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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0 (금)

사케 팔고 부동산 임대하는 日은행···폐점위기서 경제회생 주역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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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빌딩 파이낸스 2022···금융, 빅블러 시대 열어라]

<2>금산분리 완화 앞서간 일본

자회사에 '은행업고도화회사' 추가, 업무범위 점차 확대

핀테크 등 디지털 전환···데이터분석·생활지원업도 가능

지방은행 절반은 지역상사 설립···새 비즈니스 개발 속도

서울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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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30일 일본 교토역에서 도보 15분 거리에 위치한 ‘교토은행 가와라마치지점’. 주말이라 불 꺼진 은행 간판 아래로 서너 명의 사람들이 줄지어 들어갔다. 한 명은 건물 1층 편의점으로, 나머지는 3~10층에 입주해 있는 ‘타비노스호텔’ 안으로 사라졌다. 기자도 이들을 따라 ‘편의점·은행·호텔’이 한 지붕을 쓰는 10층짜리 고층 빌딩에서 맥주도 사고 짐도 풀었다. 한 손에는 지난해 7월 30일 문을 연 이 호텔의 오픈 1주년 기념품을 받아 들었다. 프런트데스크 직원은 “지난주 기온마쓰리(기원제) 기간에는 빈 방이 거의 없었다”고 말했다.

원래 이곳은 교토은행 가와라마치지점 단독 건물이었다. 한국처럼 일본 은행들도 ‘돈 먹는 하마’인 지점을 줄이며 가와라마치지점 역시 사라질 뻔했지만 규제 완화가 다시 살려놓았다. 일본 금융 당국이 2017년 9월 지방금융기관이 소유한 부동산의 유연한 공공 목적 임대를 허용하면서 복합 건물로 재탄생할 수 있었다. 행원 30명이 근무하는 가와라마치지점(1층 일부는 ATM, 2층은 전체가 영업점) 면적은 약 700㎡다. 연간 3000만 엔 정도 고정비가 들지만 부동산 임대로 얻는 수익으로 충당한다.

교토은행은 가와라마치지점 외에도 여러 곳에서 부동산 임대로 쏠쏠한 부대 수익을 올린다. 야마나시지점은 건물 일부를 지역 기업에 직원용 기숙사로 내어줬고 사인지점은 비슷한 목적으로 재건축이 진행되고 있다. 건물주가 된 교토은행은 ‘고도(古都)’에서 지점과 일자리를 지켜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은행 업무 범위 확대로 요약되는 일본 금융청의 ‘빗장 풀기’는 2010년대 중반 시작됐다. 지방 소멸은 지방은행에는 생존의 문제였다. 도쿄와 지방을 연결해주는 철도회사가 독자 경영이 어렵다고 선언한 후 다음 차례는 지방은행이었다. 지방은행의 위기에서 일본의 은행 규제 완화는 출발점을 찾았다.

일본 의회는 2016년 5월 은행법을 개정해 은행의 자회사·형제회사 유형에 이른바 ‘은행업고도화회사’를 추가했다. 굳게 닫혔던 부수 업무 규제가 풀리며 은행들이 핀테크 자회사를 두고 디지털전환에 속도를 낼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은행 본체 부수 업무에는 인재소개업(2018년), 정보활용업(2019년) 등이 차례로 추가됐다. 2019년에는 은행의 사업회사 의결권 주식 5% 보유 규제(5%룰)에서 기업회생지원과 사업 승계에 관한 경우를 예외로 인정해주기도 했다.

예상하지 못한 코로나19가 터지면서 2020년 자민당은 한층 속도감 있는 은산분리 규제 완화를 추진했다. 그 결과 은행업고도화회사 등을 통해 생활 지원 서비스, 데이터 분석 업무, 등록형 인재 파견 업무가 가능해지고 비상장 지역활성화사업회사에 대한 의결권 주식 100% 보유를 가능하게 하는 은행법 개정안이 2021년 5월 국회를 통과해 같은 해 11월부터 시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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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제 완화에 지방은행은 지역상사를 빠르게 늘려갔다. 지역상사는 농산물 등 지역 상품의 마케팅이나 유통 확보 등을 생산자를 대신해주는 사업자를 가리킨다. 일본 전국지방은행협회에 따르면 2015년 1곳에 불과했던 지방은행 관련 지역상사는 올해 6월 말 29곳으로 늘었다. 와카이 나나코 지은협 종합기획실 조사역은 “회원 은행으로부터 신고가 접수된 지역상사만 집계한 것”이라며 “지방은행이 실제 관여·설립한 지역상사는 더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역상사의 대표 사례는 2017년 10월 설립된 ‘지역상사 야마구치 주식회사’다. 자본금 5000만 엔을 은행계 금융지주회사 야마구치파이낸셜그룹(FG·14.9%), 벤처 펀드(65.9%), 야마구치현 민간 기업 6개 사(19.2%)가 나눠 출자했다. ‘지모토(고향)’라는 온라인 쇼핑몰을 통해 지역특산물을 판매한다. 특히 야마구치현이 일본 내 최상위 쌀 생산지인 만큼 사케가 주력 상품이다. 정상회담 만찬주로 술상에 자주 올라가는 ‘닷사이’ 등이 이 지역에서 생산된다. 국내에서 금융그룹 자회사가 술을, 그것도 온라인으로 파는 일은 상상조차 불가능하지만 야마구치FG 산하 야마구치의 지모토는 계절마다 나오는 한정판 사케를 완판시키고 있다. 지방은행뿐만 아니라 도시은행도 은행업고도화회사를 통한 혁신에 동참하고 있다. 일본 내 4대 은행인 리소나은행을 거느린 리소나홀딩스는 지난달 가상 농촌 체험과 유아 교육을 결합한 비즈니스 모델의 은행업고도화회사 ‘로코도어’를 설립했다. 리소나은행의 막내 동생 격인 로코도어는 ‘지역(local)의 문(door)를 연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사물인터넷(IoT)을 적용한 농업시설을 구축하고 학생들이 애플리케이션으로 양육·재배 과정을 보며 막 수확한 농산물로 음식을 만드는 체험도 제공한다는 구상이다. 히데타카 시바타 리소나홀딩스 해외공보역은 “가을 이후 본격적인 사업 시작을 위해 날마다 매진하고 있다”고 했다. 향후 5년간 누적 매출 목표는 수십억 엔 규모다. 이 밖에 3대 메가뱅크 중 하나인 미쓰비시UFG은행도 사이버에이전트와 손잡고 디지털 광고업 진출을 선언했다.

일본 금융청은 지난달 29일 서울경제와 만나 “금융기관들이 스스로 지속 가능한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해 일본 경제를 회복·재생시키는 주체로서 인구 감소, 고령화 등에 직면한 지역의 사회·경제 문제 해결에 공헌할 것과 코로나 이후를 준비하고 있는 (지역 중소)기업을 든든히 뒷받침해주는 역할을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도쿄·교토=유현욱 기자 abc@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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