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장연 사과 요구에 “혐오 안 했다” 거부
“소수자 향한 정치인 발언은 혐오 증폭”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가 13일 서울 상암동 JTBC 스튜디오에서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상임공동대표와 JTBC 프로그램 '썰전라이브' 생방송 일대일 토론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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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제이티비시>(JTBC) 프로그램 ‘썰전 라이브’에서 진행된 장애인 이동권 토론에서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상임공동대표는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에게 “이 대표의 발언 이후 온갖 혐오와 욕설에 시달리고 있으니 사과해 달라”고 했다. 이 대표의 답은 “제가 어떻게 해드릴 수 없잖아요. 악플은”이었다. 토론을 생중계하던 유튜브 채널 채팅창에는 박 대표에 대한 비난이 계속 쏟아졌다.
이 대표의 답변에 대해 정치인의 발언이 갖는 영향력에 대한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정치인이 발언이 특정 집단이나 소수자에 대한 혐오를 증폭시킬 수 있다는 우려다.
이날 토론회에서 박 대표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볼모’, ‘비문명’ 등의 표현을 쓰며 지하철 출근길 시위를 비판한 이 대표에게 “당 대표님으로서 정치 지도자의 역할이다.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이것들이 어떤 사람들에 의해서 메시지가 나갔을 때 저희들한테 다가오는 위협은 어마어마하다. 대표님과 똑같은 언어를 가지고 (장애인 활동가 등) 저희들한테 아주 조직적으로 와서 괴롭힌다. 중증 장애인들한테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을 쓰면서 장애인을 비하한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갈라치지 말아 달라”며 사과를 요구했다. 박 대표는 이 대표가 전장연 관련 발언을 한 뒤부터 일부 커뮤니티 누리집에 올라온 장애인·전장연 관련 게시물에 혐오성 댓글이 급증했다는 한 누리꾼의 데이터 분석을 언급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이 대표는 “무엇과 무엇을 갈라치기 하느냐”, “나는 혐오 안 했다”, “악플이 싫은 거냐, 혐오가 싫은 거냐”, “제가 어떻게 해드릴 수 없지 않나. 악플은. 지하철 막은 다음에 악플 안 받길 기대하셨으면 제가 어떻게 해드리냐”고 맞받았다.
이 대표는 “불법 시위 방식을 지적했을 뿐”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지만, 그는 ‘비문명적인 관점으로 불법 시위를 지속’, ‘시민을 볼모로 한 투쟁’ 등 장애인 권리 예산 보장을 요구하는 시위와 참가자들을 고립시키는 발언들을 해왔다. 또 전장연에게 사과한 같은당 김예지 의원의 비서관의 이력과, 박 대표 배우자의 국가인권위원회 활동 이력 등을 언급하며 이들이 ‘특수관계’라는 사실관계가 확인되지 않은 의혹을 공개적으로 제기하기도 했다. 토론회에서 박 대표는 “지상에서의 비장애인 시위도 불편을 초래하지만 그것을 비문명이라고 하지는 않는다”라고 했지만 이 대표는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차기 집권 여당의 당 대표가 이같은 발언을 계속 이어갈 경우 사회적 소수자를 향한 혐오를 더욱 증폭시킨다는 점에서 신중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홍성수 숙명여대 교수(법학부)는 <한겨레>에 “어제 토론회 유튜브 생중계 옆 채팅창에서는 노골적인 장애인 혐오 발언이 쏟아졌다. (이준석 대표의) 응원단 역할을 하고 있는 거다. 유튜브 혐오 표현 가이드라인에 다 걸리는 내용들이다. 이준석 대표는 ‘혐오 표현을 쓴 적이 없다’고 말하지만, 토론회 실시간으로 혐오가 이뤄지는 게 연출됐다. ‘혐오하지 않았다’는 주장은 자신의 발언이 갖는 영향력에 대해서 책임을 회피하는 무책임한 정치인의 태도다”라고 말했다.
홍 교수는 “정치인들이 소수자 집단은 ‘위험하다’, ‘범죄 집단이다’는 식으로 모는 발언들은 일반 시민들에게 ‘소수자들을 욕해도 괜찮다’는 신호를 주는 것이다. 이 대표의 발언들은 ‘장애인을 마음껏 비난하고 공격해도 좋다’고 부추기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런 혐오 선동 정치는 장애인뿐만 아니라 여성, 난민, 동성애자 등 다른 사회적 소수자를 향한 혐오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우려스럽고 위험하다”고 말했다.
박 대표와 이 대표는 13일 3시간가량 진행한 토론회를 마치며 5월 초에 다시 토론을 갖자고 의견을 모았다.
한편, 전장연은 14일 입장문을 내어 “이준석 대표는 5월10일부터 집권여당의 당대표다. 에스엔에스(SNS) 상에서 장애인을 갈라치며 혐오를 부추기고, 전장연을 낙인화하는 유튜버가 아니다. 책임 있는 집권정당의 대표로서 책임을 다할 것을 요청한다”며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장애인차별철폐의 날인 오는 20일까지 장애인권리정책과 예산에 대하여 기획재정부, 국토교통부, 보건복지부, 고용노동부와 협의하여, 임기 내 달성 과제, 단기적 과제와 2023년의 예산 반영을 통해 장애인권리를 어떻게 실현할지에 대한 논의 결과를 발표해 줄 것을 요청한다”고 밝혔다.
박지영 기자 jy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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