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부시 '동갑내기 정상회담'…트럼프, 文에 '백악관 비공개 방' 공개
이명박 전 대통령이 지난 2008년 4월 워싱턴D.C. 북쪽 메릴랜드주 캠프 데이비드에서 부시 미국 대통령을 만나 함께 골프 카트를 타고 이동하는 모습. [연합뉴스 자료사진] |
(서울=연합뉴스) 한혜원 기자 = 역대 정부마다 첫 한미정상회담은 남다른 의미를 가졌다.
새 정부 외교정책의 방향타 역할을 하는 동시에 한미동맹 및 한반도 정세의 풍향계 기능을 했다는 점에서다. 그만큼 한미 정상이 연출하는 일거수일투족에도 스포트라이트가 쏠리기 마련이다.
'혈맹 동맹'의 국가지도자로서 끈끈한 우의를 과시하면서도 물밑에서는 대북 협상 주도권을 둘러싼 긴장감이 감돌기도 했다.
◇ YS-클린턴 조깅 이면에는 '1차 북핵 위기' 주도권 싸움
고(故)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취임 후 첫 한미 정상회담은 1993년 7월 한국에서 진행됐다. 이 기간 김 전 대통령과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청와대 조깅' 장면이 연출됐다.
두 정상은 클린턴 전 대통령이 한국에 도착한 다음 날인 7월 11일 아침 청와대 녹지원에서 만나 15분 20초간 조깅을 했다.
이들은 조깅하면서 각자의 조깅 철학과 주변 생활을 이야기했다고 한다.
하지만 화기애애해 보이는 조깅 회동의 이면에는 북한 핵 문제라는 민감한 주제가 숨어 있었다.
(故) 김영삼 전 대통령과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조깅을 함께하는 모습. 1993.7.11 [연합뉴스 자료사진] |
당시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영변 미신고 시설 두 곳의 특별 사찰을 요구하자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선언하면서 '1차 북핵 위기'가 시작된 것이다.
그 전까지도 한국이 주도권을 가지고 있던 대북 협상이 이 시기를 전후해 점차 미국 주도로 돌아가자, 김 전 대통령이 우려와 불만을 표출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특히 미국과 북한이 뉴욕 고위급 회담에서 북한의 NPT 탈퇴 효력을 정지하는 합의를 끌어내자 김 전 대통령은 비판적인 태도를 취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클린턴 전 대통령 부부가 한국을 찾아 김 전 대통령의 반발을 무마하고자 애를 썼다는 후문이다.
방한 기간 김 전 대통령이 클린턴 전 대통령에게 '대도무문'(大道無門·사람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큰 정도에는 거칠 것이 없다는 뜻)이라는 휘호를 직접 써준 일화도 유명하다.
2003년 5월 미국 백악관에서 (故) 노무현 전 대통령과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 회담하는 모습. [청와대 제공=연합뉴스 자료사진] |
◇ 노무현-부시 '동갑내기' 정상회담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98년 6월 빌 클린턴 전 대통령과 백악관에서 첫 정상회담을 했다. 김 전 대통령의 취임 100일을 넘긴 시점이었다.
당시 정상회담은 1차 북핵 위기 이후 북핵 문제 해결을 둘러싸고 표출돼 온 대북정책에 관한 갈등과 이견을 다소 해소한 것으로 평가받았다.
클린턴 전 대통령은 김 전 대통령을 넬슨 만델라 등으로 묘사하면서 극진히 대우했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2003년 5월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첫 정상회담은 '1946년생 동갑내기'의 회담으로 주목받았다.
두 정상은 초면이었지만 노 대통령 취임을 전후해 네 차례 전화통화한 친근함을 바탕으로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한국의 진보 대통령과 미국 보수 대통령의 만남이 순탄치 않을 것이라는 편견을 깨뜨리는 만남이었다.
정상회담 전에 노 전 대통령이 미국의 이라크 파병 요청을 수용한 결정이 회담에 긍정적인 영향을 줬다는 분석도 있다.
2013년 5월 백악관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이야기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
◇ MB, 캠프 데이비드서 깜짝 골프카트 운전
이명박 전 대통령이 2008년 4월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과 진행한 첫 정상회담은 많은 이들에게 하나의 장면으로 기억된다.
바로 이 전 대통령이 골프 카트의 운전대를 잡고, 조수석에 부시 전 대통령이 앉은 채 '캠프 데이비드'를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모습이다.
캠프 데이비드는 미 워싱턴D.C. 인근에 있는 미국 대통령 공식 휴양지다. 이 전 대통령은 한국 정상 중에 처음으로 캠프 데이비드에 초대됐다.
두 정상은 무려 1시간 40분간 이 전 대통령이 운전하는 카트를 타고 캠프를 돌았다.
부시 전 대통령이 주재하는 만남에서 손님인 이 전 대통령이 운전을 하게 한 것이 외교적 결례라는 지적도 있었지만, 이 전 대통령은 후에 "순간적으로 '내가 운전하면 안 되느냐'고 제안했다"고 설명했다.
2013년 5월 진행된 박근혜 전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정상회담에서는 두 정상이 '한미 동맹 60주년 기념선언'을 하며 양국 협력관계를 재확인했다.
2017년 6월 상견례와 만찬을 위해 백악관에 도착한 문재인 전 대통령이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과 악수하는 모습. [연합뉴스 자료사진] |
◇ 트럼프, 문재인 전 대통령에 '백악관 비공개 공간' 소개
문재인 전 대통령은 취임 약 한 달 반 만인 2017년 6월 미국을 찾아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 첫 정상회담을 했다.
당시 두 정상은 첫 만남에서 나란히 하늘색 넥타이를 매 화기애애한 장면이 연출됐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문 전 대통령과 공식 환영 만찬 행사를 하고 문 전 대통령에게 백악관 개인 집무실인 '트리티 룸'을 깜짝 공개했다.
만찬을 마치고 문 전 대통령 부부를 환송하고자 함께 엘리베이터에 탄 트럼프 전 대통령이 "3층이 내 사적인 공간인데 외부에 공개하지 않는다. 당선되기 전에 이렇게 좋은 곳이 있는지 몰랐다"며 "한 번 구경하지 않겠느냐"고 즉석에서 제안했다.
3층에 도착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쪽 복도 끝에서 저기 끝까지가 내 사적인 공간이다. 외부인에게는 잘 공개하지 않는다"라며 문 대통령 부부를 트리티 룸으로 직접 안내했다.
통역을 제외한 누구도 이 길에 동행하지 않았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트리티 룸은 미국이 프랑스로부터 루이지애나를 사들일 때 계약을 체결했던 곳"이라고 소개했다.
hye1@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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