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창공원에 사는 길고양이 |
(서울=연합뉴스) 김윤철 기자 = "공원 내 허가되지 않은 시설로 인해 민원 발생이 있어 이전 협의하고자 하오니 본 안내문을 보시면 공원관리소로 연락해 주시기 바랍니다."
2일 찾은 용산구 효창공원의 한 나무에는 길고양이 때문에 생긴 주민 갈등을 그대로 드러내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길고양이들에게 먹이를 주겠다며 밥그릇과 사료를 가져다 놓는 이른바 '캣맘'들과, 이로 인해 공원이 훼손되고 있다며 관련한 물건을 모두 치워야 한다는 주민들의 갈등이다.
용산구청 공원녹지과는 올해 들어서만 효창공원 길고양이에 관한 민원을 20건 접수했다.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와 블로그 이용자들이 구청에 '길고양이 밥그릇을 치워달라'고 민원을 넣은 것을 인증한 것이 시작이었다고 한다.
일부 네티즌은 고양이를 혐오 표현으로 부르는 게시글까지 올리며 길고양이에 대한 불쾌감을 숨기지 않고 있다.
하지만 캣맘들이 이에 굴하지 않고 밥그릇 설치를 이어가는가 하면, 구청에 역으로 민원을 제기하면서 양측의 갈등이 평행선을 달리는 것이다.
자신을 용산구민으로 소개한 한 네티즌은 공원에 설치된 길고양이 급식 시설을 치웠다가 이를 설치했던 캣맘으로부터 재물손괴죄로 형사고소를 당했다는 사연을 인터넷에 올리며 "국가지정문화재가 이렇게 훼손되고 방치되는 것을 더는 지켜볼 수 없다"고 했다.
백범 김구 선생 등 애국지사의 유해가 있는 효창공원이 사적 제330호로 지정됐다는 점을 들어 보다 엄격하게 관리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고양이 집 철거 전 관리사무소에서 부착했던 안내문 |
반면 용산구 유기동물 쉼터 '쉬어가개냥' 대표이자 캣맘인 이효남(62) 씨는 3일 "올해 초 논란이 시작된 뒤로 캣맘들이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며 "우리는 내 돈, 내 시간을 써가면서 고양이들을 하나라도 살리려 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구청은 관련 민원이 들어올 때마다 밥그릇을 치우고는 있지만, 양측 사이에서 난감해하는 눈치다.
관리사무소는 지난해 10월경 처음 캣맘들이 공원에 설치한 고양이 집과 밥그릇을 치웠다고 한다. 이후 고양이 집은 다시 생기고 있지 않지만, 매달 10∼15개 정도의 밥그릇이 회수되고 있다고 한다.
다만 한 관리사무소 관계자는 "동상 등을 훼손하는 동물이 있다면 비둘기지, 고양이나 캣맘 때문에 시설이 훼손된 적은 없었다"고 언급했다.
인근에 거주하는 직장인 신모(29) 씨는 "이런 갈등과 민원의 반복으로 에너지를 낭비하는 게 구민들에게는 손해"며 "공원에 고양이를 돌볼 수 있는 일정 공간을 마련하고, 돌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권한과 책임을 부여하면 어떨까"라고 말했다.
실제 서울시 동물보호 조례 제21조 4항에 따르면 시장 또는 구청장은 길고양이의 효과적인 개체 수 조절과 쾌적한 도시 환경을 목적으로 소공원 및 근린공원에 길고양이 급식소를 설치할 수 있다. 효창공원은 근린공원에 해당해 급식소 설치가 가능하다.
이형주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 대표는 "효창공원은 길고양이가 많은 다른 지역과 붙어있어 먹이를 금지한다고 고양이가 사라지지 않는다"며 "마포구 경의선숲길처럼 길고양이 급식소를 공식적으로 설치하는 것이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공식 급식소를 설치하면 관련 갈등과 민원이 적어지고 더 깨끗하게 관리할 수 있다는 게 확인돼 성공적인 모델"이라고 설명했다.
효창공원 창열문 |
newsjed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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