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민간인 출입을 허용한 강원도 삼척 덕봉산. 군 경계 철책으로 가로 막혀 53년 간 출입이 금지됐던 곳이다. 맹방해변 너머에 미지의 해안 탐방로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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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은 아직 미개척 영역이다. 커피 거리가 있는 강릉, 서핑 천국으로 거듭난 양양의 바다가 더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전국구로 이름난 해변이나 계곡은 강릉이나 양양보다 적지만, 덕분에 여태 한적한 분위기를 품고 있는 곳이 삼척이다. 사람에 치일 걱정은 덜어도 좋다. 삼척에 다녀왔다. 맹방해변 옆 덕봉산(54m)은 반세기 넘게 출입을 통제했던 비밀의 장소다. 맹방해변 인근 소한계곡에는 민물김이 자라는 신비의 골짜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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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척 최고의 전망
덕봉산 해안절벽을 따라 탐방로가 조성돼 있다. 탐방로 옆으로 군 감시초소가 아직 남아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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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조를 앞세운 북한군이 1968년 1월 청와대 기습을 시도한 이후 북악산(백악산)은 금단의 땅이었다. 지난 4월 북악산 남측 탐방로가 54년만에 열리면서 청와대는 물론 청와대 뒷산까지 완전히 시민의 품으로 돌아갔다.
68년은 삼척에 있어서도 의미가 남다르다. 그해 10월 30일부터 3일간 북한은 동해안을 통해 무장공비 120명을 또다시 남쪽으로 투입했다. 반공교육의 상징이 된 이승복 어린이(당시 10살)를 비롯해 희생자 18명을 남긴 이른바 ‘울진-삼척 무장공비 침투사건’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동해안 곳곳에 철책이 둘러쳐지고, 군 초소와 벙커가 들어섰다.
삼척 덕봉산을 둘러싼 철책은 지난해 4월에야 사라졌다. 삼척시가 사업비 20억원을 들여 덕봉산에 해안생태탐방로를 설치했다. 53년만의 개방이다.
덕봉산은 ‘바다 위의 산’으로 통한다. 맹방해변과 덕산해변 사이에 홀로 섬처럼 봉긋 산이 솟아 있다. 본디 섬이었다가 모래가 쌓이며 육지와 한 몸처럼 이어지게 됐다. 산 모양이 물더멍(물독의 삼척 방언)을 닮아 예부터 삼척에서는 ‘더멍산’이란 이름으로도 불렸단다.
덕봉산의 속살은 어떤 모습일까. 규모도 옹색하고, 높이도 야트막하지만 둘러보는 재미는 제법 크다. 일단 맹방해변과 덕산해변 중 어디를 들머리로 삼든 모래사장을 밟고, 1m 폭의 외나무다리를 건너야 덕봉산에 들 수 있다.
덕봉산 정상에서 내려다본 덕산해변. 정상부는 대나무로 우거져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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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는 크게 두 개의 길이 있다. 갯바위를 따라 이어진 해안 탐방로(626m)와 정상 전망대로 향하는 계단 길(317m)이다. 두 길 모두 합쳐도 1㎞가 넘지 않는다. 지름길이든 걷기 편한 길이든 따질 것 없이 모두 다 돌아봐도 1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다. 해발 53m에 불과하지만, 산은 산이다. 10분이면 정상에 닿는데, 맹방해변으로부터 덕산해변까지 이어지는 장장 5㎞ 길이의 해안선을 굽어보는 최고의 전망을 자랑한다.
독특한 지형과 역사 덕에 기념사진을 담아갈 만한 명당이 여럿 있다. 맹방해변 쪽 탐방로는 해상 기암괴석이 곳곳에 솟구쳐 있는데, 파도와 어우러져 장관을 연출한다. 덕산해변 쪽은 ‘S’자 모양의 외나무다리가 포토존을 대신한다. 철책은 모두 거뒀으나, 군 감시초소와 벙커 등은 그대로 남아있다. ‘감시’와 ‘전망’은 사실 한끗 차이다. 감시초소가 놓인 자리에서 카메라를 들면 해안 절경을 파노라마로 닮을 수 있다. 정상의 벙커는 아예 여행자를 위한 쉼터로 단장했다.
덕봉산 옆 맹방해변은 BTS가 다녀간 덕에 근래 ‘방탄 투어 성지’로 뜨고 있다. ‘퍼미션 투 댄스’ 컨셉트 사진의 배경이 된 장소다. 백사장에 화려한 색감의 파라솔과 선베드, 비치발리볼 네트와 심판석 등 당시 화보 속 모습이 그대로 재현돼 있다. 영화 팬에게는 ‘봄날은 간다’에서 유지태와 이영애가 바닷소리를 녹음했던 추억의 장소로 남아 있다.
삼척 맹방해변은 방탄소년단의 '퍼미션 투 댄스' 화보 촬영지로 유명하다. 삼척시가 해변에 방탄소년단 관련 조형물을 여럿 설치하면서 관광명소로 거듭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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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물김을 아시나요
삼척 근덕면 소한계곡에서 자생하는 민물김. 맛과 모양에서는 재래김과 큰 차이가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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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가 아닌 계곡에서도 김이 자란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이름하여 ‘민물김’. 한국과 일본에서만 발견되는 세계적인 희귀종이다. 국내서는 삼척에서만 유일하게 자생한다. 바로 근덕면 소한계곡에서다. 소한굴~소한계곡 사이 1㎞ 구간이 자연생태경관보전지역으로 지정돼 있다. 계곡이 지나는 하맹방리에는 “아이를 낳으면 계곡에서 김을 뜯어다 김국을 해먹었다”고 기억하는 어르신이 여럿 있다.
민물김이 보기 어려운 건 까다로운 서식 환경 탓이다. 웬만한 물에서는 생장하지 않는다. 삼척 민물김 연구센터 김동삼 박사의 말을 빌리면 이렇다. “석회 성분이 풍부하면서, 사계절 13도 이내의 수온을 유지하고, 초당 1m 이상으로 세차게 흐르는 물에서만 자란다. 그게 바로 소한계곡이다.”
소한계곡 민물김 생태탐방로. 국내서 유일하게 ‘민물김’을 관찰할 수 있는 장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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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전 소한계곡에 ‘민물김 생태탐방로’가 생겼다. 민물김을 볼 수 잇는 계곡물 위에 관찰 데크와 출렁다리를 설치했다. 워낙 물이 맑고 숲이 울창해 그냥 산책 삼아 한가로이 거닐다 오기에도 좋다. 유속이 워낙 빠르지만, 계곡을 유심히 보면 로프에 덕지덕지 붙어 춤을 추는 민물김을 찾을 수 있다. 최대로 성장하는 10월 무렵이면 계곡 곳곳이 녹색 빛으로 물든다. 계곡 초입 안내 센터에서 해설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소한계곡 물이 흘러드는 초당저수지 옆에는 삼척 민물고기 전시관이 있다. 무료 시설인데도 볼거리가 탄탄하다. 멸종위기 2급인 열목어를 비롯해 철갑상어‧황금송어 등이 야외 수조에 떼 지어 서식하고 있다. 실내 전시관에서는 칼납자루‧동자개‧버들치‧꺽정이‧금강모치 등 민물고기 70여 종을 만날 수 있다. 친숙한 이름이지만 도심에서는 좀처럼 구경하기가 쉽지 않은 민물고기다. 수백 마리 무지개송어가 모여 있는 미니 해저터널에서 대형 아쿠아리움 부럽지 않은 기념사진을 남길 수 있다.
민물고기 전시관에서 무지개송어를 구경하는 어린이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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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척=글·사진 백종현 기자 baek.jong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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