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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1 (토)

하청의 불법 점거? 조선업계엔 ‘태초의 불법’이 있었다 [The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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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파이브: The 5] 대우조선 파업, 누가 불법을 말하는가

한겨레

21일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파업 현장 내 독 화물창 바닥에 가로, 세로, 높이 각 1m 철 구조물 안에서 농성중인 유최안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부지회장. 그는 지난달 22일부터 조선소 안 제1도크에서 스스로를 1㎥ 철제구조물에 가둔 채 농성 농성을 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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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시간이 없지 관심이 없냐!’ 현생에 치여 바쁜, 뉴스 볼 시간도 없는 당신을 위해 준비했습니다. 뉴스가 알려주지 않은 뉴스, 보면 볼수록 궁금한 뉴스를 5개 질문에 담았습니다. The 5가 묻고 담당 기자가 답합니다. ▶ 주간 뉴스레터 휘클리 구독신청 https://bit.ly/3qnllp8


파업 51일째, 점거투쟁 31일이 되던 날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들이 하청업체 대표들과 협상을 타결했습니다. 대통령이 나서 “산업 현장 불법 상황은 종식돼야 한다”며 압박했고, 원·하청업체는 노조원들을 상대로 손해배상 같은 민·형사상 수단을 동원해 노동자들을 몰아세운 결과일까요. 제 2의 용산참사, 쌍용차 사태로 나아가지 않은 건 다행이지만, 이번에도 노동자의 파업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사태의 책임이 노동자에게 있는 것처럼 몰아가는 정부와 기업의 행태는 반복됐습니다. 19일부터 거제 파업 현장을 취재한 박태우 기자에게 물었습니다.

[The 1] 협상이 타결될 듯 하다가, 계속 평행선을 달렸는데, 왜 그랬던 건가요?

박태우 기자: 파업에 대한 노조의 민형사상 책임 부분 때문입니다. 보통 노사합의를 통해 투쟁을 종료할 때, 파업에 따른 민형사 면책 합의를 하는 관행이 있습니다. 핵심요구였던 임금 인상 요구 자체를 포기했던 하청노동자들은 민형사 면책을 요구한 거죠. 반면, 하청업체는 원청과 별도로 민형사 소송을 진행하겠다는 태도를 고수했습니다. 하청노사 합의와는 별개로, 원청인 대우조선해양 역시 “7천억원 피해”를 주장하며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진행하겠다며 물러서지 않았던 거죠.

[The 2] 만약 합의가 결렬됐다면, 정부가 강제 진압을 했을까요?

박태우 기자: 현장에 직접 내려와서 보고 내린 결론은 이곳은 절대 경찰력을 투입해선 안 되는 곳이란 것입니다. 경찰이 투입되면 100여명의 조합원들은 거세게 저항했을 겁니다. 농성 중인 도크에서 열걸음만 물러서도 바로 바다입니다. 경찰이 농성장으로 진입하는 과정도 굉장히 위험했을 겁니다. 사람 한 명이 겨우 통과할 수 있는 가파른 계단으로 도크 밑바닥까지 10m 이상 내려가야 하고, 도크 밑바닥에서 다시 사다리를 타고 5m를 올라가야 농성 중인 원유 운반선에 들어올 수 있는 복잡한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한겨레

대우조선해양 하청 노조 파업 51일째인 22일 오전 조합원들이 점거 농성을 하고 있는 경남 거제시 아주동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제1도크에서 경찰들이 경계근무를 서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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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3] 강경 진압 말고 정부가 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은 없었을까요?

박태우 기자: 22일이 노조 집행부에 대한 4차 경찰 출석 요구일이었습니다. 만약 노조가 이때도 응하지 않으면, 법원에서 체포영장을 발부할 가능성이 컸죠. 그러면 경찰이 이를 집행하기 위해 공권력을 투입할 명분이 생겼을 겁니다.

안타까운 건 정부입니다. 애초에 정부가 적극적으로 중재에 나섰다면, 원청이 하청노조의 투쟁에도 뒷짐만 지고 있지 않았다면, 그런 극한 대립까지 이르진 않았을 겁니다. 지난 14일 노동부와 산업자원부 장관이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하니 바로 다음 날부터 원청 주선 아래 하청노조와 하청업체들 사이의 집단교섭이 시작됐거든요. 파업 시작 후 40여 일 동안 정부는 아무 역할도 하지 않다가, 담화문을 발표한 지 5일 만에 대통령이 “기다릴 만큼 기다렸다”고 하는 게 의아했습니다. 노동자들은 지난 5년간 삭감된 임금이 회복되길 기다려왔는데 말입니다.

[The 4] 파업의 부당함을 인정한 법원 판결도 있었잖아요? 파업이 정당한 쟁의 행위의 범위에서 벗어났다며 퇴거 명령에 불응할 경우 사쪽에 하루 300만원씩 지급해야 한다고 결정했던데요.

박태우 기자: 법원의 결정처럼, 점거농성 자체가 위법일 가능성은 매우 높습니다. 그런데 노조가 이러한 투쟁을 벌이게 된 배경을 봐야 할 것입니다. 애초에 조선하청지회가 개별 하청업체랑 1년 간 임금 협상을 해왔는데 전혀 진전이 없어 하청업체들과의 집단교섭을 요구했습니다. 원청도 무시했고요. 이른바 ‘불법 점거’를 하니까 그제서야 원청이 협상 테이블에 앉았습니다. 극단적으로 투쟁을 하지 않으면 상대가 움직이지 않는데 노조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전 이런 구조가 굉장한 사회적 낭비라고 생각합니다. 국제노동기구(ILO)가 2017년까지 여러 차례에 걸쳐 우리 정부에 하청노동자의 단결권·단체교섭권을 보정하라고 권고해온 이유가 있는 거죠.

[The 5] 타결된 내용을 보면, 노조 입장에선 임금 인상을 관철하지 못했고, 민·형사 책임 문제도 깔끔하게 정리되지 않았던데요. 득보다 실이 큰 것 같아요.

박태우 기자: 저도 합의 내용을 보고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노조가 많이 양보했다고 봐야겠죠. 민·형사상 면책과 고용승계가 막판 협상의 쟁점이었는데요. 면책 문제는 향후 대화를 통해 푼다는 데 합의했습니다. 폐업한 하청업체 노동자들을 고용승계 하는 문제는 ‘전원 고용승계’ 대신 ‘최우선 고용을 위해 노력’하기로 합의했습니다. 하청노사 합의와는 별개로 원청 손배소가 남아있어서 그것 역시 남은 쟁점입니다.

조합원들로서는 정말 아쉬움이 컸을텐데, 이 합의안에 노조 조합원의 90% 이상이 찬성했더라고요. 31일 동안 ‘끝장농성’을 했던 동료 조합원의 건강상태와, 파업 장기화에 따른 생계문제, 공권력 투입의 압박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하지만 조합원들은 조선하청지회의 ‘집단교섭’을 통한 첫 ‘단체협약’이라는 것에 많은 의미를 부여하더라고요. 조선소 하청노동자들이 사실상 처음으로 맺은 단체협약이니까요. 그리고 조선소의 하청노동에 관한 문제를 사회적으로 알릴 수 있는 기회였다는 점이 투쟁의 성과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조선업 경기가 살아나는 중이었지만 하청노동자 임금수준은 여전히 낮은 상태거든요. 또 하청업체의 보험료 체납, 임금체불 등 조선업계 불법 일터 문제가 이번 투쟁을 통해 사회적으로 주목받았다는 점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정부가 이른바 ‘불법 점거’만이 아니라 노동자들에게 자행된 불법에도 엄정한 대응을 했다면, 과연 지금과 같은 상황이 벌어졌을까요? 구조적 문제는 반드시 해결해야죠.

김지훈 기자 watchd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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