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외소재문화재재단, 기업 후원으로 '보록' 매입…19세기 제작 추정
왕실 의례 따라 왕·왕비 위해 제작…"왕실 정통성·역사성 상징"
왕실 어보 담는 '보록' 귀환 |
(서울=연합뉴스) 김예나 기자 = 지난해 12월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유통조사부 직원들은 솔깃한 내용의 제보를 받았다. 영국에서 우리 문화재가 유통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해당 유물이 무엇인지, 문화적 가치가 어느 정도 되는지 즉각 회의가 열렸다.
재단 직원들은 국내 공예 전문가들에게 유물에 대해 검토해달라고 요청하는 동시에 소장자에게 연락을 취했다. 본래 출처가 어딘지, 이 유물이 고미술 시장에 나온 이유는 무엇인지 계속 확인했다.
시간이 많지 않다는 판단에 따라 총 3차례 해야 하는 평가위원회도 6월 한달 안에 속전속결로 끝냈다. 정보를 확인한 뒤 국내에 들여오고, 매매 계약을 체결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7개월이었다.
그렇게 되찾은 소중한 유산은 '보록'. 왕과 왕비의 덕을 기리거나 사후 업적을 찬양하기 위해 만든 의례용 도장인 어보(御寶)를 보관하는 귀한 상자였다.
국새(國璽)가 국권을 나타내는 실무용 도장으로 주로 공문서에 쓰였다면, 어보는 왕실의 권위를 상징하는 의례용 도장이다. 그 주인이 숨진 뒤에는 역대 국왕과 왕비의 신위를 모신 종묘에 보관했다.
어보는 통상 내함인 보통, 외함인 보록에 담겨 이중으로 보관돼 왔다. 어보를 제작할 때 보록을 함께 제작하는 것이 일반적이나 이전에 만든 것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조선 왕실 어보 담는 귀한 상자 돌아왔다 |
목재에 가죽, 명주 등을 써서 만든 이 보록은 상단 손잡이가 거북이 모양이다. 뒷면 경첩의 아래쪽이 길고 내부에 무문 명주를 사용한 점 등을 볼 때 19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보록의 각 모서리에는 일종의 장식인 '모싸개'도 있는데, 아래쪽이 긴 경첩이나 모싸개는 조선 후기인 1800년대 이후에 제작된 보록에서 나타나는 특징이라고 재단 측은 설명했다.
서준 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은 이날 서울 중구 한국의 집에서 열린 언론 공개회에서 "보록이나 인록(왕세자와 왕세자빈, 왕세손 등의 도장을 담은 상자), 주록(인주를 담은 통)은 형태가 거의 같은데 시대에 따라 양식이 조금씩 다르게 제작됐다"고 설명했다.
경매에 나오기 전에는 영국에 살던 개인이 소장했던 것으로 파악됐는데, 해당 법인은 구매를 희망하는 측과 구체적인 조건을 논하며 판매 협상 중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재단은 조선왕실의 문화재인 보록을 국내로 꼭 들여와야 한다는 판단에 따라 법적 검토를 거쳐 매입을 추진했고, 해당 업체를 끈질기게 설득한 끝에 유물을 확보할 수 있었다.
재단 관계자는 "보록은 인장함과 같이 많은 이들이 보편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대량 제작한 것이 아니라 왕실 의례에 따라 왕과 왕비를 위해 제작했기에 조선 왕실의 정통성과 역사성을 상징한다"고 평가했다.
어보를 담는 함 '보록' 귀환 |
여러 차례 '문화재 지킴이' 역할을 해온 라이엇게임즈는 이번에도 큰 힘이 됐다.
라이엇게임즈는 2012년 문화재청과 협약을 맺은 뒤 조선시대 불화인 '석가삼존도', 항일 의병장 척암 김도화의 '척암선생문집(拓菴先生文集) 책판' 등 5건이 돌아오는 데 도움을 줬다. 이번까지 6건째다.
라이엇게임즈에서 사회환원 부문을 담당하는 구기향 총괄은 "라이엇게임즈는 (문화재 환수를 위해) 빠른 '지원 사격'이 필요할 때 지원한다"며 "6건의 문화재를 환수하는데 10억원 이상 들였다"고 말했다.
보록은 앞으로 국립고궁박물관에서 관리할 예정이다.
박물관은 종묘에서 이관된 보록과 인록 총 312건을 소장 중인데 현존하는 보록은 모두 임진왜란 이후인 1600년대로부터 순종 대까지 300여 년에 걸쳐 제작된 것이다.
이번처럼 보록만 발견된 경우에는 주인을 밝히기 위한 추가 조사·연구가 필요할 전망이다.
최응천 문화재청장은 "이번 보록은 조선 공예 양식과 재료 변천 과정을 살피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며 "활발한 연구로 누구의 것인지, 언제 제작됐는지 등 실체가 명확하게 밝혀지리라 기대한다"고 했다.
보록은 현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진행 중인 '나라 밖 문화재의 여정' 전시를 통해 8월 중 공개한다.
ye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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