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환 유라시아전략연구소장/전 주러시아 공사 ]
언론 보도에 따르면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3일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로부터 우크라이나 방문 구상을 듣고는 곧바로 김성한 국가안보실장에게 우크라이나 측과 일정을 협의하도록 지시했으며 이 대표는 윤 대통령의 친서를 우크라이나 대통령에게 전달하고 한국 정부의 지원 방안을 협의할 것이라고 한다.
작금의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하여 한국의 여당 대표가 우크라이나를 방문하는 것이 왜 필요한가? 과연 우리의 국익 확보 또는 증진에 어떤 도움이 되는가? 그러한 방문이 대통령이 당대표 이야기를 듣고 바로 결정할 사안인가? 새 정부의 외교사고에 러시아는 없는가? 언론 보도를 접하고 이런저런 질문이 안 나올 수 없었다. 더욱이 29일 국방부는 지난 정부의 방침을 뒤엎고 우크라이나에 대해 155밀리미터(mm) 포탄, 기관총, 전차, 장갑차 등 살상무기를 우회 지원하기로 하였다고 한다.
후보 시절 윤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한 발언 그리고 당선인 신분이던 지난 3월 젤렌스키 대통령과의 전화 통화 등에 비추어 새 정부가 들어서면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한 접근법이 달라질 것으로 예상하기는 했으나 이번 결정은 우려된다. 한마디로 말해서 한-러 관계에 대한 고려는 전혀 없어 보이며 한국 여당 대표의 우크라이나 방문이 몰고 올 파장에 대한 고민도 없었던 것 같다.
새 정부는 우크라이나 사태를 한미동맹의 회복, 나아가 강화라는 관점에서만 접근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를 금할 수 없다. 미국의 맹방인 이스라엘조차 국익을 고려하여 우크라이나에 대전차 미사일을 제공하라는 미국의 요청을 거절하였다. 러시아는 제재조치를 취한 한국을 이미 비우호국으로 지정하였고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하는 국가에 대해서는 보복을 예고한 바 있다. 러시아는 최근 유엔 안보리에서의 북한의 미사일 도발에 대한 제재 결의 채택에 반대하였는데 그간에도 서방의 결의안에 대해 그대로 수용하지는 않고 줄다리기를 하였지만 이번 반대는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한 한국의 태도 또는 조치에 대한 불만을 노골적으로 표시한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는 나아가 러시아 주재 한국 외교관을 추방할 수도 있고 러시아에 진출한 한국 기업에 대해 어떤 불이익을 주는 조치를 취할 수도 있다. 한국이 미국 주도의 인도· 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IPEF)에 참여하자 중국은 강력히 반발하면서 미국이 동북아시아에서 벌이는 ‘전쟁 책동’에 결연히 대처하겠다고 하는 상황에 러시아를 더욱 자극하는 행동을 취하는 것은 무슨 이유에서인가?
윤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자유와 인권의 가치에 기반한 보편적 국제규범을 지지하고 수호하는 글로벌 국가’ 그리고 ‘국제사회에서 책임을 다하고 존경받는 나라’를 지향한다고 하였다. 그러한 방향성은 물론 바람직한 것이나 국제사회에서 국익에 대한 구체적 고려 없이 그러한 명분만 추구하는 국가는 없다. 강대국들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면서 포장하기 위해 내세우는 수사를 그대로 따라 하는 것은 외교적 재난을 초래할 수 있다. 사람들이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하여 국제사회의 여론 운운하는데 전 세계 국가들의 1/4에도 미치지 못하는, 미국과 유럽연합 그리고 몇몇 국가를 놓고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여당인 국민의힘은 보도자료에서 "최근 우리 국민들이 우크라이나 상황에 대해 마음 깊이 안타까워하고, 조속한 평화가 오기를 기원하고 있다"라고 하고 "이러한 국민들의 염원을 담아 우크라이나 국민들을 뵙고 위로를 건넬 예정"이라고 하였다. 혹시 우크라이나 방문을 국내에서 어떤 재난이 발생하였을 때 당 대표가 지역구 의원들을 함께 그 지역을 방문하여 주민들을 위로하는 것쯤으로 생각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더욱 가관은 "이번 방문이 아시아 국가 정당으로서 최초”임을 강조한 것이다. 각국 정당들 사이에 우크라이나 방문 경쟁이 있고 우리가 1등을 하고 싶다는 이야기인가?
도대체 우크라이나는 우리에게 무엇인가? 가까운 우방도 아니고 오히려 북한에 ICBM 및 SLBM 기술 전수 의혹이 있고 독도 문제에 있어 일본 쪽에 기우는 입장을 취하고 있는 나라이다. 지난 30년간 대한민국 대통령이 방문한 적이 한번도 없는 국가이다.
일찍이 2008년 한국과 전략적 동반자관계를 맺었으며, 한반도 평화와 안정에 있어 우리가 도움을 받을 수 있고 유라시아 대륙 진출의 핵심 파트너인 러시아와 척을 지면서까지 우리가 ‘가치외교’를 추구할 만한 나라인가? 언론 보도가 사실이라면 국익과 외교에 대해 깊은 헤아림이 없어 보이는 여당 대표, 그러한 아이디어를 고민 없이 받아들이는 대통령, 그리고 관계부처 회의 개최도 없이 지시를 그대로 이행하는 대통령의 참모라는 느낌을 갖게 된다. 또한 무슨 근거로 우크라이나에 대해 살상무기를 우회적으로 제공하면 러시아를 자극하지 않을 것으로 판단하였는지 궁금하다. 더욱이 6월 나토정상회의에 예상대로 윤 대통령이 초청을 받아 참석하게 된다면 추가로 어떤 부담을 떠안게 될지 우려된다.
외교의 세계는 아무리 신중해도 지나치지 않는 세계이다. 정부가 출범한 지 얼마 안 되어 아직 체계가 안 잡혔을 수 있겠는데 만일 그렇다면 하루바삐 체계가 잡히고 국익과 가치가 균형을 이루는 외교가 전개되길 바란다.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가 11일 인천 옹진군 백령도 해병대 제6여단을 방문, 망원경으로 북측을 바라보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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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이준석 대표가 11일 인천 옹진군 백령도 해병대 제6여단을 방문, 지형 설명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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