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횡성과 서울 강동구에 자리 잡은 두 학교는 입지 차이만큼 운영 형태도 극단적으로 다르다. 학교 운영 방식을 기준으로 두 학교를 일직선상에 놓으면 각각 오른쪽 끝과 왼쪽 끝에 위치한다. 이는 두 학교 모두 지향하는 운영 방식에서 선두주자라는 의미다. 실제로 이들 학교가 수행한 교육 실험이 한국 교육의 기본 방향이 되기도 했다.
그런데 이들 학교가 마주한 현실이 그리 녹록지 않다. 두 학교 모두 주기적으로 지속가능성을 위협 받는다. 학생수의 감소, 교육의 질적 저하 등의 본질적 문제가 아니다. 학교를 흔드는 바람은 외부에서 불어온다. 극단화된 한국의 정치세력은 이들의 ‘공존’을 허락하지 않는다. 실제로 6월 1일 지방선거 결과에 따라 둘 중 한 곳은 깃발을 내려야 할지도 모른다.
강원도 횡성에 있는 학교는 ‘자율형 사립고’를 대표하는 ‘민족사관고등학교’다. 서울 강동구에 자리 잡은 학교는 ‘공립 혁신학교’를 대표하는 ‘선사고등학교’다.
강원도 횡성군에 위치한 민족사관고(왼쪽)와 서울 강동구에 있는 선사고. 우철훈 선임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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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의 꽃놀이패 ‘교육’
한국사회의 교육은 ‘이념’의 전쟁터다. 보수는 인간의 현실적 욕망을 자극한다. 공부에 재능있는 학생들이 모인 자율형 사립고, 외국어고, 국제고 등의 확대를 지지한다. 진보는 인간의 이상적 욕망을 자극한다. 공교육을 중심으로 서열화를 없애고, 부모의 재력이 학생 수준과 관계가 없는 학교를 지향한다. 교육을 둘러싼 양대 정치세력의 격돌은 해당 쟁점이 ‘시작이자 끝’이다.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은 허울 좋은 명분이다. 각종 제도가 오히려 ‘정치적 편향성’만 부각시킨다. 지방선거와 함께 치러지는 교육감 선거가 대표적이다. ‘정치적 중립성’을 목표로 교육감 후보들은 정당 소속으로 출마할 수 없고, 지원도 받을 수 없다. 그러나 현실은 후보들 스스로 ‘보수 후보’, ‘진보 후보’임을 공공연히 밝힌다. 일부는 ‘중도보수’, ‘중도진보’ 하는 식으로 ‘중도’까지 소개에 붙인다. 이념의 회색지대까지 놓치지 않겠다는 전략이다.
정치권이 자극하는 욕망의 주체는 유권자, 특히 ‘학부모’다. 본인이 명문학교를 나와서, 명문학교를 나오지 못해서 각기 자식 교육에 욕망을 갖는다. 사회가 보수화될수록 커지는 것은 교육에 대한 ‘현실적 욕망’이다. 고가의 학비, 까다로운 입학절차를 거쳐야 하지만 ‘엘리트 교육’을 담당하는 학교가 반드시 있어야만 할 것 같다. 부모의 재력, 아이의 공부 재능 등의 조건이 갖춰진 경우에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자식 세대의 성공을 통해 현실 반전을 꾀하려는 부모에게도 ‘명문학교’는 희망의 일부분이다.
선거에 나선 후보들은 이러한 구조를 잘 알고 있다. 공약집 한켠을 차지한 모호한 4차 산업혁명 교육, 창의성 교육 등은 사실상 곁가지다. 보수와 진보를 표방하는 교육감 후보들은 ‘자사고냐, 혁신학교냐’로 대표되는 이분법적 논리로 갈라졌다. 공약은 이념적 성향을 분명하게 드러낼 수 있게 극단화됐다. ‘당선되면 자사고 폐지, 혁신학교 재검토’가 기본이다. 학교를 ‘교육’이 아닌, 사회적·정치적 기준으로 나누고 존폐를 걸고 싸운다. ‘너를 없애야 내가 사는’ 구도에서 학생들에 대한 배려를 찾아보긴 어렵다. ‘없어져야 할 곳’으로 공격받는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 받을 상처, 혼란은 고려대상조차 아니다.
■자사고 폐지 vs 혁신학교 재검토
학교 문제가 정치 쟁점화된 것은 지난 정부에서다. 문재인 정부는 자사고, 외고, 국제고의 일반고 전환을 추진했다. 이를 위해 2020년 관련 법령을 정비했다. 2025년 3월 1일자로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제91조의 3에 명시된 ‘자사고 설립 근거 조항’을 삭제하는 방식이었다. 설립 근거를 잃은 자사고는 자연히 일반고로 전환된다. 그런데 정책추진을 법이 아닌 정부 시행령 개정으로 추진하다 보니 정책의 연속성에서 태생적 약점이 생겼다. 정권이 바뀌었다. 자사고의 일반고 전환은 이제 윤석열 정부의 선택에 달렸다.
윤석열 정부는 ‘자사고 존치’의 기대감을 키우고 있다. 정부의 110대 국정과제 중 ‘다양한 학교유형을 마련하는 고교체제 개편 검토’가 포함됐다. 지난 5월 17일 국회 교육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한 장상윤 교육부 차관은 “(자사고 존치에 관한) 여러 의견을 충분히 듣겠다”며 기존 폐지 입장에서 변화 가능성을 시사했다.
일각에서는 오는 7월, 국가교육위원회가 출범하면 정부가 개입하지 못할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실제로 국교위의 목표는 정파적 이해관계를 뛰어넘는 국가교육발전계획 수립이다. 이를 위해 학생, 청년, 학부모, 교원, 교수, 교육 관계 기관의 임직원 등으로 구성된 총 21명의 위원을 둔다. 이중 9명을 국회가 추천한다. 대통령은 5명을 지명한다. 교육부 차관 1명도 참여한다. 대통령과 여당 추천 몫을 최소한으로 잡아도 10명이다. 장관급인 위원장 역시 대통령이 지명한다. 한 교육 전문가는 “국교위의 정치적 중립성은 애초에 불가능한 목표”라며 “대통령이 교육부에 직접 지시해 결정할 일이 ‘합의 기구’를 한 번 거치는 일로 바뀐 정도”라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지방선거에서 ‘자사고’는 공약으로 활용된다. 강원도교육감선거에 나선 보수성향 후보들은 민사고 지키기 협약식도 열었다. 한발 더 나아가 역공도 다짐했다. 진보진영이 추진한 ‘혁신학교’를 공격하는 방식이다. 임태희 경기도교육감 후보는 지난 5월 23일 “혁신학교의 양적 팽창을 지양하겠다. 신규 지정을 중단하고 그동안 성과를 점검해 엄정하게 재지정 평가를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반대쪽이라고 다르지는 않다. 자사고의 일반고 전환 문제로 소송전까지 벌였지만 물러날 뜻은 없다.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 후보는 새 정부에 맞서 자사고·외고 폐지를 추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뚜렷한 쟁점이 없는 교육감 선거에서 ‘자사고’와 ‘혁신학교’는 양극단의 학교처럼 묘사된다. 유권자들 역시 정치적 입장에서 각각의 학교를 바라보게 된다. 그렇다면, 학교를 ‘정쟁 수단’, ‘이념의 지표’가 아닌 오로지 ‘교육’이라는 관점에서만 본다면 어떨까. 두 학교는 정말 결코 공존할 수 없을 만큼 극과 극으로 다를까. 수업방식, 학생을 대하는 태도 등에서 자사고인 ‘민사고’와 혁신학교인 ‘선사고’는 놀랄 만큼 닮았다.
■혁신학교 ‘선사고’
서울 강동구에 있는 선사고는 주택단지가 학교를 빙 둘러싸고 있다. 주변에는 일반 초·중·고뿐만 아니라 자사고인 배재고, 한영외고 등도 있다. 학교 간 비교가 금방 가능한 환경이다. 선사고는 개교와 동시에 혁신학교로 지정됐다. 제도 도입 첫해인 2011년부터 현재까지 혁신학교 지위를 유지하는 중이다. 혁신학교의 역사가 곧 선사고의 역사인 셈이다.
지난 5월 24일 방문한 선사고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띈 건 학생들의 복장이었다. 교복부터 편안한 일상복을 제각각 입은 학생들이 어딘가로 바쁘게 이동하고 있었다. 권재호 선사고 교장은 “교복이 있기는 한데 입을지 말지를 학생들이 자유롭게 결정한다”며 “지금은 학생들이 수업 장소로 이동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권재호 선사고 교장선생님이 선사고 교장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찬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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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을 따라가 봤다. 교실이라기보다 마치 카페처럼 꾸민 공간에 학생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수업 시작을 알리는 종이 울리자 학생들은 ㄷ자 모양으로 배치된 책상 앞으로 가서 앉았다. 1학년 정규 국어 수업이 시작됐다. 이날 수업 주제는 교과서에 나오는 문학, 비문학이 아닌 ‘언론에 대한 이해’였다.
김영혜 국어 선생님이 “신문을 읽을 때 주의해야 할 점이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여기저기서 손이 올라갔다. 한 학생이 “관점”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또 다른 학생이 “신문마다 주목하는 부분이 다를 수 있어 여러 매체를 균형 있게 봐야 한다”고 말했다. 발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권 교장은 “아이들에게 문제를 푸는 기술이 아닌 스스로 지식을 찾는 방법을 알려주기 위해 토론식 수업을 하고 있다”며 “책상을 ㄷ자로 배치한 것 역시 토론을 효율적으로 하기 위함이다”고 말했다.
선사고 1학년 국어 수업시간 모습. 김찬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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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고는 혁신학교이자 공립학교다. 정부가 정해둔 교육과정을 준수해야 한다. 그러나 가능한 역량을 최대한 동원해 다양한 프로그램도 진행한다. 예를 들어 교양 아카데미의 일환으로 지난 4월 4일에는 류승완 영화감독을 초청해 ‘영화 제작의 현실’, ‘영상에 담아야 할 가치’ 등의 강연을 진행했다. 인문학, 사회과학, 자연과학 등을 다루는 특강도 줄줄이 기다리고 있다. 서울대, 숙명여대 등의 협조로 열리는 해당 강좌들은 모두 무료다.
학문 간 융합수업도 활발하다. 차별, 기후위기, 생명윤리 등 하나의 주제를 정한 다음 여러 교과가 동시에 해당 주제를 다룬다. 각 과목 선생님들은 다른 수업 진도까지 파악해야 하는 등의 수고가 늘어나지만 기꺼이 감내한다. 덕분에 학생들은 현상에 대한 관점을 다양화할 수 있다. 학생들이 배우고 싶어하는 분야가 있으면 지원도 아끼지 않는다. 정규 수업으로 만들기에는 인력, 재정, 교육과정 준수라는 한계가 있어 동아리 활동이나 이벤트 형식으로 이를 충족시킨다. 실제로 학생들이 천체 관측을 해보고 싶다고 하자 경희대 천문학과의 협조를 구해 ‘별별 잔치’라는 천체 관측회를 열었다. 이외에도 연극, 디자인 공모전 등 매해 선사고에서 벌이는 수업연계 프로그램만 30여개에 달한다.
선사고 교양 아카데미에 류승완 영화감독이 참석해 강연하고 있다(왼쪽)과 경희대 천문학과 석박사팀과 함께 진행한 천체관측 프로그램 ‘별별 잔치’. 선사고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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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고의 입시 결과가 나쁘지도 않다. 매해 전교생의 20% 정도가 서울권 대학에 진학한다. 김 선생님은 “선사고 교육의 지향점은 아이들이 ‘좋은 시민, 좋은 어른, 좋은 지식인’으로 성장하도록 돕는 것”이라며 “이런 교육 기조가 자리를 잡아서 현재는 다른 학교들에 조언을 해주기도 한다”고 말했다. 혁신학교는 진보 정부, 진보 교육감이 추진한 학교다. 그렇다면 보수 정부, 보수 교육감이 추진하는 학교는 이와 정말 다를까.
■자율형 사립고 ‘민사고’
높은 산이 겹겹이 펼쳐지는 강원도 횡성군의 한적한 도로를 따라가다 보면 모란교차로라는 갈림길이 나온다. 이곳에서 소사4리 방향으로 차를 회전해 들어가면 다시 구불구불한 산길이 한참 이어진다. 굽은 길을 따라 약 7㎞ 정도를 달리다 보면 오른편에 뜬금없이 커다란 유제품 공장 하나가 나타난다. 이 공장 부지 안으로 들어가 낮은 언덕을 하나 넘으면 비로소 ‘민사고’의 정문이 나타난다.
학교는 걸어서는 들어가기도 나오기도 쉽지 않은 두메산골 한가운데에 있다. 이 때문에 민사고 학생들은 기숙사 생활을 한다. 일과는 정해진 규칙을 따른다. 오전 6시면 기상해 6시 20분부터 1시간가량 체력단련을 한다. 식사 후 8시 30분부터 오전 수업을 시작한다. 50분 수업에 10분 휴식하는 방식이다. 지난 5월 25일 정오 무렵 민사고를 방문했다. 식사를 마친 학생들이 수업이 열리는 ‘충무관’, ‘다산관’으로 속속 모여들었다.
강원도 횡성군에 위치한 민사고. 우철훈 선임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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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1시 40분 무렵, 다시 수업이 시작됐다. 그럼에도 몇몇 학생들은 여전히 건물 앞에 쪼그리고 앉아 자신만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한만위 민사고 교장은 “학생들이 수강신청을 통해 원하는 과목을 수강하기 때문에 시간표가 각자 다르다”며 “수업도 학생들이 선생님이 있는 강의실로 찾아가 듣는 방식”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민사고에는 교무실도, 학생들이 소속된 교실도 없다. 강의실 역시 책상, 의자 등의 배치를 어떤 곳은 원형으로, 또 다른 곳은 ㄷ자 형태로 달리했다. 수업 집중도를 최대한 끌어올리기 위한 조치다.
학생들이 수강하는 과목 역시 다양하다. 국·영·수 등의 기본과목부터 ‘임진왜란연구’, ‘머신 러닝’과 같은 교과목도 있다. 한 교장은 “민사고에는 200여개의 과목이 있는데 학생 요청으로 만든 수업도 있다”며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학생 5명 이상만 모이면 수업을 개설한다”고 말했다. 이 같은 수업이 가능한 비결은 교사 1인당 학생수 비율에 있다. 민사고에는 70여명의 선생님이 있다. 이들 1인이 담당하는 학생수는 6~7명 정도다. 선생님 한 명이 두세 과목을 개설하면 200여개의 수업이 만들어진다.
민사고의 수업 모습 . 우철훈 선임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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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사고가 특히 자랑하는 수업은 ‘융합교육’이다. 학생들은 의무적으로 융합 독서, 융합 상상력, 융합 프로젝트 과목을 수강해야 한다. 문과, 이과, 예술 분야의 단순한 지식적 통합이 아닌 각 분야를 연결해 독창적인 결과를 만들기 위함이다. 교육학자 김선 박사의 책 <민사고의 특별한 수업>에는 이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나온다. 1단계인 융합 독서 시간에는 학기별로 공통주제를 선정해두고 이와 관련된 인문, 과학, 예술 분야의 책들을 읽는다. 2단계인 융합 상상력 시간에는 정해진 수업 주제에 따라 학문 간 연결고리를 찾는다.
핵심은 마지막 3단계인 융합 프로젝트다. 학생들이 2~7명씩 팀을 이뤄 실제 학문 간 경계를 뛰어넘는 프로젝트를 수행한다. 실제로 ‘캄보디아 아이들을 위한 저렴한 신발 제작’, ‘진경산수화에 대한 과학적 접근을 통한 대한민국 환경 변화 연구’ 등을 수행했다. 학생들은 프로젝트 활동을 담은 최종 보고서를 제출한다. 평가 기준은 ‘창의성’, ‘문·이과 연결성’, ‘실생활 활용도’ 등이다. 김 박사는 “한국의 융합교육이 주로 수학, 과학에 치우쳐 있는데 민사고는 문학, 역사, 철학, 예술 등을 아우르는 융합교육을 목표로 한다”며 “프로젝트 일환으로 뮤지컬을 만들어 지역주민을 대상으로 공연을 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민사고의 입시 결과가 좋은 것은 사실이다. 졸업생을 배출한 1998년부터 2022년 입시까지 민사고 졸업생 중 1599명이 국내 대학으로 진학했다. 이중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에 1009명이 진학했고 카이스트, 포항공대에 179명이 진학했다. 같은 기간 해외대학에 곧바로 진학한 학생은 모두 986명이다. 미국 코넬대에 진학한 학생이 가장 많고 하버드, 예일, 옥스퍼드 대학에도 다수 진학했다. 그럼에도 한 교장은 “서울대에 몇명이 갔는지로 알려지고 싶지 않다”며 “그건 진짜 중요한 교육이 아니지 않느냐”고 말했다. “대학 잘 보내는 자사고를 왜 없애느냐”는 정치권, 일부 학부모들의 논리와는 분명 다르다. 한 교장이 강조하는 교육은 선사고 권 교장이 강조한 것과 닮아 있다. “입시 결과, 성적과 관계없이 학생들이 배우고 싶은 것을 마음껏 공부할 수 있도록 돕는 게 우리 학교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고 말했다.
한만위 민사고 교장선생님이 인터뷰를 하고 있다. 우철훈 선임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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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민사고가 알려지면서 논란도 생겼다. 주로 교육이 아닌 운영을 둘러싼 것들이다.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학비다. 민사고 학생이 지불해야 할 학비는 기숙사 비용 등을 포함해 연간 2800만~3000만원이다. 민사고는 자사고인 만큼 국가로부터 교직원 인건비 및 학교, 교육과정 운영비를 지원받을 수 없다. 민사고는 교육 철학, 인재 선발 방식을 유지할 수 있다면 재정지원은 포기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다만 민사고 운영에 국가 지원금이 단 한푼도 들어가지 않는다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 교육부 확인에 따르면 민사고에 연간 수천만원 정도가 지원됐다. 수천만원이라는 재정지원 수준에 대해서는 견해차가 있다. 교육부 관계자는 “각 지방 교육청이 교부금으로 목적 사업을 추진하면 자사고 등의 학교가 해당 프로그램에 참여해 재정지원을 받는다”며 “예를 들어, 민사고도 입학정원의 20% 이상을 차상위계층 등을 포함한 사회통합전형으로 선발하면 필요 비용을 지원받을 수 있지만 실시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민사고는 자립형 사립고에서 자율형 사립고로 전환된 만큼 사회통합전형 선발이 의무사항은 아니다”고 덧붙였다. 반면 한 교장은 “자사고는 지자체 조례 등으로 재정지원을 받을 수 없도록 제외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며 “재정지원때문에 민사고가 추구하는 융합형 인재와 맞지 않는 학생을 선발할 수도 없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민사고가 선발하고 배출하는 인재들에 대한 의문도 있다. 작게는 전국 단위 자사고인 민사고가 강원도 지역의 발전과 관계가 있느냐 하는점이다. 민사고는 한해 160명의 신입생을 받는다. 이중 강원도 출신은 5명 내외다. 크게는 민사고를 졸업한 학생들이 학교 설립 취지대로 보다 나은 사회를 위해 기여하고 있느냐는 점이다. 현재 민사고에는 학생들이 대학 졸업 후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구체적 자료가 없다. 한 교장은 “벤처기업을 하는 학생들이 200여명 정도라는 것만 파악하고 있다”며 “개인정보 등의 문제로 구체적 현황은 파악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다만, 민사고 졸업생들에게 엄격한 사회기여를 요구할 수 있는지는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
■누구를 위한 교육의 ‘정치화’인가
학교 이름, 위치 등을 가리면 적어도 ‘교육 방식’만으로 두 학교를 구분하기는 쉽지 않다. 두 학교 교장이 말하는 ‘교육 철학’까지도 유사하다. 학생들이 배우고 싶은 것들을 마음껏 공부하게 한다는 것이다. 자사고, 혁신학교를 둘러싼 논란은 결국, 교육의 문제가 아닌 외부에서 학교를 ‘어떻게 생각하느냐’의 문제다. 특히, 정치권은 두 학교를 ‘내편, 네편’으로 나누고 한쪽은 반드시 없애겠다는 입장이다. 학교 본연의 기능인 ‘교육’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민사고는 정책변화가 없다면 2025년 일반고 전환이 예정돼 있다. 폐교까지 검토했던 민사고는 현재 대안학교로의 전환을 모색 중이다. 보수 교육감이 등장하면 자사고 체제를 유지할 수도 있다. 하지만 4년, 5년 주기로 입장이 바뀌는 정치권에 더 이상 휘둘리고 싶어 하지 않는다. 한 교장은 “학교를 둘러싼 논란을 살펴보면 ‘교육’은 사라지고 ‘정치’만 남았다”며 “어느 쪽이 승리하든 공존보다는 반대쪽을 없애버리는 행태를 보인다는 점에서 아쉽다”고 말했다.
선사고라고 상황이 나은 것은 아니다. 보수 교육감 후보가 당선되면 4년에 한 번 이뤄지는 혁신학교 재지정 여부를 장담할 수 없다. 권 교장은 “헌법 제31조에는 교육의 전문성, 자주성,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하게 돼 있다”며 “혁신학교가 보수와 진보를 넘어 이제는 공교육의 지향점으로 인식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정치권에서 학교 이름을 들먹이는 것이 싫은 것은 학생들도 마찬가지다. 민사고 졸업생 A씨에게 ‘민사고 존치’가 몇몇 강원도교육감 후보의 공약임을 알려줬다. A씨는 “또 정치권에서 우리 학교를 이용하느냐”며 “보수든 진보든 학교를 자신들의 정치적 이득을 얻는 데 더 이상 이용하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교육은 국가 발전의 근본 요소다. 4~5년에 한 번씩 교육 정책이 바뀌고, 학교가 존폐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은 정상이 아니다. 양극단에 서 있는 자들은 서로 대립하며 닮아간다. ‘민사고’와 ‘선사고’를 없애려는 각각의 집단은 닮았다.
김찬호 기자 flyclos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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