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2.21 (토)

조선소 다단계 하도급 ‘물량팀’이 문제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대우조선 하청 파업이 남긴 과제

경향신문

유최안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부지회장이 지난 7월 19일 경남 거제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에서 농성을 하고 있다. 그는 건조 중인 원유 운반선 내부에 1㎥ 철제 구조물을 만들고 스스로를 가뒀다. |이준헌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원청에서 1차 하청업체, 그리고 물량팀(1차 하청업체로부터 단기 재하도급을 받아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으로 가는 과정에서 ‘기성(도급비) 후려치기’가 이뤄집니다. 혹시 물량팀에 대해 알고 계십니까.”(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

“재하도급 방법으로 활용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이기권 전 고용노동부 장관)

“물량팀의 문제점은 안전보건교육 미흡, 법적 관리 사각지대, 직무교육 미흡, 경미한 사고의 경우 노동자 스스로 산재 처리 요구 등입니다. 이게 적법입니까, 불법입니까?”(이 의원)

“그것은 위법입니다.”(이 전 장관)

“조선소는 불법·탈법으로 왜곡된 도급구조로 인해 위험한 현장입니다. 이런 구조를 계속 방치한다는 것은 불법에 대한 묵인이라고 생각합니다.”(이 의원)

“1차 하청업체의 물량이 늘어나 더 많은 노동자가 필요할 경우 단 한 달간이라도 1차 하청업체가 직접 채용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원청과 협의해서 2차, 3차로 가지 않도록 저희가 지도를 하겠습니다. 거기서 위법의 문제가 있다면 철저하게 조사해 조치하도록 하겠습니다.”(이 전 장관)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4년 10월 8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고용노동부 국정감사에서 이 의원과 이 전 장관 사이에 오간 대화다. 조선업 다단계 사내하도급 구조의 문제점과 노동부가 어떤 방향으로 감독을 해야 할지가 뚜렷하게 담겨 있다.

문제는 국정감사에서까지 조선업 노동시장의 기형적 구조가 언급될 정도로 ‘그림자’가 짙은 상황이었지만, 그 이후로도 현실은 바뀌지 않았다는 점이다. 정부와 원·하청업체 모두 고착화한 구조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문제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곪을 대로 곪은 문제는 지난 6월 2일부터 51일간 이어진,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들의 파업으로 인해 다시 사회적 이슈로 떠올랐다.

■하청노동자가 되레 많은 조선소

조선소 생산인력은 크게 원청업체 소속 정규직 노동자, 원청으로부터 일감을 받는 1차 사내하청업체 소속 상용직 노동자(본공), 1차 사내하청업체로부터 재하도급을 받는 물량팀 등 3개 그룹으로 나뉜다. 전형적인 다단계 하도급 구조다. 원래 조선소 생산인력은 원청 정규직 노동자가 다수였지만 2000년대를 기점으로 큰 변화를 겪으면서 하청노동자 비중이 되레 더 커졌다.

이정희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이 2016년 10월 월간 ‘노동리뷰’에 게재한 ‘조선업 고용구조 현황과 문제점’을 보면, 조선산업에서 사내하청 비중이 유의미하게 증가한 시기는 1990년대다. 조선소들이 수주량에 따라 투입 인원이 결정되는 조선업의 특성을 고려해 ‘노동 유연성’ 확대 정책을 폈기 때문이다. 특히 세계적으로 조선 경기가 좋았던 2000년대 들어 사내하청이 급증하기 시작했다. 1990년대 초반 20%였던 하청 비율이 2002년 들어 50%를 넘어섰다. 이정희 연구위원은 “한국 조선산업이 2010년대 초 너도나도 해양플랜트 사업에 뛰어들면서 필요한 인력을 직영이 아닌 하청, 그중에서도 물량팀 위주로 투입했기 때문에 하청 비율 급증이 더 가속화됐다”고 밝혔다.

조선업 위기가 본격화한 2016년부터 구조조정이 시작되면서 하청노동자 수는 급감했다.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 자료를 보면 2015년 말 13만명가량이던 하청노동자는 지난해 말 4만7000명가량으로 줄었다. 하청노동자 중심으로 단행된 구조조정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말 기준 하청노동자 수는 원청(4만5000명가량)보다 조금 더 많았다. 올해 하반기부터 물량이 늘어나면 하청노동자 비중은 다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조선업의 다단계 하도급 구조는 원·하청노동자 간 임금 격차로 이어졌다. 더 힘들고 위험한 일을 하는 하청노동자가 원청 정규직보다 더 낮은 임금을 받는다. 평균적으로 원청 정규직의 임금을 ‘100’이라고 한다면 1차 사내하청업체 본공이 ‘50~60’, 물량팀이 ‘70’이다. 일당제인 물량팀은 단기간 내 급한 작업을 하고 빠지는 구조라 본공보다 시급 기준으로는 많이 받지만 퇴직금, 복지 혜택 등이 없다. 중대재해도 하청노동자에게 집중된다. 산업안전보건공단에 따르면 2007년부터 2017년 9월까지 조선업에서 발생한 업무상 사고 사망자 수는 모두 324명이었다. 원청 노동자는 66명인 데 비해 사내하청업체 노동자는 257명이었다.

■묵인 속에 온존해온 물량팀

“6월 1일부터 물량팀 사용은 불법입니다.” 현대중공업 사내협력회사 협의회는 2015년 울산조선소 내에 이 같은 내용이 담긴 플래카드를 붙이고 신고센터를 운영했다. 2014년 국정감사에서 물량팀에 대한 지적이 나온 뒤 고용노동부가 감독을 벌이자 나타난 움직임이다. 당시 하청노동자들은 “보여주기식 쇼”라며 물량팀 근절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1차 하청업체는 일감이 줄어들 때 쉽게 고용을 조정할 수 있는 물량팀 사용을 선호하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조선업 중대산업재해 국민참여 조사위원회’가 2018년 8월 발표한 사고조사 보고서를 보면 하청노동자들 예상대로 물량팀은 여전히 일상적으로 활용되고 있었다. 대부분의 조선사는 하도급 계약서에 1차 사내하청업체의 재하도급은 ‘원청의 승인사항’이라고 명문화했지만 이는 현장에서 효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위원회는 “조사결과 1차 협력사가 재하도급 승인을 원청에 제대로 요구하지 않고, 원청 또한 재하도급 활용을 적극적으로 통제하지 않고 있었다”고 밝혔다.

이런 상황에서 물량팀 사용 관행을 억제하는 동력이 된 것이 산업안전 이슈다. 위험의 외주화로 인해 하청노동자 중대재해가 잇따르고, 그 원인이 다단계 하도급 구조라는 지적이 나오자 원청도 대응에 나설 수밖에 없게 됐다.

경향신문

현대중공업 사내협력회사 협의회가 2015년 “6월 1일부터 물량팀 사용은 불법”이라며 울산 조선소 내에 붙여놓은 플래카드. | 금속노조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현대중공업은 2019년 말부터 물량팀을 ‘프로젝트 협력사’로 ‘양성화’하는 과정을 밟기 시작했다. 1차 하청업체의 생산 여건이 되지 않는 경우나 일부 단기 프로젝트성 성격의 블록(조립된 철판)에 대해선 원청이 1차 하청업체를 거치지 않고 바로 프로젝트 협력사에 도급을 주는 방식이다. 도급단계를 하나 줄이는 셈이다. 현대중공업이 지난해 5월 작성한 안전작업계획서를 보면 1차 하청업체는 123개사(1만550명)였고, 프로젝트 협력사는 27개사(1686명)였다. 현대중공업은 “(건조 부문을 기준으로) 2019년 50% 수준의 물량팀 비중이 20%로 감소했다”고 설명했다. 대우조선해양도 현대중공업과 유사한 시도를 하고 있다. 대우조선해양 측은 “대우조선해양에선 (프로젝트 협력사 대신) ‘사내임시협력사’라고 표현한다”고 말했다.

다만 일부 프로젝트 협력사가 물량팀에 재하도급을 하는 문제가 불거졌다. 현대중공업은 “물량팀을 양성화한 프로젝트 협력사에서 다시 물량팀 관련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프로젝트 협력사 관리를 강화하고 우수 프로젝트 협력사는 정규 사내협력사로 전환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현대중공업 프로젝트 협력사는 33개사다.

노동계는 원청의 이런 움직임에 대해 비판적이다. 윤용진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 사내하청지회 사무장은 “원청이 양성화라고 표현을 하지만 (프로젝트 협력사는) 그냥 물량팀이다. 기존의 물량팀장들이 사장을 한다”고 말했다. 이김춘택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사무장은 “프로젝트 협력사는 규모가 큰 물량팀이라고 볼 수 있다. 정년보장이 안 되고 주로 단기계약이니 하청노동자 입장에선 고용이 점점 불안해지는 것”이라고 짚었다.

조선소 다단계 하도급의 또 다른 양태는 ‘아웃소싱’이다. 물량팀은 물량팀장이 노동자들을 데리고 1차 하청업체 밑으로 들어가 일을 하는 것인 데 반해 아웃소싱은 조선소 밖에 인력공급업체 사무실을 차려두고 인력을 모아 하청업체에 공급하는 것이다. 조선업 연구자인 박종식 노동연구원 부연구위원의 말이다. “그간 원청이나 하청업체는 급하게 사람이 필요하면 조선소 경력이 풍부한 작업자 출신이 주도하는 물량팀 네트워크를 통해 일을 처리해왔다. 그런데 2018년 하반기쯤부터 시작된 조선업 구인난으로 인해 물량팀 네트워크로도 인력 확보가 제대로 되지 않자 하청업체들이 인력공급(아웃소싱)업체에도 구인 요청을 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최근에 구인난이 더 심해지면서 인력공급업체들이 일종의 물량팀 역할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다만 인력공급업체는 물량팀과 달리 조선소 업무에 전문성이 없다 보니 단순 인력공급 역할만 한다.” 무허가 인력공급업체가 노동자를 모아 공급하는 것은 중간착취를 금지한 근로기준법·직업안정법 위반이다.

■‘본공 중심’의 안정적 고용구조로

선박의 품질을 떨어뜨리고 하청노동자 중대재해 위험을 높이는 조선업의 다단계 하도급 구조는 더 이상 지속가능하지 않다. 그렇다면 이번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 파업 이후 한국사회에 남겨진 과제는 ‘기형적 원·하청 구조를 어떤 방향으로 개선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다.

노동계와 조선업 연구자들이 공통적으로 강조하는 방향은 단기 재하도급인 물량팀 사용을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것이다. 임금 인상, 손해배상 등 쟁점에 비해 주목받지 못했지만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요구안에는 “재하도급 또는 아웃소싱 업체에 물량을 재하도급(아웃소싱)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물량팀 사용 금지의 다른 말은 조선업 노동시장을 본공이라고 불리는 하청업체 상용직 숙련노동자 중심의 고용구조로 만드는 것이다. 김형수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장은 지난 7월 6일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 상황 관련 긴급 국회 좌담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지금 심각한 조선소 인력난은 구체적으로 하청업체 상용직 숙련노동자의 부족이다. 지금의 임금 수준으로는 하청업체가 상용직 숙련노동자를 구할 수 없다. 결국 하청업체는 급한 대로 재하도급 물량팀 또는 아웃소싱 노동자를 주로 고용할 수밖에 없고, 이 같은 고용이 2~3년 지속되면 하청업체 상용직 숙련노동자 중심의 고용구조는 붕괴되고 재하도급 물량팀 중심의 고용구조로 변화하고 말 것이다.”

2008년 건설산업기본법 개정을 통해 재하도급을 원칙적으로 금지한 건설업이 조선업의 참고 사례가 될 수 있다. 박종식 부연구위원은 “여전히 건설업에 다단계 하도급이 있다고 하지만 예전보다 도급단계가 크게 줄어들었다. 도급단계가 심화될수록 생산관리가 어려워지고 이로 인해 선박 품질저하, 산재 위험이 커지는 만큼 (조선업에서) 물량팀 사용은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현재 물량팀으로 일하는 것이 하청업체 소속으로 일하는 것보다 임금만 놓고 보면 유리한 것은 분명하다”며 “이 때문에 다단계 도급 금지는 하청 부문의 상용직과 물량팀의 임금 차이 문제를 조정하는 노력과 병행될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경향신문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의 파업이 51일째를 맞은 지난 7월 22일 경남 거제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상공에 경찰 헬기가 날아가고 있다. |문재원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원칙적으로 물량팀 사용 금지를 요구한 하청노동자들의 요구는 합의문에 온전히 반영되지 못했다. 대우조선해양 하청 노사가 지난 7월 22일 서명한 합의서에는 “불법적 재하도급(아웃소싱)을 금지한다”고 적혀 있다. 이김춘택 사무장은 “합의서에 ‘불법적’이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어 매우 제한적인 합의였다. 조선소에선 재하도급이 법적으로 허용되기 때문”이라며 “다만 아웃소싱의 경우 불법파견 성격이 강한 사례가 많다. 노조가 법률적으로 문제 제기할 수 있는 근거가 되는 내용”이라고 말했다.

향후 다단계 하도급 개선을 위한 본격적 논의는 원·하청 노사가 참여하는 공동교섭 틀에서 진행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조선소 하청 노사관계 현안은 하청 노사의 교섭만으론 해결할 수 없고, 칼자루를 쥔 원청의 일정한 역할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박종식 부연구위원의 말이다. “올해 초 CJ대한통운 택배기사들의 파업도 택배기사 노조와 대리점연합회의 대화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 있었다. 이런 중층적 거래·고용관계 하에서의 노사관계가 한국사회에서 점차 중요한 이슈로 부상할 것이고, 조선업도 이 흐름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그간 사실상 공백 상태였던 원·하청 노사관계에 대한 사회적 공론화, 중층적 교섭 테이블 안착화에 대한 노사정 모두의 고민이 필요하다. 이번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들의 파업이 그 시발점이 됐으면 한다.”

김지환 기자 baldkim@kyunghyang.com

▶ [뉴스레터]좋은 식습관을 만드는 맛있는 정보
▶ ‘눈에 띄는 경제’와 함께 경제 상식을 레벨 업 해보세요!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