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울경 메가시티, 대전 트램, 충북 무예마스터십…당선인들 회의적 태도
인천 매립지, 강원 남북교류 등 재검토 전망…충청권 메가시티는 계속 진행
지난해 7월 29일 오후 울산시 울주군 울산전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부울경 특별지방자치단체 합동추진단 개소식에서 부산·울산·경남 지자체와 지방의회 대표들이 특별지방자치단체 설치 협약을 맺고 기념 촬영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
(전국종합=연합뉴스) 지방선거에서 유권자 선택을 받은 단체장이 주도적으로 살림을 꾸려갈 수 있다는 점, 동시에 단체장이 바뀔 때마다 정책과 사업의 연속성을 기대하기 어려운 점은 '풀뿌리 민주주의'로 불리는 지방자치제도의 양면이다.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통해 전국 광역·기초단체장이 현 더불어민주당 소속에서 국민의힘 소속으로 대거 물갈이되면서, 해당 지자체가 진행하던 역점 사업들이 중대한 갈림길에 섰다.
당선인의 철학과 정책, 자기 색깔을 입히고 싶은 의욕, 소속 정당의 정강 등에 따라 전임 단체장들이 역점을 둔 상당수 사업이나 정책은 전면 철회, 원점 재검토, 속도 조절 등 다양한 방식으로 변화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다만 드물게는 단체장 소속 정당을 달리해도 사업이나 정책이 그대로 이어지는 사례도 있다.
지난해 8월 27일 울산전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2021 부울경 메가시티 비즈니스 포럼'에서 박형준 부산시장(왼쪽부터), 송철호 울산시장, 하병필 경남도지사 권한대행이 부울경 경제공동체 '원팀'을 선언하고 있다. [울산시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 메가시티, 특별지자체 등 지역 간 연합체계 '흔들'
앞날이 위태로워진 대표적 사업은 '부산·울산·경남 메가시티' 조성이다.
부울경 메가시티는 송철호 울산시장을 비롯해 오거돈 전 부산시장과 김경수 전 경남도지사 등 민주당 소속 광역단체장들이 '초광역 경제권' 육성을 목표로 추진한 사업이다.
그러나 지난해 보궐선거에서 당선돼 이 사업에 참여한 박형준 부산시장과는 달리, 이번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김두겸 울산시장 당선인과 박완수 경남도지사 당선인은 메가시티에 대한 신중한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당선인 신분으로 진행한 기자회견과 인터뷰에서 김 당선인은 "메가시티는 울산 경제가 대도시에 흡수될 가능성이 높은 만큼, 경주·포항 등과의 동맹을 강화한 후 경쟁력을 갖추는 게 먼저"라고, 박 당선인은 "경남은 도시 기능이 집중된 부산·울산과는 여건이 다르며, 새로 구성되는 도내 지자체들과 협의해 서부경남 등에 대한 발전 전략도 반영시키도록 해야 한다"라고 각각 밝혀 메가시티 조성 지속 여부가 주목된다.
경기 용인시 주도로 경기남부지역 8개 도시가 설립을 추진해 온 특별지자체 (가칭)'경기남부연합'도 비슷한 사례다.
그러나 8개 시 중 특별지자체 설립을 주도한 용인시를 비롯해 성남, 이천, 오산 등 4개 도시 시장들이 국민의힘 소속으로 바뀌면서 추진 동력을 잃은 상태다.
이상일 용인특례시장 당선인은 "특별지자체 설립에 찬성한 다른 도시에서도 시장이 바뀐 상황에서 계속 추진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라면서 "지방정부 차원의 특별지자체보다는 대통령직속 반도체발전위원회를 구성해 용인·수원특례시와 이천시 등 반도체 산업 관련 핵심 도시가 참여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고 본다"라고 말했다.
이장우 대전시장 당선인이 7일 대전시장 제2집무실이 있는 대전 중구 옛 충남도청사에서 인수위 출범식을 열고 위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이장우 대전시장 당선인측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 "원점부터 재검토" 기로에 현 단체장 역점 사업
이장우 대전시장 당선인은 조만간 트램 진행 상황을 보고 받고 나서 사업 적정성 등을 살펴볼 방침이다.
그는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전문가들 평가대로라면 트램이 시속 20㎞를 못 낼 수 있다는 의견이 있는데, 만약 그 속도로 간다면 어떻게 그대로 하냐. 차라리 자전거를 타는 게 낫지 않겠냐"고 반문하면서 "자세한 업무보고를 통해 심각한 문제가 있는지 파악하고, 사업을 계속 추진할지 보완할지를 시민들에게 여쭤보겠다"라고 밝혔다.
충남도에서는 민주당 양승조 지사가 추진한 공공임대 아파트 '더 행복한 주택' 공급 계획이 일부 수정될 것으로 보인다.
충북도에서는 세계무예마스터십이 재검토 목록에 오르게 됐다.
도는 무예 정신의 가치 확산과 국제친선·세계평화 기여를 위해 2016년 8월 사단법인 세계무예마스터십위원회(WMC)를 만들어 청주에 본부를 뒀고, 2016년(청주)과 2019년(충주) 세계무예마스터십을 열었다.
이 사업은 3선 연임 중인 민주당 소속 이시종 지사 주도로 치러졌다. 그러나 재정 상황이 녹록하지 않은 도가 WMC 운영비 등을 지원하는 것은 예산 낭비라는 비판이 일각에서 제기되면서, 세계무예마스터십 존폐론이 선거 쟁점이 됐다.
김영환 당선인은 후보 시절 "지사에 당선하면 무예마스터십을 하지 않겠다"고 못을 박기에 이르렀다.
그는 선거 승리 후 "꼭 필요한지 좀 더 들여다보겠다. 그동안 투입된 예산을 면밀히 살피려고 한다"며 한 발짝 물러섰지만, 무예마스터십이 존폐 기로에 선 것은 분명해졌다.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충북도지사에 출마한 국민의힘 김영환 후보가 1일 오후 충북지사 당선이 유력해진 뒤 자신의 선거 사무소에서 취재진과 인터뷰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
오영훈 제주지사 당선인은 전임 지사였던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제2공항의 조속한 추진을 강조해왔던 것과는 달리, 제2공항과 관련한 도민 갈등 해소를 통한 통합을 우선으로 강조해왔다.
오 당선인은 오는 7월 도출되는 국토부의 전략환경영향평가 보완 용역 결과에 따른 전략을 세우고, 도민 의사 우선 원칙을 바탕으로 국토부와 협의해 제2공항 문제에 대응한다는 입장이다.
민주당 최문순 강원지사가 역점을 두어 추진해왔던 남북교류 사업은 국민의힘 김진태 당선인이 다음 달 취임하면서 추진 동력을 잃을 것으로 보인다.
최 지사는 2024년 강원동계청소년올림픽 남북 공동 개최를 추진해왔지만, 윤석열 정부 출범에다 보수 성향의 김 당선인이 도정을 맡게 됨에 따라 추진 여부가 불투명해졌다.
김 당선인이 최 지사의 정책을 전반적으로 점검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만큼 남북 관련 사업은 사실상 추진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인천에서는 쓰레기 매립지 확보 사업이 대폭 변경될 예정이다.
민주당 박남춘 인천시장은 인천 쓰레기만 따로 처리할 자체 매립지를 옹진군 영흥도에 조성하는 방안을 추진했지만, 국민의힘 유정복 당선인은 이 시설이 필요하지 않다며 사업을 이어갈 뜻이 없음을 여러 차례 밝혔다.
유 당선인은 본인의 시장 재임 시절 체결한 2015년 매립지 4자 협의체(서울·인천·경기·환경부) 합의에 따라 인천 자체 매립지보다는 수도권 공동 대체 매립지를 구하는 것이 더욱 시급한 현안이라고 강조한다.
소속 정당이 같은데 사업을 재검토하는 사례도 있다.
전남 여수에서는 권오봉 시장이 역점 시책으로 추진했던 시청사 별관 증축 사업이 원점 재검토될 가능성이 높다.
민주당 정기명 당선인은 전임 시장과 같은 당 소속이지만, 시청사 별관 증축 문제에 대해선 다른 입장을 보였다.
지난 1월 출마 기자회견에서 정 당선인은 "통합 청사 논리는 상당히 일리가 있고 명분도 있지만, 민주주의는 절차의 공정과 과정의 정의가 중요하다"며 "획일적인 여론 조사보다는 주민 투표로 결정하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김진태(오른쪽) 강원도지사 당선인과 더불어민주당의 육동한 춘천시장 당선인이 8일 오후 강원도청 2청사 도지사직 인수위원회 사무실에서 만나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
◇ 필요해서, 멈출 수 없어서…정당 달라도 일부 사업은 계속
정당과는 상관없이 현실적 실익이나 여건에 따라 사업을 그대로 추진하는 지역도 있다.
민선 7기 대전과 세종, 충남북 등 충청권 4개 시·도를 이끌어온 민주당 소속 광역단체장들은 충청권을 하나의 생활경제권으로 묶는 충청권 메가시티 사업을 추진해왔다. 내년에 충청광역청 설립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4개 광역단체장이 모두 국민의힘으로 바뀌었지만, 메가시티 구축사업은 민선 8기에도 추진될 것으로 예상된다.
국민의힘 소속 시도지사 4명은 후보자 시절 '충청권 초광역 상생경제권(메가시티)' 구축을 통해 윤석열 정부의 지방균형발전에 앞장서겠다고 공약했다.
또 민주당 소속 충청권 4개 시·도 단체장들이 공동 추진한 충청권 지역은행 설립이 윤 대통령 공약에 포함됨에 따라 국민의힘 소속 신임 단체장 체제에서도 정상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
건립된 지 65년이 된 강원도청사를 춘천 옛 미군부대(캠프 페이지) 부지로 옮기는 사업은 정당을 달리하는 광역·기초단체장이 긴밀히 협력하기로 했다.
국민의힘 김진태 강원도지사 당선인과 민주당 육동한 춘천시장 당선인은 8일 상견례를 하고 초당적 협력을 약속했다.
김 지사 당선인은 "우리는 늙어 없어지더라도 도청은 남아 있을 것이니 백년대계를 걸고 하자"고 제안했고, 육 시장 당선인은 "도청사 이전 문제는 춘천의 미래를 위해서도 중요하다"며 화답했다.
충북 제천에서는 민주당 이상천 시장의 역점 사업인 의림지뜰 자연치유단지 조성사업이 도마 위에 올랐다.
국민의힘 김창규 제천시장 당선인은 선거 과정에서 총 1천600억원이 투입되는 이 사업에 대해 졸속 추진을 이유로 두 차례나 경제성 재검토를 요구했다.
이 사업의 경제성 평가가 부풀려지고, 제천시의 사업비 부담액이 1천억원 이상으로 너무 크다는 게 김 당선인의 인식이다.
그러나 이 사업은 현재 684억원 규모의 토지 보상이 50%가량 진행되는 등 중기 단계에 접어든 상태여서 사업 자체를 취소하기는 불가능한 상황이다.
이에 따라 수익성을 높이고 시비 부담을 낮추는 등 계획을 수정하는 방식으로 사업이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최해민 양영석 윤우용 박지호 황봉규 정경재 이해용 민영규 손상원 강종구 허광무 기자)
hk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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