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타 국제도서전서 낙태죄·시집살이 다룬 작품 놓고 독자와 대화
수신지 작가 설명 듣는 콜롬비아 독자들 |
(보고타=연합뉴스) 김계연 기자 = "여기 오기 전에 콜롬비아가 임신 24주 이내 낙태를 비범죄화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가톨릭 국가 콜롬비아에서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텐데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웹툰작가 수신지는 20일(현지시간) 오후 2022 보고타국제도서전 한국관에서 콜롬비아 독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작품을 설명하는 자리에서 축하 인사를 건넨 이유는 자신의 작품 '곤'이 낙태죄로 인한 폐해를 정면으로 다루기 때문이다. 행사장에 모인 독자의 절반 이상은 여성이었다.
'곤'은 정부가 낙태를 극단적으로 엄격하게 처벌하는 가상 사회를 상정한다. 국가는 인공 낙태 테스트(ITA)를 통해 1953년 이후 한 번이라도 낙태 수술을 받은 적이 있는 여성을 처벌하겠다고 발표한다. 워킹맘으로 엄마에게 아이를 맡긴 노민형, 계획에 없던 임신 사실을 알게 된 노민아, 어학연수를 앞두고 여자친구의 임신 사실을 알게 된 노민태의 이야기가 동시에 전개된다.
작가는 2017년 5월 연재를 시작한 이 작품에 대해 "당시 한국은 낙태죄가 폐지되느냐, 아니냐의 기로에 놓인 상황이었다"며 "태아가 몇 주까지 생명인지 아닌지, 낙태가 몇 주까지 허용되는지를 넘어 안전한 낙태를 받을 수 있는 게 여성이 가져야 할 권리라는 것을 책을 통해 알게 됐다"고 설명했다.
작가는 "한국 여성의 20∼30%가 낙태 경험을 갖고 있다고 하지만, 처벌되는 경우는 손가락 안에 든다고 한다"며 "낙태죄가 사라지지 않고 처벌이 이뤄진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하는 생각으로 이 만화를 그리게 됐다"고 말했다. 작품에 등장하는 1953년은 한국에서 낙태 처벌 법률을 만든 때다.
보고타국제도서전에 전시된 수신지 작가 작품들 |
드라마로도 제작된 대표작 '며느라기'는 갓 결혼한 주인공 민사린이 가정에서 가부장 제도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보여주는 작품이다. 일상에서 여성이 마주치는 장벽을 담담하게 그린다. 며느리가 과일 씻는 걸 당연하게 여기는 시어머니, 여자들이 제사 음식을 만드는 동안 따로 모여 술을 마시는 남자들. 작가는 만화 플랫폼에 연재하고 싶었지만 회사의 요구가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내용과 정반대여서 포기했다고 말했다.
"회사에서는 이야기가 너무 소소하다고 했습니다.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강하게 싸우는 걸로 수정할 수 있는지 묻고, 며느리가 시어머니 뒤에서 욕을 하는 장면도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런 이야기를 듣고 이런 곳에서 연재는 불가능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실제로 2020년을 살아가는 여성들이 겪는 이야기를 쓰고 싶었고 그것이 너무 자극적이지 않았으면 했습니다."
한 독자는 작품에 대한 비판을 받은 적이 있는지, 있다면 어떻게 대처했는지 물었다. 작가는 "과일을 씻거나 음식을 만드는 게 그렇게 하기 싫으냐, 여자들이 결혼을 안 하면 네가 책임질 거냐 하는 말을 많이 들었다"며 "개인정보를 찾아내 연락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고 털어놨다.
작가는 "이런 내용의 만화를 연재하는 작가들이 꽤 있다. 한 달에 한 번씩 모여서 얘기를 나누다 보니까 부정적인 댓글이 별 게 아닌 것처럼 느껴지더라"며 "그런(작품에 대해 부정적인) 말로 그만두면 굉장히 후회가 될 것 같았다"고 말했다.
dad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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