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TS 시티로 변신한 미국 라스베이거스. [하이브 제공.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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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베거스는 BTS의 콘서트가 열렸던 8~16일 도시 전체가 보라색으로 물들었다. 20여 년 전 한국 대중문화가 처음 주변 국가로 눈을 돌릴 때만 해도 감히 상상도 못 했던 장면이 미국 주요 도시에서 펼쳐진 거다. K팝뿐이 아니다. 영화산업 본류인 미국의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한국 영화가 작품상이나 감독상·연기상을 받고, 글로벌 OTT 순위에서 우리 콘텐트가 전 세계 1위에 오르는 일도 이젠 익숙해졌다. 우리 곁에서 매일을 함께한 대중문화 콘텐트가 역사상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문화의 세계 진출’을 실현하며 국민에게 행복한 '국뽕'을 선사하고 있다.
하지만 한류 초기엔 달랐다. 지난 2003년 한국문화관광정책연구원 개원 1주년 기념 심포지엄만 봐도 지금과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저급한 '딴따라' 대중문화가 한국 대표로 해외에 소개되는 걸 불쾌해했다. 대중문화에 대한 이런 차별적 시각은 정부 관료나 정치인에게도 뿌리 깊게 박혀있다. 대중문화의 열렬한 팬덤만 이용하고 싶어할뿐 존중할만한 가치 있는 그 무엇으로 보는 거 같진 않다. 정치 이벤트나 정부 행사에 아이돌 스타 등을 행사에 동원하며 도구로 활용하면서도, 정작 대중문화 산업에 필요한 지원 정책은 소홀히 했으니 하는 말이다.
돌아보자. 한류 초창기부터 정치인이나 정부 관료들은 경기도 일산에 ‘한류우드’라는 문화단지를 조성하거나 서울 시내에 K팝 아레나를 지어주겠다고 약속했지만, 20여 년이 흐른 지금 실제 실현된 건 없다. 최근 만난 한 유명 연예기획사 사장은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K팝 아레나를 지어달라고 했는데 이번에도 똑같은 요청을 해야만 했다"고 하소연했다. 필리핀·태국에도 있는 아레나가 정작 K팝 보유국 대한민국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순수예술을 위한 세종문화회관이나 예술의전당에는 매년 수십억 원의 운영비를 지원한다. 그런데 기재부는 유독 K팝 아레나는 수익 창출이 어렵다며 아예 건립을 막았다. K팝은 세계적 수준에 올랐지만, 이를 바라보는 정치인과 관료들의 시각은 대중문화 폄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박물관도 유감이다. 우리나라에는 현재 51개의 국립박물관이 있다. 그중 대중문화와 관련한 곳은 딱 하나, 그나마도 일반 오피스빌딩 1층 로비 한 귀퉁이에 세 들어 있는 영화박물관이 유일하다. 영화계는 2019년 한국영화 100주년을 기념해 우리 영화산업 위상에 걸맞은 국립영화박물관을 짓고자 했으나 무산될 위기에 처해있다. K팝 역사를 기록할 대중음악자료원 건립 계획도 공허한 논의 끝에 흐지부지되어가고 있다. 아카데미 영화박물관, 비틀스 박물관같은 미국·영국 등 세계 각국의 수많은 대중문화 박물관들이 매력적인 관광지로 거듭나고 있을 때, 한류 성공에 앞 다퉈 숟가락을 얹던 정치인들은 박물관 건립 하나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지금 한창 시끄러운 BTS 등 아이돌 스타의 병역특례 논란 아래에는 이런 대중문화 폄하가 깔려있다. 우리나라 병역법에는 이미 ‘예술 요원’ 제도가 있다. 문화창달과 국위선양을 한 예술 분야의 특기자에 대해 군 복무 대신 특기를 활용한 봉사활동으로 복무하도록 하고 있다. 피아노·바이올린·하프·클래식 기타·바순·튜바·하프시코드·아쟁·피리 같은 동서양 악기뿐 아니라, 발레·서예·조각·연극 등 대상이 되는 분야는 매우 광범위하다. 매년 15~48명씩, 제도가 생긴 이후 약 1000여 명에 가까운 예술인들이 병역특례를 받았다. 하지만 ‘예술 요원’ 대상에 대중문화예술인을 추가하는 작업은 수년째 난항이다.
2019년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은 예술 요원 제도 개선을 위한 여론조사를 한 바 있다. 국위선양 등 전 항목에서 K팝 스타가 순수예술인은 물론 스포츠 스타를 앞서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다. 이미 국민은 병역법에 명시돼 있는 ‘문화창달과 국위선양’에 K팝 아이돌이 가장 큰 역할을 한다는 걸 인정한 셈이다. 이쯤 되면 대중문화예술인만 배제하는 건 해당 장르에 대한 차별이자 불공정이다.
병역특례에 반대하는 논리 중 하나는 K팝 스타들의 영리활동이다. 이런 사람들이 왜 박찬호(야구)나 손흥민(축구), 조성진(피아노)의 영리활동은 국위선양으로 보는지 모르겠다. 또 다른 반대 이유는 모호한 기준과 부실한 운영에 대한 우려다. 하지만 전문가 심의위원단 등 여러 단계의 심의과정을 통해 얼마든지 보완할 수 있다. 게다가 전 국민의 여론 재판을 두려워하는 아이돌 특성상 스스로 과잉 적용을 기피한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일각에서는 기존의 예술인·스포츠인뿐 아니라 산업기능요원과 전문연구요원 등에 대한 모든 병역특례를 폐지해야 한다는 논의가 나오는 상황에서 추가 특례 대상을 만드는 건 무리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언젠가는 고칠 제도이니 지금 당장의 차별을 참고 있으라는 것은 부당하다. 우선 ‘예술 요원’에 대중문화예술인을 포함해 놓고서 논의를 진행하자.
보라색으로 물들은 라스베거스 사진을 보며 국민 가슴 한구석이 뿌듯했다면, K팝 스타들을 예술 요원에 포함하는 게 당연하다. 그것이 스타들을 도구로만 썼던 사람들의 차별적 시각을 바로잡는 것이며, 동시에 우리 일상을 즐겁게 해주는 대중문화예술에 대해 ‘존중’과 ‘공정’을 선사하는 일이다.
채지영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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