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형 기자의 씨네멘터리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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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4일, 미국 샌디에이고 해안가. 퇴역한 미국 항공모함을 개조해 만든 USS 미드웨이 박물관의 갑판에 헬기 한 대가 날아와 착륙했다. 사각 보잉 스타일의 짙은 녹색 선글라스를 쓰고 쓰리피스 슈트를 차려입은 중년 남성이 조종석에서 내려 저벅저벅 걸어왔다. '톰 형'이었다. 이날은 영화 "탑건:매버릭"의 월드 프리미어 날이었다. 영화를 제작하고 비행기를 조종하는 것은 톰이 네 살 때부터 꿈꾼 일이었다. ("I was 4 years old and I wanted to make movies and I wanted to fly airplanes"- 75회 칸 영화제 마스터클래스 대담 중 발언) 톰 크루즈는 "탑건 매버릭"에서도 P-51 머스탱 프로펠러 전투기를 직접 몬다. 당연히 조종 면허가 있다. '꿈은 이루어진다(Dreams come true)'의 표본이란 게 있다면 바로 이런 게 아닐까.
헬기를 직접 조종하고 온 톰 크루즈 (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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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은 대역 없이 위험한 액션 장면을 직접 연기하는 걸로도 유명하다. 가히 할리우드의 성룡이라 할만하다. (몸값 비싼 할리우드 톱스타들은 왠지 몸을 사릴 것 같다. 투자사와 제작사가 뜯어말려서라도) 성룡의 1986년 작 "용형호제" 쿠키영상에는 성룡이 성벽에서 나무로 뛰어내리다 추락해 머리가 깨져 피를 철철 흘리던 NG장면이 나오는데, 실제로 이때 성룡은 두개골이 함몰되고 고막이 나가는 큰 부상을 입어 사망설까지 돌았다. 악착같기는 톰 크루즈도 만만치 않아서 "미션 임파서블: 폴아웃"에서는 족히 20미터는 돼 보이는 건물 사이를 허리에 끈 하나 묶고 뛰어넘다 발목이 부러졌는데 촬영을 멈추지 않고 절뚝거리며 뛰어가는 장면은 혀를 내두르게 한다. 더 놀라운 것은 "미션 임파서블:폴아웃"을 찍을 때가 톰이 50대 중반이었다는 것이다. (성룡이 "용형호제"를 찍었을 때는 30대 초반)
톰 크루즈를 거쳐간 한미 양국의 대통령들
얼마 전 80년대 '한국영화 뉴웨이브'를 연 박광수 감독의 리얼리즘 영화 "칠수와 만수(1988)"의 몇 장면을 다시 보다가 우연히 톰 형을 발견했다. 만수역의 젊은 안성기와 칠수역의 새파란 박중훈이 대화를 나누는 장면의 배경에 극장 간판이 어른거리는데(당시 극장에는 사람이 직접 그린 간판이 나붙었다) 거기 톰 형의 얼굴이 떡 하니 있는 것이었다. 한국에서는 1987년 겨울 개봉했던 "탑건" 1편의 간판이었다. 25살의 풋내기 배우였던 톰 크루즈는 이 영화로 전 세계적인 스타덤에 올랐다. "탑건" 1편이 나온 지 36년이 지났다. 다음 달이면 톰 형은 환갑을 맞는다. 톰 형이 환갑이라니, 아무리 환갑이 예전 느낌이 아니라지만 그래도 믿기지 않는다. 그러나, 한번 생각해보자. 톰 크루즈는 미국에서는 로널드 레이건-아버지 부시-빌 클린턴-아들 부시-버락 오바마-도널드 트럼프-조 바이든 대통령 시절 내내 톱스타였고, 한국의 경우 노태우-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명박-박근혜-문재인-윤석열 대통령 시대까지 최고의 무비 스타로 존재했다. 탑건, 컬러 오브 머니, 칵테일, 레인맨, 7월 4일생, 어 퓨 굿 맨, 파 앤드 어웨이, 미션 임파서블, 제리 맥과이어, 아이즈 와이드 셧, 매그놀리아, 마이너리티 리포트 등 그의 필모그래피는 명감독들의 작품성 있는 영화와 흥행작이 적절히 안배돼있다. (물론 최근에는 블록버스터 배우로 많이 활약한다)
"탑건" 1편과 속편의 포스터 (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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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 최후의 진짜 무비 스타
톰 크루즈는 '최후의 무비 스타'이다. 현재 전 세계 박스오피스는 CG로 무장한 마블의 슈퍼히어로들이 지배한다. 하지만 톰 크루즈는 여전히 리얼 액션을 고집한다. 톰은 스티븐 스필버그나 크리스토퍼 놀란, 제임스 카메론 감독처럼 할리우드에 몇 안 남은 '극장영화주의자'들처럼 영화라는 개념에 극장을 포함시킨다. 톰 크루즈는 넷플릭스나 아마존 같은 스트리밍 서비스를 위해서 영화를 만들지 않는다. "탑건:매버릭"은 코로나로 할리우드 최장 기록인 23개월 동안 개봉을 미뤘지만, 톰은 극장 개봉을 기다리며 스트리밍 서비스에 영화를 넘기지 않았다.
과거에 관객들은 스타 배우를 보기 위해 극장에 갔다. 극장에 같이 가자고 하면 "누가 나오는데?"라는 게 당연한 첫 질문이었다. 아놀드 슈월츠제네거나 실베스터 스탤론은 그 이름 자체가 장르였다. 이제는 그런 '글로벌 무비 스타'가 사라졌다. 세계 각국에서 모든 연령층의 관객을 모을 수 있는 스타 배우는 이제 톰 크루즈 정도 밖에 남지 않았다. 뉴욕타임즈는 '드웨인 존슨, 톰 홀랜드, 젠다이야, 라이언 레이놀즈, 크리스 프랫 등은 엄청나게 성공적이지만 특정 프랜차이즈 영화 또는 슈퍼히어로 영화에 묶여있거나 전 세대에 어필할 수 있다는 게 증명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또 이제는 배우보다 '캐릭터'가 중요하다면서, 스파이더맨은 3명의 배우가, 배트맨은 6명의 배우가 거쳤지만 관객들은 여전히 그 영화들을 보러 갔다고 설명했다. "누가 (마스크를 쓰고) 타이츠를 입는가가 얼마나 중요한 문제일까?"라고 물었다. 반면, 나는 톰 크루즈가 나오지 않는다면 "미션 임파서블 7"을 보러 가지 않을 것이다.
이런 영화는 다시 나오기 힘들 것
주변 사람들이 "탑건" 속편 어떠냐고 종종 묻는다. 그러면 나는 주로 이렇게 답한다. "'탑건:매버릭'이 작품성이 뛰어난 영화인지는 모르겠다. 너무 재밌어서 꼭 봐야 하는 영화라고 말하지도 않겠다 (사람들마다 취향은 다르니까) 하지만 이 영화가 아날로그 항공액션 엔터테인먼트의 정점에 있는 영화인 것만큼 '팩트'다. 앞으로 이런 영화는 다시 보기 힘들 것이다." 톰 크루즈의 나이를 생각할 때, 톰이 다시 이 정도 규모의 실제 미군 '전략 자산'을 동원해 영화를 찍을 가능성은 현저하게 낮다. 게다가 "탑건" 1편의 제작자이자 톰 크루즈와 함께 속편의 공동 프로듀서인 제리 브룩하이머도 이제 나이가 거의 80에 가깝다. 할리우드 최고의 블록버스터 제작자인 제리는 "블랙호크다운", "아마겟돈", "진주만" 같은 영화를 통해 미 국방부와 협력해온 경험이 있다. 톰 크루즈는 "탑건:매버릭"을 위해 마일즈 텔러나 글렌 포웰 등 함께 출연한 배우들의 훈련 프로그램까지 직접 짜가며 CG가 아닌 실제 전폭기 탑승 촬영을 독려했다. 배우들은 넉달 간의 훈련을 통해 중력가속도(G포스)에 적응하는가 하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수중탈출 훈련까지 받았다. 이 모든 것이 영.화.와. 비.행.에. 진.심.인. 톰 크루즈가 아니면 실현되기 어려운 일들이다. 그저 단순히 미군이 전투기를 제공하고 유명 배우와 제작자를 데려다 놓는다고 해서 찍을 수 있는 영화가 아니라는 뜻이다.
"탑건", 그리고 미 국방부와 할리우드
"탑건:매버릭"에는 엄청난 건조비와 유지비로 오로지 미국 만이 유지 가능하다는 니미츠급 항공모함 USS 시어도어 루즈벨트호가 등장하고, 탑건팀이 운용하는 주력기로는 미 해군의 전폭기 F/A-18 슈퍼호넷이 나와 관객의 눈을 사로잡는다. 톰 크루즈는 애초에는 F/A-18을 직접 몰게 해달라고 했다는데 미 해군은 대당 900억 원에 이르는("탑건:매버릭" 제작비의 거의 절반) 이 전폭기의 조종은 허가하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이에 따라 톰 크루즈도 다른 배우들처럼 슈퍼호넷 복좌기(좌석이 앞뒤로 두 개)에 탑승해 영화를 찍었다. 배우들이 탄 뒷좌석에는 IMAX급 화면비를 충족시킬 6대의 카메라가 달려있었고, 그 운용은 배우들이 직접 했다. 전폭기의 비행은 실제 미 해군의 탑건 조종사들이 맡았다. 영화를 보면 정말 CG 수준의 저고도 비행과 곡예 비행에 가까워 보이는 항공 전투씬들이 나와 미 해군 비행대의 전투능력을 과시한다. 맞다, "탑건:매버릭"은 미 국방부의 전폭적인 지원 없이는 만들어질 수 없는 영화다.
"탑건" 제작 현장의 톰 크루즈 (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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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국방부와 할리우드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긴밀하게 협력하는 건 다 아는 사실이다. 1986년 전 세계 최고의 흥행작이었던 "탑건" 1편 직후 미 해군의 지원자는 5배나 늘었다. "탑건" 시리즈는 미군의 프로페셔널리즘과 거대하면서도 정교한 하드웨어와 시스템을 꿈과 용기, 도전의 스토리텔링에 실어 자연스럽게 전 세계로 전파한다. 최근 영국의 가디언지는 '왜 할리우드가 미군의 최고 조력자인가'라는 기사를 썼다. 이에 따르면 펜타곤은 할리우드에 연락사무소를 두고 일 년에 약 130개의 '영군(영화-군사) 협력'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국방부 뿐 아니라 미 육군, 해군, 공군, 해병대, 해안경비대가 모두 LA에 사무소가 있다. 미 국방부 할리우드 지국장인 글렌 로버츠 예비역 공군 중령은 미국의 한 군사 관련 팟캐스트에 나와 말했다. "우리의 임무는 엔터테인먼트 공간에서 미군의 신뢰성과 이미지를 보여주고 보호하는 겁니다."
국방부의 협력과 지원을 받고 싶으면 제작사는 사전에 대본 전체를 제출해야 하고 국방부가 요청하는 어떤 수정도 받아들여야 한다. 미 국방부는 그저 창작자들을 지원하는 것일 뿐 스토리에 관련하지는 않는다고 말하지만 미 국방부 기준에서 볼 때 민감한 정보, 미국 법과 정부 정책, 기본적 인권 등에 반하는 내용은 수용되지 않는다. 베트남전을 다룬 영화 "플래툰(1986)"과 "7월 4일생(1989)"으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수상한 명장 올리버 스톤 감독은 이 두 영화에 대한 국방부의 협력을 수차례 요청했다가 거절당했다. "플래툰"은 약물남용, 인종주의, 미군의 베트남 민간인 학살 등을 다뤘고 톰 크루즈가 연기파 배우로 거듭난 영화 "7월 4일생"은 참전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올리버 스톤은 펜타곤과 할리우드 간의 관계를 다룬 "전쟁 극장(Theatres of War)"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에서 "펜타곤은 영화에 정확성을 제공하겠다고 했지만 그 반대였다"라고 말했다. 가디언지에 따르면 올리버 스톤은 "탑건" 1편을 연출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거절했다고 한다.
펜타곤과 할리우드와 인연은 역사가 깊다. 1929년 제1회 아카데미상 작품상 수상작은 "윙스"(Wings)란 영화인데 제목에서 보듯이 1차 세계대전 중 미 공군의 활약을 그렸다. 실제로 영화를 보면 1920년대에 저 정도의 촬영이 가능했을까 싶을 정도로 실감 나는 항공 전투 액션이 펼쳐지는데, 이 영화 역시 미 공군의 지원을 받았다. 특히 흥미로운 것은 이 영화의 제작사 역시 "탑건"과 같은 파라마운트사라는 점이다.
이 글은 이런 모종의 '커넥션'이 있다는 사실을 밝혀 "탑건"을 비판하려는 건 아니다. 관객이 영화 배후에 있는 이런 사실도 이해하면서, 영화에서 취할 것을 취하고 영화와 현실을 혼동하지 않고 엔터테인먼트로서 충분히 즐겼으면 한다. "탑건"은 이 시대에 영화가 보여줄 수 있는 최상의 엔터테인먼트를 제공하는 영화다. "탑건:매버릭"에서도 톰 형은 어김없이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전력으로 질주한다. 곧 개봉할 "미션 임파서블7: 데드 레코닝"에서도 톰 형은 분명히 그럴 것이다. 나도 달려야겠다.
제독 (에드 해리스)
삼십 년 넘는 군 복무, 참전 메달, 무공 훈장들.
지난 40년 동안 석 대의 적기를 격추시킨 유일한 조종사.
그러나 자네는 진급도 못하고, 전역도 하지 않고. 미친 듯이 전투기를 몰고도 살아남았어.
매버릭, 자네는 지금쯤은 적어도 별 두 개를 달았어야 해.
그런데 이게 뭔가, 겨우 대령이라니. 이유가 뭔가?
매버릭 (톰 크루즈)
제독님, 그게 저도 의문입니다.
제독
이제 끝내야 할 때야, 매버릭 대령. (드론이 득세하면) 파일럿은 곧 사라질거야.
매버릭
그럴지도 모르죠. 제독님. 하지만 오늘은 아닙니다.
(영화 "탑건:매버릭" 중)
이주형 기자(joolee@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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