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법 행위 여부 확실하지 않은데
사막 뒤져서 바늘 찾아내려는 식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회 위원장이 2018년 4월27일 오전 경기도 파주 판문점 남측 평화의 집 앞에서 남북정상회담 공식환영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안내를 받으며 정의용 국가안보실장과 인사하고 있다. 판문점/한국공동사진기자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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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요일(16일) 보는 눈을 의심케 할 만한 기사가 두 건 있었다.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관련 해경의 최종 수사결과 발표(6월16일)로 포문을 연 윤석열 정부의 문재인 정부 대북정책 ‘사건화’ 속도전이 2018년 남북정상회담을 정조준하는 국면으로 바뀌고 있음을 알리는 보도여서다.
<동아일보> 1면의 “국정원, 서훈-김영철 ‘남북 핫라인’ 집중조사”와 <한국방송>(KBS) 뉴스9의 두 번째 꼭지 “국정원, 판문점 USB 분석 착수…‘북한 원전’ 포함 여부 분석”이 그것이다. 취재원은 둘 다 “정부 고위 관계자”였다.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최고난도의 정무·정책 판단이 깔린 남북정상회담 과정을 문제삼아 관련 비밀문서를 뒤지려면 합당한 근거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근거가 부실하다.
‘서훈-김영철 핫라인 집중조사’는 “부적절한 대화 또는 거래가 오갔을 가능성도 있”어서, 그리고 2018년 4월27일 남북정상회담 때 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한테 건넨 ‘한반도 신경제구상’ 영상자료를 담은 이동식저장장치(USB)는 “북한에 원자력발전소(핵발전소)를 건설하는 내용이 담겼는지”를 “들여다보고 있다”는 것이다.
둘 다 분명한 ‘위법행위’를 포착해서 들여다보는 것이 아니다. 더구나 문재인 정부는 세차례 남북정상회담 뒤에도 인플루엔자(독감) 치료·예방약인 타미플루의 대북 인도적 지원 사업조차 미국의 대북 제재 탓에 실행하지 못해 북쪽의 불만을 얻은 터다. 이런 사정을 모를 리 없는 윤석열 정부의 행보는 마치 사막의 모래를 다 뒤져서라도 바늘을 찾아내고야말겠다는 태도에 가깝다.
‘서훈-김영철 핫라인’은 ‘서훈-김영철-폼페이오 3각 핫라인’의 한축이었다. 이 핫라인은 세 명이 남·북·미의 정보기관(국가정보원·통일전선부·중앙정보국) 책임자이던 2017년 연말부터 본격 가동됐다. 문재인-김정은-트럼프 남·북·미 정상을 대리해 2018~2019년 세 차례의 남북정상회담과 두 차례의 북미정상회담, 한 차례 남북미 정상회동의 가교 노릇을 했다. 2017년 한반도 전쟁위기를 2018~2019년 남북미 정상외교로 물꼬를 돌리는 과정에 얼마나 우여곡절이 많았겠나.
당시 남북미 정상이 외교 책임자가 아닌 정보 책임자를 비밀 교섭의 대리인으로 내세운 까닭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정보기관은 전쟁은 피해야 하는데 외교가 작동하지 않을 때 ‘공작’을 포함해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길’을 여는 역할을 담당한다. 미국 등 세계 각국이 정보기관을 의회의 민주적 통제 아래 두면서도 다른 정부 부처와 달리 ‘비공개’ 영역을 폭넓게 인정하는 까닭이다. 대한민국 국회도 국정원의 업무를 감시하는 정보위원회는 비공개로 진행하고, 국정원 예산은 세목까지 밝히지 않는 ‘제한적 공개’를 허용한다. 윤석열 정부의 행보를 두고 “정보기관의 존재 이유를 무력화하는 안보 자해 행위”라고 한 박지원 전 국정원장의 지적을 피고발인의 항변으로만 치부할 일이 아니다.
무엇보다 2022년 7월 한반도 정세가 위태롭다. 북한은 2018년 4월 이후 지켜오던 ‘핵실험·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 유예(모라토리엄)’ 약속을 이미 파기한 데다 7차 핵실험 역시 “김정은 위원장의 결단만 남은 상황”(대통령실)이다. 미-중 패권 경쟁과 우크라이나 전쟁이라는 ‘미-러 대리전쟁’ 장기화 탓에 탈냉전 질서가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다. 윤석열 정부가 위법행위를 포착하지도 못한 상황에서 남북정상회담 비밀문서나 뒤지고 있을 때가 아니다.
이제훈 선임기자 nom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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