 포기를 유도하려는 접근의 비현실성을 지적한 셈이다.
이명박 정부의 대북 정책기조인 ‘비핵·개방 3000’과 다르지 않다는 비난도 이어졌다. 김 부부장은 “동족대결의 산물로 버림받은 ‘비핵·개방 3000’의 복사판”이라며 “역사의 오물통에 처박힌 대북정책을 옮겨 베껴놓은 것도 가관”이라고 했다.
담대한 구상 발표 이후 야당과 전문가들로부터 한계라고 지적된 대목과 크게 다르지 않다. 정부는 경제지원 뿐 아니라 정치·군사적 안전보장 방안도 마련해뒀고, 이러한 이유로 비핵·개방 3000과 크게 다르며, 상호 신뢰가 없기에 조건부식 접근은 불가피하다고 주장해 왔지만 북한이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북한 반응에 대해 “충분히 예상 가능했다”고 입을 모았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김 부부장 담화는 담대한 구상이 갖고 있는 다양한 측면들의 허점들을 잘 파고든 비판”이라고 평가했다. 정상장 세종연구소 북한연구센터장은 “북한이 절대로 핵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명확히 재확인한 것”이라며 “북한의 비핵화를 목표로 하는 윤석열 정부의 정책은 근본적인 수정과 전환이 불가피하다”고 평가했다.
“오늘은 담대한 구상 운운, 내일은 전쟁연습”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5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잔디마당에서 열린 ‘제77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경축사를 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북한은 담대한 구상의 진정성도 강하게 지적했다. 김 부부장은 “오늘은 ‘담대한 구상’을 운운하고 내일은 북침전쟁연습을 강행하는 파렴치한”이라며 담대한 구상 발표 다음날 한·미 연합군사훈련 돌입을 비난했다. 윤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 중 “공산 세력과 맞서 자유국가를 건국하는 과정” “공산 침략에 맞서 자유세계를 지키기 위한” 표현을 거론하며 “체제대결을 고취하는데만 몰념했다”고 했다. 남측이 대화를 주장하면서 적대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취지다.
윤 대통령에 대한 강한 불신을 드러내며 향후 남북 대화 가능성을 차단하는 데까지 나아갔다. 김 부부장은 “우리는 윤석열 그 인간 자체가 싫다”며 “우리는 절대로 상대주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밝혀둔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한때 그 무슨 ‘…운전자’를 자처하며 뭇사람들에게 의아를 선사하던 사람이 사라져버리니 이제는 그에 절대 짝지지 않는 제멋에 사는 사람이 또 하나 나타나 권좌에 올라앉았다”고 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과 윤 대통령 같은 남한 지도자들과 상대하지 않겠다는 뜻을 피력한 것이다. 김 부부장은 “북남문제를 꺼내들고 집적거리지 말고 시간이 있으면 제 집안이나 돌보고 걱정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며 지지율이 20%대에 머물고 있는 윤 대통령에 대한 조롱도 했다.
대화 단절, 대결구도 강화···남북관계 ‘먹구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18일 비상방역전에서 임무를 완수하고 위훈을 세운 군의부문 전투원들을 만나 축하 격려 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9일 보도했다. 연합뉴스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현 상황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달 27일 전승절 기념식에서 윤 대통령 실명을 거론하며 대남 적대시 기조를 천명하고, 김 위원장 동생인 김 부부장이 지난 10일 전국비상방역총화회의에서 대북전단에 대한 보복을 시사한 ‘강 대 강’ 대결 국면의 연장선상으로 풀이된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이번 담화는 비난 시점이 역대급으로 빠르고 수위도 높고 주체도 지도부 대표급이란 점에서 이례적”이라며 “남북관계에 대한 전면적인 거부 의사를 표명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담대한 구상을 제안해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끌고 오려던 윤석열 정부의 시도는 물거품이 된 것으로 평가된다. 정부는 담대한 구상을 계속 견지해나간다는 입장이다. 권영세 통일부 장관은 이날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북한의 이러한 태도는 충분히 예상 가능한 범위 내에 있었다”며 “인내심을 갖고 계속 북한을 설득하고 필요하면 압박도 해 대화로 유도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향후 남북 관계는 더욱 경색될 가능성이 높아보인다. 북한의 대남 ‘강 대 강’ 대결 기조와 윤석열 정부의 ‘핵·도발 우선 억제’ 방침은 충돌 소지가 크다. 윤석열 정부가 정상화를 명분으로 한·미 연합군사훈련 태세를 강화하는 데에 북한이 특히 반발하고 있다. 지난 17일 순항미사일 발사로 불만을 드러낸 상황에서 탄도미사일 발사 등 도발 수위를 끌어올릴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박광연 기자 lightyear@kyunghyang.com
▶ [뉴스레터]좋은 식습관을 만드는 맛있는 정보
▶ ‘눈에 띄는 경제’와 함께 경제 상식을 레벨 업 해보세요!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