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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2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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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수록 몸값 뛰는 故이성자…8.8억원 작품 주인은 BTS R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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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티 홍콩서 9억 낙찰

지난해 12월 8억8000만원

3일 진주에선 104주년 행사

"더 많이 연구돼야 하는 작가"

중앙일보

이성자,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내가 아는 어머니’, 1962. 개인 소장. 프랑스 파리 샤르팡티에 갤러리에 전시됐다. [사진 이성자기념사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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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서 활동한 한국 추상화가 고(故) 이성자(1918~2009) 화백의 작품가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지난달 26일 열린 크리스티 홍콩 경매에서 최근 이 화백의 1961년 작 'Subitement la loi(갑작스러운 규칙)'이 9억원에 낙찰되며 작가 경매 최고가 기록을 다시 썼다. 이전 이 화백의 최고가 작품은 지난해 12월 크리스티 홍콩에서 낙찰된 1963년 작 'Le vent en temoigne(the wind testifies·바람이 증언한다)'였다. 또 국내에선 지난 3월 케이옥션 경매에서 5억원에 낙찰된 1963년작 ‘샘물의 신비’가 가장 높은 가격에 거래된 작품이었다. 해외에서 오히려 더 높이 평가되고 있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그렇다면 이런 기록은 무엇을 의미할까. 이 배경엔 경제 불안 가운데에서도 최근 미술시장이 호조인 데다, 한국 작가가 상승세를 타고 있는 분위기가 한 몫을 미쳤다고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지난달 26~27일 열린 크리스티 홍콩 경매 매출은 총 2902억원(수수료 포함)으로 역대 두 번째 최대 낙찰액 기록을 세웠다. 낙찰률도 97%였다. 심문섭, 우국원 작가 등 한국 작가 경매 최고가 기록도 속출했다. 27일 경매에선 심문섭의 'The Presentation(제시)'이 1억6000원, 우국원의 'Que Sera Sera(케세라세라)'이 3억원에 낙찰되며 각각 작가 경매 최고가를 경신했다.

그중에서도 이성자가 눈길을 끄는 이유는 그가 태어난 지 이미 100년이 넘었고, 10여 년 전에 이미 세상을 떠난 작가라서다. 그동안 국내 미술계에선 이성자 작품이 같은 시기에 활동했던 다른 작가에 비해 상대적으로 조명을 덜 받았다는 의견이 적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중국·대만 컬렉터들 중 이성자 작품을 수집하는 사람이 소수 있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이번 경매에서 중국 추상미술의 개척자 자오 우키(1921~2013)의 작품이 445억원에 낙찰됐는데, 자오 우키는 프랑스에서 일찌감치 이성자와 교류하며 작업한 화가다. 이 자오 우키 컬렉터 중 이성자 작품을 사들이는 이들이 있다는 것이다.

한편 열성적인 미술수집가로 알려진 BTS(방탄소년단) 리더인 RM은 지난달 1일 자신의 인스타그램 계정에 지난해 12월에 낙찰된 이성자 작품 사진을 올려 눈길을 모았다. 일각에선 이미 낙찰된 작품을 RM이 클로즈업 샷까지 포함해 여러 장 올린 것을 보면 낙찰자가 RM일 가능성이 크다는 추측도 제기됐다. RM의 근현대 작가에 대한 깊은 관심은 미술계에서 널리 알려져 있다.



51년에 프랑스 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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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26일 크리스티 홍콩 경매에서 9억원에 낙찰된 이성자 작품. [사진 크리스티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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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탄소년단 RM이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올린 이성자 작품. 이 그림은 지난해 12월 크리스티 홍콩에서 8억8000만원에 낙찰됐다. RM은 제목과 제작 연도만 기입한 채 사진을 올렸다.[사진 RM 인스타그램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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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진주 출신의 이성자는 일본 유학(짓센대 가정과)를 다녀와 의사인 남편과 결혼해 세 아들을 뒀지만, 이혼 후 홀로 51년 프랑스로 떠나 처음으로 추상화를 시작했다. 그랑 드 쇼미에르 아카데미에서 회화 수업을 받았고 한국 화가로는 처음으로 라라뱅시, 샤르팡티에 등 유명 화랑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그의 작품은 음과 양, 질서와 자유, 부드러움과 견고함, 동양과 서양 등 상반된 개념이 공존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운율감을 이루는 선(線)의 반복에 여러 겹 쌓아 올린 색 배합으로 독창적인 작품세계를 구축했다. 30대의 초기작부터 89세 9월에 작업한 마지막 작품까지 시기별 변화의 궤적도 뚜렷한데, 특히 60년대는 그의 '전성기'로 꼽힌다. 김인혜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관(근대미술팀장)은 "이 시기에 탄생한 대표작 ‘내가 아는 어머니’는 수만 번의 촘촘한 붓질로 땅을 다지고, 베틀로 천을 짠 것처럼 높은 밀도를 보여준다"며 "환상적인 색채와 섬세한 질감으로 아름다움의 극치를 보여준다"고 말했다.



"작가 연구 더 파고들어야"



60년대 작품이 프랑스 현지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았지만, 작가는 그 자리에 머물지 않았다. 후기엔 원과 음과 양, 은하수라는 모티브로 새로운 작업을 이어갔다. 김 근대미술팀장은 "국내에는 이성자 작가를 포함해서 더 깊이 들어가 연구돼야 할 작가들이 적지 않다"며 "작가의 생애 연구뿐만 아니라 시대의 문맥에서 작품을 다양한 각도에서 분석하고 조명하는 작업이 더 활발히 이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성자는 2009년 작업실이 있는 프랑스 투레트에서 91세로 생을 마감했다. 눈을 감기 전 자신이 평생 그리워한 고향 진주시에 367점의 작품을 기증했고, 진주시는 2015년 진주시립이성자미술관을 개관했다. 지난 3일 이 미술관에서 ‘이성자 화백 탄생 104주년 기념행사’가 열렸다.

이은주 문화선임기자 ju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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