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성과급 지급에 정시 배차 기준 강화
기사들 “비가 오든 눈이 오든 지키는 게 맞나
지하철도 아닌데…승객 안전 생각해야 한다”
서울시 “정시 배차 평가 안 하면 시민 불편”
오세훈 서울시장이 7월1일 유튜브로 중계된 제39대 서울특별시장 온라인 취임식에서 선서하고 있다. 서울시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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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차 서울의 한 시내버스 업체 소속 기사인 구자연(53)씨는 지난 1월 중순, 눈이 내리는 궂은 날씨에 배차 시간에 쫓겨 버스를 운행하던 순간이 아직도 아찔하다고 했다. 당시 버스가 강남구에 들어서자 도로가 밀리기 시작했다. 운전석 옆 모니터에는 앞차와의 간격이 벌어지고 있다는 표시가 떴다. 8분 간격을 맞춰야 하는데 벌점 구간에 속하는 12분 차이가 났다. 신호에 걸리면 안된다는 초조함에 미끄러운 눈길을 내달렸다.
구씨는 “많은 승객들을 태우고 눈길 사고를 낼 뻔해 아찔했다. 눈이 오든 비가 오든 이걸 지키는 게 맞나”라며 “지하철도 아닌 버스가 정시를 맞추려면 승객들의 목숨을 담보로 운행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반대로 앞차와의 간격이 좁아지면 뻥 뚫린 도로에서 출퇴근길 승객들의 항의를 받으면서도 저속 운행을 해야 한다.
서울시가 지난해 7월말부터 시내버스 회사 성과급 지급 때 정시 배차 여부를 기존보다 높은 기준을 적용하면서 벌어지는 풍경이다. 기사들은 회사의 압박에 위험천만한 운전을 할 수밖에 없다고 반발한다. 결국 한 기사가 서울시 시내버스회사 평가제가 안전 운행을 위협한다며 오세훈 서울시장을 경찰에 고소했다.
서울의 한 시내버스 업체 소속 기사인 구자연(53)씨가 지난 5월 말 서울시청 앞에서 시내버스 정시성 평가 철회를 요구하며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구씨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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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구씨는 오세훈 서울시장을 직권남용 혐의로 서울 남대문경찰서에 고소했다. 구씨는 <한겨레>에 “배차 시간을 지키려다 올해만 두 번이나 사고를 낼 뻔했다. 시청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기도 했지만, 시가 기존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 고소까지 하게 됐다”고 밝혔다.
서울시는 해마다 65개의 시내버스 회사를 평가해, 성과 이윤 230억원가량을 상위 40개사에 순위별로 차등 지급한다. 순위가 높아야 전기버스 도입 등 정부 시책 사업에도 우선 배정된다. 총 1000점 가운데 배차 정시성의 비중은 90점이다. 그런데 서울시는 지난해 7월말 배차 정시성 등급 기준을 높였다. 90% 이상 정시 배차를 지킬 경우 에이(A)등급을 받는 것은 동일하지만, 비(B)등급부터 이(E)등급까지는 배차정시성 기준을 5%올렸다. 이전에는 정시 배차를 80% 지키면 받을 수 있었던 비등급이 85%를 지켜야만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2020년 시내버스 평가 결과에서 1·2위 업체의 격차는 단 1.4점에 불과할 정도로 1점에 따라 성과급이 갈리기 때문에 회사는 기사들에게 정시 운행을 지키라고 압박하게 된다. 서울의 한 버스업체 관계자는 “시에서 정시성 평가를 매년 하는데, 우리 입장에서는 당연히 잘 지키라고 할 수밖에 없지 않냐”라고 했다.
파업 돌입 직전 서울 시내버스 노사협상이 타결된 15일 오전 서울역버스환승센터에서 버스들이 정상 운행되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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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서울의 한 시내버스 업체에서 위성위치정보시스템(GPS)으로 파악한 기사별 정시성 데이터를 공지한 내용. 구자연(53)씨는 자신을 비롯해 53명의 시내버스 기사가 노무과로 불려가 질책을 받았다고 했다. 구씨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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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씨는 버스업체에서 매주 위성위치정보시스템(GPS)을 통해 수집한 기사들의 ‘배차 정시성 데이터’를 회사 배차실에 붙인 뒤, 정시에서 벗어난 기사들을 노무과로 불러 경고를 주거나 심한 경우 시말서를 쓰게하고, 징계까지 준다고 했다. 매주 50명이 넘는 기사들이 불려갔다고 한다. 구씨가 더 억울한 건 회사가 버스 간격은 철저하게 지키게 하면서, 신호위반에 단속되거나 급브레이크 등으로 승객 민원이 들어오면 강제로 하루 일을 쉬게 하고 수당에서 70만원가량을 깎는다는 점이다. 구씨는 “휠체어나 유모차 탑승 교통 약자의 경우, 충분한 승하차 시간을 줘야 하는데, 회사는 무조건 정시를 지키라고 한다”며 “못 지키면 매주 불려가 ‘당신 같은 사람 때문에 시에서 돈을 못 받으면 책임질거냐’고 모욕적인 말을 들어야 했다”고 말했다. 서울의 다른 버스 회사들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14년째 버스 운전을 하는 이아무개(56)씨도 “15년 가까이 운전만 했는데 시간을 왜 못 지키냐, 신호위반을 해서라도 지키라는 식으로 회사가 기사들을 압박한다”며 “하지만 사고가 나거나 신호위반에 단속되면 그 책임은 기사에게 고스란히 돌아간다”고 했다.
서울시버스노조는 서울 시내의 교통 상황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평가 시스템 때문에 이 같은 일이 벌어진다고 강조한다. 유재호 서울시버스노조 사무부처장은 “외곽만 운행하는 버스면 가능하겠지만, 차가 매일 막히는 서울에서 시민 편의만을 고려해 80∼90%의 정시성을 지키라는게 현실적인가”라며 “회사에서 정시를 지키라고 운전 중에 경고 메시지를 주거나 신호위반이라도 하라고 요구하기도 하는데 정말 대형 사고를 유발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유 사무부처장은 “현재는 평가 매뉴얼을 버스 회사들과 서울시가 협의해서 만들고 있는데 현장 기사들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서울시 관계자는 “배차 정시성 기준이 사라지면 기사들의 스트레스는 줄어들 수 있겠지만, 시민 불편은 가중될 수밖에 없다. 평가 기준을 적용하는 지금도 정시에 도착을 안 한다는 민원이 계속 들어오고 있는데, 기준 자체를 없앨 순 없지 않느냐”라고 말했다. 이어 “버스노조에서도 지속적으로 배차 정시성 평가 개선을 요구하고 있어 시민 불편들과 기사들의 어려움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방안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장나래 기자 w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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