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거 한창 세운지구 3-2구역 가보니
대진정밀은 새 건물에 외벽 ‘이식’
다른 곳은 법근거 없어 철거 위기
서울 중구 입정동 근현대건축자산 ‘대진정밀’ 건물 앞에 가림막이 쳐진 모습. 청계천을지로보존연대 제공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지난 23일 오후 찾은 서울 중구 세운지구 3-2구역 재개발 현장. 근현대건축자산으로 지정됐던 ‘대진정밀’ 건물 앞에는 푸른 가림막이 쳐져 있었다. 보존 논란이 일었던 대진정밀 건물 외벽 벽돌만 떼어내 신축 건물에 붙이기로 결론나면서, 민간 재개발 시행사는 벽돌해체 작업에 돌입한 터였다.
같은 세운지구 3-2구역에 있는 38년 역사를 자랑하는 을지다방은 한때 방탄소년단(BTS)이 다녀가면서 유명해졌지만 이제 문을 닫은 상태였다. 을지다방 아래층 을지면옥 홍정숙 사장은 “시행사가 하도 압박을 하니 을지다방 사장 언니도 ‘죽네 사네’ 마음고생을 하다 결국엔 나갔다. 저희도 법정 싸움까지 하면서 버티고 있는데, 너무 갑갑하다”고 말했다.
재개발 사업이 한창인 세운지구에는 역사문화자원이 여럿 있다. 3-2구역 대진정밀·을지면옥·을지다방, 3-3구역 양미옥·조선옥, 4구역 예지동 제일사 등이 근현대건축자산과 생활유산으로 등록돼 있다.(서울시 2015 역사도심기본계획)
이 가운데 1947년 이전에 벽돌조적조(벽돌을 쌓아 올리는 건축 양식) 방법으로 만들어진 2층 건물인 대진정밀은 철거 방침에 시민사회가 반발하고 서울시·중구가 중재에 나서면서 기존 벽돌들을 신축 건물 저층부 외벽에 붙이는 방식으로 일부 보존하기로 했지만, 나머지 건물 등은 합의된 내용이 없어 철거될 위기다.
‘역사유산 흔적 남기기’ 관련 규정이 없는 것은 아니다. ‘2013년 서울시 정비사업 역사유산 흔적 남기기 가이드라인’을 보면, 정비사업 절차를 진행할 때 ‘역사유산흔적남기기 소위원회’를 꾸려 자문을 거친다는 규정이 있다.
하지만 가이드라인일 뿐 강제성은 없다. 이에 시민사회 진영에서는 이제라도 제대로 된 ‘세운지구 역사문화자원 보존’을 공론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청계천을지로보존연대 활동가인 안근철 연구원은 “예를 들어 앞면(벽돌들)을 따 보존하기로 한 대진정밀 건물은 벽돌조적조 방식을 보여주자는 의미만 있는 게 아니다. 대진정밀이 있는 을지로 골목은 조선시대 도시 조직과 구조가 조금씩 변형되면서 만들어진 곳”이라며 “(골목 자체가) 조선시대부터 조금씩 변형돼온 것이라 ‘살아 있는 유산’이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가치가 공론화 과정도 없이 다 사라지는 게 안타까운 것”이라며 “소위원회나 건축위원회를 거쳐 심도 있는 논의를 하면 좋은데, 전문가 한명 의견만 형식적으로 받는 식으로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현재 진행 중인 개발 방식 앞에선 대대로 가업을 이어가는 백년가게들은 설 자리가 없어진다는 비판도 있다. 을지면옥 홍 사장은 “우리 말고도 오래된 식당을 하신 다른 분들은 모두 답답해한다”며 “저도 부모님이 하신 가업을 대를 이었고, 저희 자식들이 또 배워가고 있는데 이런 가치들은 잊혀가는 것 같다”고 아쉬워했다. 그는 “우리 가게 앞으로 청계천 관광 해설사가 외국인들과 함께 와서 역사적 가치를 설명해주곤 했다”며 “우리가 엄청난 돈을 요구하는 것처럼 알려졌는데 토지 감정가가 시세 절반 수준으로 나왔다. 저희는 이 허름한 건물을 지키고 싶은 것뿐인데, 시세 절반 수준으로 팔고 엄청난 세금을 내고 나면 또 어디로 옮겨야 할지 막막해 재판을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서울시 다시세운사업팀은 “시행사와 가게가 마찰을 빚으면서 중구청에서도 여러번 중재에 나섰지만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며 “역사문화자원에 어느 정도 가치가 있는지 사람마다 생각이 달라 어려움이 있다. 문화재로 지정되지 않은 것들은 법적 지위가 있는 것이 아니라 위원회를 만들거나 공론화를 하는 데도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손고운 기자 songon11@hani.co.kr
벗 덕분에 쓴 기사입니다. 후원회원 ‘벗’ 되기
항상 시민과 함께 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 신청하기‘주식 후원’으로 벗이 되어주세요!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