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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4 (토)

이슈 [연재] 연합뉴스 '특파원 시선'

[특파원 시선] 중국 '반도체 굴기'의 허와 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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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문학적 지원에도 부실투자·사익추구 누수…숙청 한파까지

미중 '반도체 전쟁' 속 가시적 성과도…한국과 본격 경합 불가피

연합뉴스

지난 2018년 우한 반도체 공장 방문한 시진핑 주석
[신화=연합뉴스 자료사진]


(상하이=연합뉴스) 차대운 특파원 = 미국 상원이 2천800억 달러(약 360조원)에 달하는 천문학적 재원을 자국 반도체 산업 발전과 기술 우위 유지를 위해 쏟아붓는 내용을 담은 '반도체 지원법'을 통과시켰다.

중국을 정면으로 겨냥한 미국의 결단은 미중 '반도체 전쟁'이 이제 국가의 명운을 좌우할 정도로 큰 전략적 중요성을 띠기 시작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으로 훗날 역사에 기록될 전망이다.

세계 최강국인 미국이 특단의 대책을 마련해 자국 반도체 우위 지키기에 나선 것은 그만큼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큰 위협으로 느끼고 있다는 것을 방증한다.

최근 한국에서는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둘러싸고 막대한 투자에 비하면 이뤄낸 것이 그리 많지 않다고 보는 시선과 중국의 급속한 산업 발전이 한국 경제를 견인하는 주요 축인 반도체 산업에 위협이 되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불안한 시선이 공존하는 모습이다.

세상 대부분의 일이 흑과 백으로 단순히 가를 수 없듯이 중국의 반도체 굴기의 실체도 아마 박한 평가와 과도한 위협론 사이 어딘가에 자리 잡고 있을 것이다.

우선 최근 중국 반도체 산업을 둘러싼 숙청 한파는 중국의 국가 주도 반도체 육성 사업의 암부를 비춘다.

중국 반도체 굴기 프로젝트를 떠받치는 핵심축인 60조원대 국가 펀드인 '대기금'(공식 명칭은 국가집적회로산업투자펀드) 책임자들이 줄줄이 사정 당국의 조사 대상에 올랐다.

심지어 반도체 등 산업을 총괄하던 현직 장관인 샤오야칭 공업정보화부 장관까지 돌연 낙마하면서 중국 관가에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시진핑 국가주석 집권 후 대기금을 선두로 천문학적 국가 재원을 쏟아붓는 방식으로 반도체 산업 육성이 추진됐지만 투자 재원 배분 과정에서 사익 추구 의혹이 제기되는가 하면 '눈먼 돈'이 넘쳐나면서 도덕적 해이 현상도 적지 않게 발생한 것이 사실이다.

대만 TSMC 출신의 저명 엔지니어를 수장으로 영입하고 수조원대 자금까지 투입했는데도 생산 근처에도 가보지 못하고 좌초된 우한훙신반도체제조(HSMC)의 사례는 국가의 맹목적 투자에 기댄 거대 반도체 프로젝트가 어떻게 도덕적 해이 문제로 물거품이 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 대표적 사례다.

연합뉴스

중국 반도체 굴기(PG)
[김민아 제작] 일러스트


'중국의 반도체 항모'로 불리는 칭화유니의 파산 위기 역시 연구·개발을 통한 실력 쌓기를 도외시한 채 막대한 자금력만 동원하면 반도체 자급이라는 꿈을 초단기에 이뤄낼 수 있다는 중국식 맹신이 빚은 실패라는 지적도 적지 않다.

이와 같은 투자 비효율성과 누수 문제로 막대한 투자에도 중국의 반도체 자급 목표 달성이 빠르게 진척되지는 못하고 있다.

시안에서 생산된 삼성전자의 낸드플래시메모리나 우시에서 만들어진 SK하이닉스의 D램 같은 외국 회사의 제품을 포함할 것인지에 따라 가변적이기는 하지만 업계에서는 대체로 현재 중국의 반도체 자급률을 10∼30% 정도로 본다.

중국 정부는 2025년까지 반도체 자급률을 70%까지 높인다는 목표를 세웠지만 현재로서는 이 목표 달성이 무리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따라서 반도체가 미중 기술전쟁의 최전선으로 부상한 상황에서 중국 지도부가 지금껏 이토록 강력하게 추진한 반도체 굴기가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는 내부 반성을 바탕으로 관련자 숙청에 나서 다시 반도체 전쟁의 전열을 정비하려 한다는 관측이 제기될 수 있는 상황이다.

다만 중국의 반도체 굴기가 허울 좋은 구호에 불과할 뿐 허상에 가깝다는 박한 평가 역시 진실의 일면만을 반영하는 것이다.

중국의 반도체 굴기가 중국 당국의 당초 기대에는 못 미치는 수준임은 분명하지만 2014년 대기금 출범 이후 8년 동안 중국이 이뤄낸 구체적 성과도 상당하다.

먼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분야에서 당국이 전폭적으로 밀어주는 SMIC(中芯國際·중신궈지)의 약진이 눈에 띈다.

SMIC는 작년 첨단 반도체의 관문으로 여겨지는 14㎚(나노미터=10억분의 1m) 공정 제품 양산을 시작했다. 일각에서는 미국의 추가 제재를 우려해 공표만 하지 않고 있을 뿐 이미 7㎚ 공정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SMIC는 미국의 제재로 극자외선(EUV) 노광장비를 확보하지 못한 상황이어서 만일 7㎚ 제품 양산이 사실이라면 중대 돌파구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반도체 설계 쪽에서는 첨단 스마트폰용 시스템온칩(SoC) 설계 능력을 확보하고 있지만 미국의 제재로 개점 휴업 중인 화웨이 산하 하이실리콘을 대신해 '중국판 퀄컴'을 지향하는 칭화유니 계열 UNISOC(쯔광잔루이<紫光展銳>)가 자국 시장에서 보급형 스마트폰용 SoC 제품을 중심으로 영향력을 키워나가고 있다.

메모리 반도체 강국인 한국의 입장에서 특히 신경이 쓰이는 것은 낸드 제조사인 YMTC(長江存儲)와 창신메모리(CXMT·長存儲) 등 중국 메모리 반도체 업체들이 이제 본격적인 양산 체제에 들어가 머지않은 미래에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한중 직접 경쟁 구도가 펼쳐질 것이라는 점이다.

그간 크고 작은 실패 경험도 많았지만 중국 지도부는 반도체를 미국에 '목이 짓눌리는' 핵심 분야로 인식하고 제조부터 소재·부품·장비에 이르는 전체 반도체 공급망을 대상으로 전폭적인 지원을 계속히려 한다.

중국은 현재 한국 반도체 최대 수출국이지만 과거 완벽한 상호보완 관계에 가깝던 한국과 중국 간의 산업 관계는 중국 첨단 산업 발전과 함께 때로는 협력적이고 때로는 경쟁적인 복합적 관계로 점차 변화해나가고 있다.

투자기를 거쳐 이제 서서히 본격적 성장과 수확 단계에 접어들기 시작한 중국 반도체 산업의 발전 속도가 급속히 빨라질 가능성이 커진 만큼 중국의 변화를 더욱 정밀하고 객관적으로 관찰하고 평가해야 할 이유가 한층 커졌다.

ch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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