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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9 (목)

이슈 신천지와 이만희 총회장

신천지 신도 명단 숨겼는데 "방역방해 무죄"…처벌조항 없었다 [그법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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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법알 사건번호 73] 신천지에 "신도 명단 달라"…역학조사 행위일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유행 초기였던 지난 2020년 2월 , 한창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던 건 '신천지예수교'였습니다. 신천지 대구교회 교인으로 알려진 '31번 환자'를 시작으로 감염이 지역 사회에서 폭발적으로 확산하자, 방역 당국 역시 신천지를 주목하기 시작했습니다. 감염 경로를 추적하기 위해 신천지에 교인이나 시설 명단을 요구하기도 했죠.

이후 신천지가 부실 자료를 제출한 것이 알려지면서 비난은 극에 달했습니다. 집회에 참석한 신도 명단을 다르게 제출하거나, 일부 신도들은 뺀 채 제출한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급기야 대구시는 같은 달 신천지 대구교회 간부들을 감염병예방법 위반 혐의로 경찰에 고발하기도 했는데요.

약 2년 6개월의 시간이 지난 지금, 관련 사건들의 대법원 판결도 차차 나오고 있습니다. 뜻밖에도 법이 내린 결론은 "죄를 물을 수 없다" 입니다.

중앙일보

지난 2020년 11월 대구 남구 대명동 신천지 대구교회 건물 출입문에 폐쇄명령서가 붙어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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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법령은?



왜 그럴까요? 감염병예방법 제18조 제3항부터 살펴보시죠. 이 조항은 질병관리본부장, 시·도지사, 또는 시장·군수·구청장이 실시하는 역학조사에서 다음과 같은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1. 정당한 사유 없이 역학조사를 거부·방해 또는 회피하는 행위

2. 거짓으로 진술하거나 거짓 자료를 제출하는 행위

3. 고의적으로 사실을 누락·은폐하는 행위

만약 이 조항을 어겼을 때는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제79조 1호에 나와 있는데요. 검찰은 이 조항으로 신천지 간부들을 기소했습니다. 역학조사를 방해했다는 조항이죠. 그래서 재판 과정에서는 '신도 명단을 달라는 게 역학조사인가' 하는 문제가 떠올랐습니다. 만약 역학조사가 아니라면, 이 처벌 조항도 적용할 수 없게 되니까요.

역학조사의 법적 정의는 뭘까요. 감염병예방법 제2조 제17호는 역학조사를 이렇게 봅니다. '감염병 환자 등이 발생한 경우 감염병 차단과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발생 규모를 파악하고 감염원을 추적하는 등의 활동' 인데요.

시행령에 따르면 ①감염병 환자 등의 인적사항, ②발병일 및 발병 장소, ③감염 원인 및 감염 경로, ④진료기록 등을 조사할 수 있습니다.



법원 판단은?



신천지 다대오지파장, 대구교회 기획부장, 섭외부장, 내무부 서무, 장년회장, 청년회장 등이 감염병예방법 위반으로 기소된 사건을 살펴보시죠.

1·2·3심 법원은 "역학조사 대상은 감염병 환자나 감염병 의사환자, 병원체 보유자여야 하는데, 방역당국이 요구한 전체 교인 명단은 이 대상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조사 내용 역시 '명단'에 불과한 걸 보면, 시행령이 정한 역학조사의 항목이나 방법과는 많이 다르다고 봤습니다. 당시 방역 당국이 보낸 공문에도 '역학조사를 위한 자료 요청'으로 적혀있는 걸 봐서는, 아무래도 이건 '역학조사의 사전 준비행위' 정도라는 거죠.

"법률이 없으면 범죄도 없고 형벌도 없다"라는 법언이 있습니다. 떤 행위를 처벌하기 위해서는 미리 법률에 규정돼 있어야 한다는 건데, 우리 형법 역시 이런 '죄형법정주의'를 지키고 있습니다. 대법원 판례도 "형벌 법규의 의미를 피고인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지나치게 확장해석하거나 유추 해석하는 것은 죄형법정주의의 원칙에 어긋난다"고 보고 있는데요. 사람에게 손해를 끼칠 수 있는 침익적인 행정행위의 근거가 되는 행정법규는 엄격하게 해석하고 적용해야 한다는 판례도 있습니다.

결국 법원의 판단은 "역학조사가 아니었는데도, 역학조사를 방해했다는 법을 적용해 처벌할 수는 없다"로 정리됩니다.

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신천지 대구교회 간부들의 무죄를 확정한다고 15일 밝혔는데요. 지난 12일 대법원 2부(주심 천대엽 대법관)도 "이만희 총회장이 전체 교인 명단을 거짓으로 제출해 역학조사를 방해했다"는 혐의를 무죄로 판단했습니다.

중앙일보

경기도 과천시 신천지 예배당.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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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이들의 '방역 방해' 행위에는 어떤 법을 적용해야 했을까요? 감염병예방법 제76조의 2에 답이 있습니다. 역학조사까지는 아니더라도, 방역당국이 감염이 우려되는 사람의 정보를 제공해달라고 요청할 수 있거든요. 그런데 문제는, 이 사건 당시에는 방역 당국에 거짓 정보를 제공하더라도 처벌을 할 수 있는 조항이 없었습니다. 지난 2020년 9월에야 신설됐으니, 이 사건에는 소급할 수 없었던 겁니다.

위계공무집행방해 혐의 역시 무죄로 결론 났습니다. 법원은 이들이 방역 당국을 적극적으로 기망해 부실한 자료를 꾸며 낸 건 아니라고 봤습니다. 또 "이 자료로 역학조사의 구체적인 업무를 방해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대구교회의 경우 보건소 실무자와 자주 통화해 명단 누락 대상에 대해 수시로 협의한 점, 추후 보완된 명단으로 방역업무가 가능했던 점 등을 고려했습니다.

■ 그법알

‘그 법’을 콕 집어 알려드립니다. 어려워서 다가가기 힘든 법률 세상을 우리 생활 주변의 사건 이야기로 알기 쉽게 풀어드립니다. 함께 고민해 볼만한 법적 쟁점과 사회 변화로 달라지는 새로운 법률 해석도 발 빠르게 전달하겠습니다.

오효정 기자 oh.hyo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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