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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4 (일)

[논썰] 장애인과 ‘배틀’, 이준석 대표의 ‘무한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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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단체, 애써 개정한 법 ‘그림의 떡’ 되자

‘장애인 권리 예산’ 법제화 요구 지하철 시위

이 대표, ‘선량한 시민’ 위해 ‘비문명’과 대결?

‘장애인 혐오’ ‘비장애인과 갈라치기’에 몰두

TV토론 하자며 기막힌 ‘게임룰’ 일방적 요구

장애인운동은 당사자운동이자 보편적 운동

비장애 시민들도 장애인을 ‘동료시민’ 인식

‘토론배틀’로 막을 수 없는 거대한 변화 시작


한겨레

[논썰] 장애인과 ‘배틀’, 이준석 대표의 ‘무한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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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장애인단체 투쟁이 뜨거운 이슈입니다. 대단히 이례적인 현상입니다. 대략 세 가지 이유에서 그렇습니다.

첫째, 장애인 관련 이슈가 이렇게 큰 관심을 모으는 경우 자체가 매우 드뭅니다. 여러분은 기억나는 사례가 있습니까?

둘째, 더구나 지금은 5년 만의 여야 정권교체기입니다. 이 대단한 격랑 속에서 장애인 투쟁이 모든 이슈의 중심에 선 것 또한 의외입니다.

셋째, 그 한복판에 한 달 뒤면 여당 대표가 될 현재 제1야당 대표가 서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이 이슈를 이렇게까지 키운 장본인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뜬금없다는 생각마저 듭니다. 아무래도 그의 독특한 캐릭터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 이례적인 세가지 특성이 동시에 겹친 게 우연일까요? 우연이 겹치면 더는 우연이 아니라는 말이 있죠. 꼭 이런 경우를 이르는 게 아닐까 합니다. 2022년 4월, 왜 차기 정부 구성을 앞둔 대한민국에서 장애인 이슈는 차기 여당 대표가 원맨쇼나 다름없는 행동을 일삼을 만큼 과몰입하는 이슈가 됐을까요? 차근차근 살펴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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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숙 서울시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장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 여러 단체 활동가들이 30일 오전 서울 종로구 혜화역 승강장에서 열린 출근길 선전전에 참석해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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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라 싸워서 법 개정, 기재부 반대로 ‘그림의 떡’

먼저, 이번 장애인단체 투쟁의 전개 과정부터 정리해보겠습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줄여서 전장연이라고 부르죠. 지난해 12월6일부터 매일 아침 8시 서울 지하철 4호선 혜화역에서 출근길 선전전을 합니다. 4대 장애인 관련법(장애인권리보장법, 장애인탈시설지원법, 장애인평생교육법, 교통약자이동편의증진법)의 연내 제·개정을 촉구하기 위해서입니다. 서울교통공사가 첫날부터 불법시위라며 혜화역 엘리베이터를 봉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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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비마이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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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다행히 국회가 움직이죠. 12월31일 개정 교통약자이동편의증진법, 줄여서 교통약자법이 본회의에서 통과됩니다. 전장연 요구에는 크게 못 미쳤지만, 의미 있는 진전도 있었습니다. 낡은 버스를 새로 교체할 때 저상버스 도입을 의무화하는 조항, 국가나 도(道)가 장애인 콜택시 이동지원센터와 광역이동지원센터 운영비를 지원할 수 있는 근거 조항 같은 게 대표적입니다. 여기에는 당연히 예산이 들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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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썰] 장애인과 ‘배틀’, 이준석 대표의 ‘무한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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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기획재정부의 예산 배정이 의무조항(‘해야 한다’)에서 임의조항(‘할 수 있다’)으로 후퇴했다는 점입니다. 쉽게 말해 기재부가 국가예산을 배정하고 싶으면 배정하고, 배정하고 싶지 않으면 배정하지 않아도 되는 건데요. 애초 원안은 의무조항이었는데, 기재부가 강하게 반대해서 임의조항으로 뒷걸음질친 겁니다. 장애인 이동권, 탈시설 등에 들어가는 예산을 장애인단체들은 ‘장애인 권리 예산’이라고 부르는데요. 중앙정부의 의무로 돼 있는 게 별로 없고, 지자체들이 제가끔 예산을 마련하는 게 다수인데, 이마저 약속이 제대로 지켜지는 경우가 드뭅니다. 그러니까 전장연 입장에서는 죽어라고 싸워서 법을 개정했는데, ‘그림의 떡’이 됐다고 볼 수밖에 없는 겁니다.

해가 바뀌고도 출근길 지하철 시위는 계속됩니다. 전장연은 대선 후보들이 현장에 찾아와주면 시위를 중단하겠다고 했습니다. 심상정 정의당 후보가 현장을 찾아 장애인 권리 예산 보장을 약속했고, TV 토론회에서도 길게 언급했습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도 마지막 TV 토론회에서 장애인 이동권 보장과 장애연금이나 수당의 확대를 약속했습니다. 네, 윤석열 후보는 끝내 아무 언급도 하지 않았죠. 윤 후보가 당선됐으니, 전장연은 시위를 이어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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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가 23일 장애인 이동권 보장 등을 요구하며 이어온 출근길지하철 시위를 21일 만에 종료했다. 심상정 정의당 대선 후보가 서울역 4호선 승강장에서 출근 선전전에 나선 전장연 회원들에게 위로의 말을 전달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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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3월25일부터 SNS에 전장연을 비난하는 글을 올리기 시작합니다. 많을 때는 하루에도 서너개씩 올렸죠. 시각장애인인 같은 당 김예지 의원이 28일 아침 현장을 찾아가 무릎 꿇고 사과합니다. 당 대표를 대신한 사과였고, 장애인과 비장애인 시민 모두를 방치한 정치권을 대표한 사과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 대표의 전장연 비난은 여태 계속되고 있습니다. 전장연은 매일 아침 릴레이 삭발 시위로 방식을 바꿔 대응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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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석의 ‘비문명론’…그럼 유럽 시민도 ‘비문명’?

이 대표는 단기필마로 적진에 뛰어들어 장렬하게 성전을 치르고 있는 듯한 모양새를 연출하고 있는데요. 당에서 말려도 듣지를 않습니다. 표면상의 이유는 ‘선량한 시민’을 위해서입니다. 3월28일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한 발언이죠. “선량한 시민의 불편을 야기해 뜻을 관철하겠다는 비문명적 방식이다.” 전날에는 페이스북에 ‘선량한 시민’이 누구인지 훨씬 구체적으로 호명하기도 했습니다. “4호선 노원, 도봉, 강북, 성북 주민과 3호선 고양, 은평, 서대문 같은 서민 주거지역 시민”이라고요. 곧 여당 대표가 될 현재 제1야당 대표가 선량한 시민, 각별히 서민 주거지역 시민의 이동권을 보호하기 위해 비문명적인, 다시 말해 야만적인 일개 장애인단체와 최전선에서 몸소, 친히, 맞서는 듯한 미장센을 과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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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길에 지하철에서 시위를 하면 시민이 불편을 겪고, 심지어 피해를 보는 건 불가피한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 불편을 어떻게 대하고 받아들이냐는 건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지난 6일치 <한겨레> ‘하종강 칼럼’ 일부입니다.

“유럽에서 대중교통 파업으로 시민들이 겪는 불편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택시가 파업했는데 해결되지 않으면 버스가 파업하고 그래도 해결되지 않으면 철도가 파업하고 며칠 뒤에는 항공이 파업하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가수 하림씨가 유럽에서 겪은 일화도 소개합니다. “유럽은 파업을 하면 아주 심하게 하더라고요. 길에 쓰레기가 쌓여서 난리가 나고 심지어 전기까지 나갔어요. 그런데 제가 묵었던 홈스테이 식구들은 전기가 나가면 촛불 켜고 음악 하며 놀고, 쓰레기가 쌓이면 나중에 버리면 된다고 별로 불편으로 여기지 않더라고요. 세상이 멈췄는데 가족들이 모두 그걸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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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석 대표에게 묻고 싶습니다. 너무 먼 나라 얘기인가요? 이렇게 질문을 바꿔보면 어떨까요? 이 대표는 유럽 사회의 저런 태도와 문화를 ‘선량한 시민’을 볼모로 삼은 ‘비문명적’인 행태라고 부르겠습니까?

이 대표도 지하철을 자주 이용한다고 들었습니다. 출근길 지하철 안에서 이런 의문은 품어보지 못한 걸까요. ‘왜 평소 출근길 지하철에는 휠체어 탄 장애인이 보이지 않는가?’ 비장애인 시민 누구나 편리하게 이용하는 대중교통을 장애인이 이용하지 못한다는 건 장애를 이유로 시민적 권리에서 배제하는 거와 다르지 않습니다.

그거야말로 비문명적인 거 아닐까요? 그리고 그런 사회가 바뀔 수 있도록 법과 제도를 개선하지는 못할망정, 개선을 요구하는 장애인들에 맞서 대단한 성전을 벌이는 양 하는 걸 ‘문명적인 정치’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미국에서 유명한 대학을 나왔다니 덧붙여 보겠습니다. 1955년 미국 앨라배마주 몽고메리시에서 있었던 ‘버스 승차 거부 운동’을 아실 거라고 믿습니다. 흑인 여성 학생이 버스에서 백인 남성에게 자리를 양보하지 않아 체포된 뒤에 마틴 루터 킹 목사 주도로 일어난 그 유명한 흑인 민권운동 말입니다. 1955년 미국 흑인을 2022년 한국 장애인으로 바꿔도 전혀 어색하지 않습니다. 버스 승차 거부 운동과 지하철 승차 투쟁은 교통수단은 다르지만, 배제와 차별에 저항한다는 점에서는 정확히 같은 성격입니다. 당시 미국 백인 주류사회의 인식과 이 대표의 지금 인식이 구조적으로 동일하다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다시 묻습니다. 마틴 루터 킹 목사는 비문명적이었습니까?

‘언더도그마론’이 ‘장애인 혐오’인 이유

언제나 그렇듯, 이 대표는 이번에도 화려한 언변을 과시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언더도그마’라는 표현이 떠오르는데요. “나를 장애인 혐오로 몰아도 무슨 장애인 혐오를 했는지 설명 못하는 일이 반복된다. 지금까지 수많은 모순이 제기되었을 때 언더도그마 담론으로 묻어버리는 것이 가장 편하다는 것을 학습했기 때문이다.”(3월26일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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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도그마’는 미국 극우단체 티파티에서 활동한 마이클 프렐이 만든 말이라고 합니다. 약자를 빗대 언더도그(underdog)라고 하고, 반대로 강자를 빗대서는 오버도그(overdog)라고 합니다. “약자는 선하고 강자는 악하다고 보는 편견이 담론의 장을 지배하고 있다”는 주장이 언더도그마의 뜻입니다.

그런데 누가 장애인은 무조건 옳다고 했습니까? 장애인 투쟁에 대한 지지를 ‘언더도그마’라고 규정하는 거야말로 장애인들의 권리 요구를 떼쓰기 정도로 치부하는, 다시 말해 장애인을 동료시민으로 인정하지 않는 비장애인의 편견에서 비롯되는 거 아닐까요? 그게 바로 장애인 혐오인 겁니다. 그리고, 우리 사회가 장애인단체에 대한 비판이 없는 사회인가요?

물론 온전한 형식을 갖춘 비판은 드뭅니다. 대신, 전장연 집회 기사를 보면 온갖 욕설을 담은 댓글이 주렁주렁 달립니다. 그 이유가 뭘까요. 그들의 주장을 제대로 소개하는 기사가 드물었기 때문입니다. 출근길 시민 불편만 강조하죠. 그나마 전장연의 주장이 제대로 소개된 기사가 나오기 시작한 건 최근의 일입니다. 다름아닌 이준석 대표가 전장연을 공격하고 나선 다음부터죠.

오죽하면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가 “욕을 바가지로 먹든 한 트럭을 먹든 , 욕을 더 많이 먹어서라도 우리 문제가 < 100분토론>에 한 번 나와 봤으면 소원이 없겠다 ”고 했겠습니까. 우리 사회는 여전히 소수자를 투명인간으로 만들고, 혹 목소리라도 내려고 하면 거침없이 비난하고 있지 않습니까?

기왕 <100분 토론> 얘기가 나왔으니 그 얘기도 더 해보죠. 이 대표는 지난달 31일 전장연이 <백분토론>에 나와서 토론해보자고 제안하자, 이를 받아들이겠다고 했다가, MBC 쪽과 협의 과정에서 조건이 맞지 않아 결렬됐다고 밝힙니다. “저는 세 가지 요구 사안이 있었다. 일대일 토론을 하자는 것과 방송인 김어준씨를 사회자로 하자는 것, 일정은 공천 절차 때문에 당이 바쁘니 최소 7일 이후로 하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단 하나도 MBC에서 받아들여진 것이 없었다.”

김어준이 왜 거기서 나와?

거기서 김어준이 왜 나옵니까? 토론 방식과 사회자까지 특정해서 조건으로 내걸고 받아들여지지 않자 결렬을 선언하는 건 참으로 어처구니없지만, 처음 보는 것만도 아닙니다. 지난 대선 당시 국민의힘이 대선 후보 TV 토론 협의 과정에서 반복해서 보여줬던 모습과 다르지 않습니다.

다만, 얼마나 발언권이 넘쳐나면 <백분토론>에 나와서 욕 얻어먹는 것을 자처하는 간절한 요구 앞에서 자기가 멋대로 정한 룰을 들이대며 결렬시킬 수 있는지…, 기가 막히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합니다. 결국 오는 13일에 <JTBC> ‘썰전 라이브’에서 박경석 대표와 일대일 토론을 하는 걸로 정리가 됐다고 합니다. 이준석 대표는 언변에서 박 대표를 앞설 것으로 자신하는 듯한데요. 이걸 토론이라고 해야 할지 배틀이라고 해야 할지 의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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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단체의 절박함을 한낱 토론 배틀 대상 정도로 치부하고, 게임의 룰마저 자신에게 최대한 유리하게 가져가려는 집요함까지 엿보입니다. 나아가 이 대표가 여성가족부 폐지를 주장하며 그토록 내세운 ‘공정성’의 본질이 무엇인지도 새삼 확인하게 됩니다.

이 대표가 의도했든 안 했든, 이 대목에서 전장연과 여성가족부, 장애인과 여성이 자연스럽게 만납니다. 장애인단체 투쟁에 대한 이준석 대표의 과잉 대응도 대선의 연장선 위에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젠더 갈라치기를 중심에 둔 선거전략이 막판에 큰 역풍을 만나면서, 대선 결과에서 그의 공로도 흐릿해지고 말았습니다. 이 대표로서는 새로운 ‘자기정치’가 절실한 시기입니다.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대상이 여성에서 장애인을 전환된 거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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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식도 유사합니다. 이 대표는 장애인단체와의 전선을 넓혀가면서 동시에 장애인단체들 내부를 갈라치고 있습니다. 지난 1일 탈시설에 반대하는 ‘전국장애인거주시설이용자부모회’라는 단체와 간담회를 열어서 탈시설 예산 보장을 요구하는 전장연을 간접적으로 흔들었습니다. 당구 용어로 ‘쓰리큐션’이죠. 이 단체는 지역사회 지원체계가 없는 상태에서 추진되는 탈시설 로드맵에 반대하고 있습니다. 또한 모든 장애인 부모들이 탈시설에 반대하는 것은 아닙니다. ‘전국장애인부모연대’라는 단체는 오히려 탈시설과 함께 발달장애인 하루 최대 24시간 지원체계 구축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 대표는 지난달 28일 “전장연의 투쟁 방식이 강력한 거지, 다른 5개 법정단체보다 대표성이 약하다”고도 했는데요. 이튿날에는 전장연 시위를 비판하는 ‘지체장애인협회’의 영상을 공유하면서 “지체장애인협회와 긴밀하고 진지한 정책적 협력관계를 구축해 나가겠다”고 밝히기도 했죠. 지체장애인협회는 대선 때 윤석열 후보를 공개 지지한 곳입니다. 반면 5개 법정단체 가운데 하나인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은 “대안 없이 갈등을 조장하는 당대표는 자질을 잃었다”며 이 대표의 사퇴를 촉구하기도 했습니다.

여성에 이은 장애인 갈라치기 신공

전선 넓히기와 갈라치기, 이 대표의 셈법보다 현실은 훨씬 복잡합니다. 이 대표의 갈라치기 신공이 얼마나 효과를 발휘할지 궁금합니다. 박경석 대표와 배복주 정의당 부대표, 배 부대표와 국가인권위 관계나 김예지 의원 비서관의 남편까지 꺼내들며 이들이 ‘특수관계’이기 때문에 전장연 편을 든다는 식으로 비난하는 걸 보면, 어안이 벙벙합니다. 이 정도면 음모론 또한 신공을 발휘하려는 것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대선 막판에 경험한 것처럼, 이 대표가 이번에도 결정적으로 간과한 게 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페미니즘이 그렇듯이, 장애인운동 또한 쉽게 꺾을 수도, 고립시킬 수 없다는 것입니다. 둘 다 당사자운동이면서도, 부문운동보다 훨씬 범주가 넓은 보편적 운동이기 때문입니다.

당사자운동이라는 건 매개되거나 중개되거나 대의되지 않더라도 그 자체로 강력한 생명력을 갖고 움직이는 속성이 있습니다. 박경석 전장연 대표의 예를 들어보죠. 그는 사고로 장애인이 된 뒤 5년 동안 집에서 두문불출했습니다. 그러나 장애인에 대한 구조적 차별을 인식한 뒤 평생을 비타협적인 운동가로 살아왔습니다. 존재와 의식이 대면하고 일치되는 사건을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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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걸 철학적으로 ‘진리 사건’이라고 부릅니다. 지금 장애인운동가들 가운데는 박경석 말고도 투쟁 과정에서 진리 사건을 경험한 수많은 이들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장애인 이동권 운동만 보더라도 멀리는 1984년 장애인 김순석이 서울시장 앞으로 서울 거리와 건물들에 경사로를 설치하라고 요구하는 공개 편지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데서부터, 좀 더 가깝게는 2001년 오이도역에서 장애인 부부가 휠체어 리프트에서 추락해 사망한 사건에서부터, 끊임 없이 목숨 값을 물어가며 이어져 왔습니다.

그들은 말합니다. “우리는 목표가 아니라 의지를 공유했기 때문에 살아남았다.” 당사자운동이 바로 그런 겁니다.

‘비장애중심주의’ 흔드는 거대한 도전

이제 장애인운동이 왜 보편적 운동인지 살펴보죠. 이 대표는 ‘비장애중심주의’라는 말을 들어봤는지 모르겠습니다. 비장애중심주의는 세상 모든 것을 장애와 비장애뿐 아니라 정상과 비정상, 가능과 불가능, 그리고 남성과 여성, 심지어 인간과 비인간이라는 고정되고 위계적이며 차별적인 이분법으로 보는 거대한 이데올로기 체계입니다. 우리나라 대중교통 체계가 상징적인 축소판입니다.

이번 출근길 지하철 투쟁을 거치며, 수많은 비장애 시민들이 장애인을 동료 시민으로 인식하기 시작했습니다. 거부감을 보이는 이들조차 적어도 그들의 존재를 구체적으로 인식하게 됐습니다. 집단적인 진리 사건입니다. 오늘날 장애인운동은 비장애중심주의와의 싸움으로 빠르게 진화하고 있고, 성과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번에 영화 <코다>가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은 것은 그런 징후 가운데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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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장애인 출근길 지하철 투쟁 이후 지금 한국 사회가 멘틀이 움직여서 다른 멘틀과 충돌하는 지각변동을 앞두고 있지 않은가 생각해 봅니다. 많은 연구자들의 상상력 넘치는 연구를 기대해 봅니다. 이번 투쟁의 단기적인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적어도 토론 배틀 한두번으로 끝나지는 않을 것입니다. 장애인을 예전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투명인간으로 되돌리는 것도 불가능합니다.

이준석 대표는 생각보다 큰 싸움에 뛰어들었습니다. 그가 문명-비문명을 들고 나온 게 네번째 우연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기획·출연 안영춘 논설위원 jona@hani.co.kr.

연출·편집 조소영 피디

도움 채반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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