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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사실은] "초과 노동, 한국만 1주일 단위로…" 사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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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주 52시간제' 개편을 언급했습니다. 노동 시간 관리를 주 단위로 끊지 않고, 월 단위로 관리해서 탄력적으로 근무하게 하겠다는 게 핵심입니다.

지금은 노동자가 한 주에 52시간 넘게 일하면 사업주가 처벌을 받는데, 바쁜 주에는 52시간에 구애 받지 않고 몰아서 일하고, 덜 바쁜 주는 일을 덜해, 한 달 전체로 볼 때 한 주 평균 52시간을 맞춰 보자는 겁니다. 그러면서 이 장관은 "주 단위 초과 근로 관리 방식은 주요 선진국 중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해외 주요국은 노사 합의에 따른 선택권을 존중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파장이 적지 않았습니다. 주 92시간까지 일할 수 있다는 보도가 이어졌고, 급기야 윤석열 대통령은 "검토하라고 이야기한 상황이고, 아직 정부 공식 입장은 아니다"고 한 발 물러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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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적인 언론 보도가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왔습니다. 결과적으로 혼선이 빚어진 셈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52시간제 개편은 윤석열 대통령의 핵심 공약이기도 합니다. 대통령실 관계자도 윤 대통령이 큰 방향에 공감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방향이 크게 달라지지 않는 범위 내에서, 내용을 다듬어 공식 발표할 가능성이 큽니다.

이정식 장관의 주장을 팩트체크 할 필요성이 있는 이유입니다. 주요 선진국 사례는 초과 노동을 어떻게 관리하고 있는지, SBS 팩트체크 사실은팀이 주요 국가들의 노동 관련 규정 원문을 직접 찾아 확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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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요 선진국은 어떻게?



먼저, 2022년 4월 국제통화기금(IMF) 집계 기준, 우리보다 명목 GDP가 높은 10개국 가운데, 우리가 모범 사례로 자주 인용하는 7개 국가를 분석 대상으로 정했습니다. 미국과 일본, 독일, 영국, 프랑스, 캐나다, 이탈리아 순입니다.

먼저 아래 표부터 보시겠습니다. 사실은팀이 확인한 주요 국가 노동 관련 규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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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노동 시간을 규정하고 있는 법령은 보통 '큰 원칙'을 제시할 뿐 예외 조항도 여럿 있고, 특히 노사가 알아서 정해 탄력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여지를 남기는 부분도 많습니다. 위 표는 각국 산업 현장에서 공식처럼 무조건 적용되는 건 아님을 강조합니다.

먼저, 미국은 공정근로기준법(Fair Labor Standards Act of 1938) 제207조에 관련 규정이 있습니다. 법정 근로시간은 우리처럼 1주 40시간이지만, 초과 노동에 대한 부분은 없습니다. 다만, 초과 노동은 통상 임금의 1.5배를 지급해야 한다고 써 있습니다. 초과 노동과 유급 휴가는 사용자와 노동자 간의 계약을 통해 정한다고 합니다. '법' 보다는 '자율적 협의'에 의존하는 측면이 크다고 볼 수 있습니다.
<미국 공정근로기준법(Fair Labor Standards Act of 1938)> 제207조
고용인의 통상 임금의 1.5배 이상으로 시간을 초과하는 고용에 대한 보상을 받지 않으면, 주 40시간 이상 근무할 수 없다.

no employer shall employ any of his employees …… for a workweek longer than forty hours unless such employee receives compensation for his employment in excess of the hours above specified at a rate not less than one and one-half times the regular rate at which he is employed.


일본도 우리처럼 법정 노동 시간을 근로기준법에 명시하고 있는데, 1일 8시간, 주 40시간으로 법정 노동 시간은 우리와 다르지 않습니다. 초과 노동 상한은 '월 45시간, 연간 360시간'이라고 써 있습니다. 1주 단위가 아니라 한 달, 일 년 단위로 적용하고 있는 셈입니다.
<일본 노동기준법(労働基準法)> 제36조
한도 시간은 1개월에 45시간 및 1년에 360시간으로 한다.

…… 限度時間は、一箇月について四十五時間及び一年について三百六十時間 とす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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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독일과 영국, 프랑스입니다. 이들 서유럽 국가들은 초과 노동과 관련해 매우 엄격한 규정을 적용하기로 유명합니다. 원문을 찾아봤습니다.
<독일 근로시간법(Arbeitszeitgesetz)> 제3조
근로자의 1일 근로시간은 8시간을 초과해서는 안 된다. 다만, 6개월 또는 24주 이내의 1일 평균 근로시간이 8시간을 초과하지 않는 범위에서 근로시간을 10시간까지 연장할 수 있다.
Die werktägliche Arbeitszeit der Arbeitnehmer da
rf acht Stunden nicht überschreiten. Sie kann auf bis zu zehn Stunden nur verlängert werden, wenn innerhalb von sechs Kalendermonaten oder innerhalb von 24 Wochen im Durchschnitt acht Stunden werktäglich nicht überschritten werden.

<영국 근로시간규정(Working Time Regulations 1998)> 제4조와 정부 지침
…… 초과 근무를 포함한 근로자의 근로시간은 7일마다 평균 48시간을 초과할 수 없다. …… 17주 근로 시간이 평균이 주당 48시간 미만의 범위 내에서, 초과 근로가 가능하다.

including overtime, in any reference period which is applicable in his case shall not exceed an average of 48 hours for each seven days. …… more than 48 hours one week, as long as the average over 17 weeks is less than 48 hours a week.

<프랑스 노동법 (Code du travail)> 제L3121-22조
연속 12주의 기간 동안 계산된 주당 근무 시간은 …… 44시간을 초과할 수 없다 .

La durée hebdomadaire de travail calculée sur une période quelconque de douze semaines consécutives ne peut dépasser quarante-quatre heures……


참고로 프랑스는 법정 노동 시간이 1주에 35시간으로, 일반적인 40시간 보다 짧습니다.

독일은 최대 24주를 기준으로 하는데, 24주 단위로 끊어서, 하루 노동 시간이 평균 8시간이 나오면 됩니다. 다만, 아무리 바빠도, 하루 2시간 이상 초과해 일 하면 안 되는 것으로 규제하고 있습니다. 영국은 우리의 '주52시간' 처럼, '주48시간' 제도를 시행하고 있는데, 계산법은 좀 다릅니다. 17주를 기준으로 합니다. 17주 단위로 끊어서, 1주 노동 시간이 평균 48시간 미만이 나오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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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는 연방노동법 169조에 기준 노동 시간을 1일 8시간, 주당 40시간으로 규정하고 있는데, 1주 단위로 48시간까지 가능합니다. 다만, 풍부한 휴가 규정이 뒷받침돼 있습니다. 1년 이상 근무하면 연간 2주, 6년 이상 근무하면 3주의 휴가를 법적으로 보장하는 식입니다.

이탈리아 역시 법정 노동 시간은 1주 40시간인데, 역시 48시간까지 초과 노동이 인정됩니다. 48시간을 넘겨야 할 경우, 노동부의 승인이 있어야 합니다.

■ 탄력적 노동의 조건



종합적으로 볼 때, 주요 선진국들은 대체로 초과 노동을 '주 단위' 보다 더 긴 기간을 기준 삼아 운용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위 국가들은 일반적으로 노동 조합과의 합의를 중요하게 여기고 있어서, 종사자들의 동의가 있으면 탄력적으로 노동 시간을 운영할 수 있게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점은 우리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근로기준법 제51조2 (3개월을 초과하는 탄력적 근로시간제)
① 사용자는 근로자 대표와의 서면 합의에 따라 …… 6개월 이내의 단위 기간을 평균하여 1주간의 근로 시간이 40시간을 …… 초과하여 근로하게 할 수 있다. 다만, 특정한 주의 근로시간은 52시간을 …… 초과할 수 없다.

근로기준법 제52조 (선택적 근로시간제)
사용자는 …… 업무의 시작 및 종료 시각을 근로자의 결정에 맡기기로 한 근로자에 대하여 근로자 대표와의 서면 합의에 따라…… 1개월 이내의 정산기간을 평균하여 …… 초과하여 근로하게 할 수 있다.


쉽게 말해, 평균을 맞추면, 특정한 주는 일을 더 할 수 있도록 규정돼 있습니다.

물론, 여기에는 단서가 있습니다. 바로 '근로자 대표와의 서면 합의'입니다. 노사가 합의하면, 지금도 최대 6개월 내에서 탄력적 운용이 가능하다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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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기자인 저는 노동 시간을 1주 단위가 아니라 한 달 단위로 끊어서 관리하고 있습니다. '주 단위'가 아니라 '월 단위' 기준입니다. 어떤 주는 1주에 52시간 넘게 일해도 되지만, 법에 나온 대로 한 달 기준 주당 평균은 52시간을 맞춰야 합니다. 정확히는 선택근로제(법적 명칭은 선택적 근로시간제, 근로기준법 52조 근거) 근무자입니다. 아무래도 기자들은 언제 무슨 일이 터질지 모르니, 만약의 상황에 대비해 '몰아서'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자는 취지입니다. 물론, 법에 나와 있는 것처럼, 사용자와 근로자 대표와의 '서면 합의'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달리 말하면, 이미 한국 역시 초과 노동을 탄력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게 잘 안된다고 합니다. 뭐가 문제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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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표를 보겠습니다. OECD 국가 기준, 1년 기준 노동 시간과 단체협약이 적용되는 노동자 비율입니다.

참고로, 단체협약은 노사 간의 '합의'를 법 조항처럼 만든 규정을 의미합니다. 위 근로기준법을 보면, '사용자와 근로자 대표와의 서면 합의'에 따라 초과 노동 관리를 융통성있게 할 수 있다고 써 있는데, 서면 합의는 일반적으로 단체협약에 명시됩니다. 우리 근로기준법으로 따지면 '서면 합의'의 적용을 받는 노동자 정도로 이해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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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식 장관은 주요 국가들은 노사 합의에 따른 선택권을 존중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사실입니다. 다만, 한국의 경우 '단체협약'의 적용을 받는 노동자는 전체의 15%로 OECD 국가들 가운데 한참 하위권입니다.

달리 말하면, 초과 노동을 1주 단위, 한 달 단위, 6개월 단위로 끊어서 관리하는 것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닐 수 있습니다. 위에서 살펴본 선진국의 노동법은 관리하는 단위가 뭐든 전체 노동 시간의 기준을 제시하고 있을 뿐, 이걸 토대로 노사가 알아서 협의하고 하라는 취지가 강합니다. 초과 노동의 마지노선,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닐 수 있습니다.

우리의 근로기준법도 그런 취지가 반영돼 있지만, 협의와 합의를 할 수 있는 노동자가 많지 않습니다. '관리 기준'보다는 법에 나와 있는 대로, 근로자 대표와 '서면 합의'를 할 수 있는 환경을 고민하는 게 먼저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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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 조차도 완벽할 수는 없습니다. 한 때 일본은 노사가 초과 노동 시간을 융통성있게 정하라는 취지로 '36협정'을 만들었지만, 되레 장시간 노동을 정당화하는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2015년 일본의 광고 회사 신입 사원이 월 105시간의 초과 근무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 사회 문제가 됐습니다. 일본 노동법의 '1달 초과 노동 45시간' 규정이 부활하게 된 이유였습니다.

노동 문제는 제도 만으로 완성될 수 없으며, 제도 이상으로 손 봐야 할 게 많다는 의미일 겁니다.

분명한 것은, 위 표에서 보면 알 수 있듯, 대한민국은 주52시간제 시행 이후에도 여전히 가장 많이 일하고 있는 나라 가운데 하나라는 점입니다.
SBS 팩트체크 사실은팀은 "주 단위 초과 근로 관리 방식은 주요 선진국 중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해외 주요국은 노사 합의에 따른 선택권을 존중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는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의 발언을 검증했습니다. 선진국들의 노동 관련 규정 원문을 직접 찾아 확인한 결과, 일부 아닌 경우도 있지만, '대체로 사실'로 볼 수 있습니다.

다만, 우리의 근로기준법 역시 노사 합의에 따른 선택권을 대체로 반영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필요가 있습니다. OECD 통계 자료를 분석한 결과, 한국에서 단체 협약의 적용을 받는 노동자는 15% 수준으로 선진국 수준에 비해 적었습니다. 이정식 장관이 말하는 '노사 합의에 따른 선택권'의 전제는, 서면 합의 당사자가 많아야 효과를 볼 수 있을 텐데, 지금의 수치로는 선택권에 제약이 큽니다.

사실은팀은 판정 그 자체보다, 초과 노동에 대한 '선택권'이 제대로 발휘될 수 있는가, 그 맥락에 대한 고민이 우선돼야 한다고 진단합니다.


<참고 자료>
근로기준법 https://www.law.go.kr/LSW/lsInfoP.do?efYd=20211119&lsiSeq=232199#0000
세계법제정보센터 https://world.moleg.go.kr/web/wli/lgslInfoListPage.do
미국 공정근로기준법 https://www.law.cornell.edu/uscode/text/29/207
일본 근로기준법 https://elaws.e-gov.go.jp/document?lawid=322AC0000000049
독일 근로시간법 https://www.gesetze-im-internet.de/arbzg/BJNR117100994.html
영국 근로시간규정 https://www.legislation.gov.uk/uksi/1998/1833/regulation/4/made
프랑스 노동법 https://www.legifrance.gouv.fr/codes/texte_lc/LEGITEXT000006072050
캐나다 연방노동법 https://laws-lois.justice.gc.ca/eng/acts/L-2/page-23.html
이탈리아 노동법 https://www.ilo.org/ifpdial/information-resources/national-labour-law-profiles/WCMS_158903/lang--en/index.htm
OECD 근로시간 https://www.oecd-ilibrary.org/employment/data/hours-worked/average-annual-hours-actually-worked_data-00303-en
OECD 단체협약 적용 근로자 비율 https://stats.oecd.org/index.aspx?DataSetCode=CBC
김주섭 등(2019), <주52시간 근무제 도입에 따른 주요국 훈련동향 실태조사> 한국산업인력공단 용역보고서.


(인턴 : 이민경, 정경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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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원 기자(leekw@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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