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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5 (월)

이슈 종교계 이모저모

[특파원 시선] '종교 블랙홀'에 빨려드는 인도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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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종교 갈등으로 한 인도 힌두교도가 참수 피살되자 항의에 나선 힌두교 단체.
[사진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뉴델리=연합뉴스) 김영현 특파원 = "정부가 종교 문제에만 집중하는 바람에 민생 등 중요한 이슈들이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신(神)'보다는 '음식'을 더 원합니다."

인도 수도 뉴델리에서 인력 공급 업체를 운영하는 프렘 쿠마르(48)의 말이다.

그는 갈수록 종교 이슈에 함몰되는 인도 사회 분위기를 한탄했다.

코로나19 사태 여파가 계속되는 가운데 우크라이나 전쟁까지 발발해 대내외 상황이 녹록지 않지만 정부와 사회의 관심이 온통 종교에 쏠리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인도에서는 최근 물가가 급등하고 우기 폭우로 곳곳에서 인명 피해가 생겼지만 이보다는 종교 관련 이슈가 연일 메인 뉴스로 장식되고 있다.

국민들도 '종교 신념'에 매몰되면서 다른 이들을 노골적으로 공격하는 등 사회 갈등도 깊어지는 분위기다.

지난달 한동안 헤드라인을 장식했던 뉴스는 인도 집권당 인사들의 이슬람 예언자 무함마드 '모욕 발언' 사건이었다.

사건은 집권 인도국민당(BJP) 대변인 누푸르 샤르마가 지난 5월 말 무함마드와 그의 세 번째이자 가장 어린 아내인 아이샤의 관계를 언급한 논란성 발언으로 촉발됐다.

이에 무슬림들은 전국 곳곳에서 샤르마의 체포를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힌두교도나 경찰과의 충돌과 폭동도 빚어졌다.

소셜미디어(SNS)에서 샤르마의 발언을 옹호했던 한 힌두교도가 참수 피살되는 참혹한 일까지 벌어졌다.

이슬람권에서는 무함마드를 조롱하거나 비판하는 것을 신성모독으로 간주하며 엄격히 금할 정도로 민감하게 여긴다.

최근에는 힌두신을 둘러싼 갈등이 사회를 뒤흔들고 있다.

영화감독 리나 마니메칼라이가 이달 초 신작 다큐멘터리 '칼리(kaali)'의 포스터에서 담배를 피우는 힌두신 칼리의 이미지를 공개하면서다.

칼리는 죽음, 시간 등을 관장하는 힌두신으로 많은 인도인이 숭배하는 대상 중 하나다.

포스터가 공개되자 SNS를 중심으로 힌두교도들이 거세게 반발했다. 해당 포스터가 힌두교를 모욕했고 종교 감정을 훼손했다는 것이다.

일부 힌두교도는 마니메칼라이를 체포해야 한다며 경찰에 고발하기도 했다.

이에 마니메칼라이가 힌두교도의 태도를 비난하고 나섰고, 일부 정치인과 사회운동가가 그를 옹호하면서 논란은 더욱 커졌다.

연합뉴스

담배 피우는 힌두신 모습이 담긴 인도 영화 포스터.
[영화감독 리나 마니메칼라이 트위터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인도에서는 2014년 힌두민족주의 성향의 나렌드라 모디 정부가 들어선 후 이런 종교 갈등이 더욱 깊어졌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지난해 초에는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가 인도 정치를 소재로 한 드라마 '탄다브'(Tandav) 속 장면과 관련해 힌두교도들에게 공식으로 사과하기도 했다.

힌두교도들이 드라마 첫 회 속 대학교 연극 장면에서 힌두교 시바신이 희화화됐다고 강하게 반발하며 고발하자 머리를 숙인 것이다.

2020년 11월에는 넷플릭스 드라마 '수터블 보이'(A Suitable Boy)가 보수 힌두교도들의 표적이 돼 홍역을 치렀다.

힌두교도들은 여성 주인공이 힌두교 사찰을 배경으로 남성과 키스하는 장면을 문제 삼았다.

2019년 11월에는 지난 수십 년간 인도 내 힌두교-이슬람교 간 갈등의 진원지로 꼽힌 '아요디아 사원 분쟁'에서 힌두교가 사실상 승리하기도 했다.

당시 인도 대법원은 양측 종교계가 서로 자신의 땅이라고 주장해온 우타르프라데시주 아요디아의 사원 부지를 힌두교 측에 넘겨야 한다고 판결했다.

앞서 1992년 급진 힌두교도들은 이 부지에 있던 이슬람 바브리사원을 파괴했다.

이 과정에서 2천여명이 사망해 당시 충돌은 인도 종교 역사상 최악의 유혈사태로 기록됐다.

인도 인구의 80%를 차지하는 힌두교도들은 16세기 초 무굴제국 초대 황제 바부르가 라마신 탄생 성지를 허물고 그 자리에 이슬람 사원을 세웠으니 이제는 라마 사원으로 되돌려져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반면 무슬림은 그곳이 라마신 탄생지인지 명확하지 않다고 반발해왔다.

모디 총리는 당시 판결에 대해 독립적이고 투명하게 이뤄졌다며 의미를 부여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야권은 모디 정부가 다수인 힌두교도의 표심을 얻기 위해 노골적으로 종교적 갈등을 조장하고 있다고 비난한다.

전문가들은 오는 2024년 모디 정부의 집권 향방을 가를 총선이 열릴 예정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인도 내 종교 관련 갈등은 한동안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보고 있다.

coo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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