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하버드대 휠체어 탄 선배 거론하며
“내 주안점은 이동권…기재부 혼내려면 대선 성공뿐”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가 23일 오전 국회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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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약자는 무조건 선하고 강자는 무조건 악하다’는 인식이 장애인 이동권 시위에 작동하고 있다며 경찰력까지 동원한 강경 대응을 주문하는 가운데, 정작 지난해 같은 장애인단체를 만나서는 “당대표로서 주안점은 이동권이다” “(저상버스 도입 법안에 반대하는) 기재부를 혼내는 방법은 대선에 성공하는 것밖에 없다”고 말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버드대 유학 시절 휠체어 타던 선배 얘기까지 꺼내며 집권여당이 되면 노력하겠다는 말을 해놓고는 대선이 끝나자마자 “시민을 볼모로 한 아집”이라며 노회한 말 뒤집기 행태를 보인 것이다.
27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는 지난해 8월2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이뤄진 이준석 대표와의 면담 속기록을 공개했다. 속기록을 보면, 오후 5시부터 32분간 이뤄진 면담에서 박경석 전장연 대표는 이 대표에게 △저상버스 도입 의무화 △평생교육법안 △탈시설지원법안 등 장애계 여러 요구 사항을 정리해 설명하고 예산 배정을 담당하는 기획재정부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저상버스 도입 의무화 법안(교통약자법) 통과 및 기재부의 예산 반영을 촉구하는 박 대표에게, 이 대표는 “저희가 기재부 혼내는 방법은 대선 성공하는 것밖에 없다. 하여튼 당 대표 주안점은 이동권(이다.) 계속해서 관심 가지겠다”고 답한 것으로 나온다.
교통약자법은 지난해 연말 개정됐지만 한계가 있다. 시내·마을버스 등을 교체할 때 의무적으로 저상버스를 도입하도록 했지만 시외·고속버스는 대상에서 제외했다. 이를 보완하려면 장애인 콜택시 등 특별교통수단 예산 지원이 중요한데, 국가의 예산 지원 근거가 의무조항(해야 한다)에서 임의조항(할 수 있다)으로 바뀐 채 개정된 법이 본회의를 통과한 것이다. 이후 전장연은 지난해 12월부터 법 재개정을 요구하며 출근길 지하철 시위에 나섰다. 지난 22일 전장연이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전달한 요구안에도 특별교통수단 운영비 국고 지원을 위한 내용이 포함됐다.
지난해 8월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왼쪽부터) 변재원 전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정책국장, 박경석 전국장애인야학협의회 이사장, 권달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와 면담을 한 뒤 장애인 이동권에 대한 관심을 약속한 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전장연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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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사정을 모르지 않는 이 대표이지만 최근 페이스북을 통해서는 요구 사항 앞순위에 없는 ‘지하철 엘리베이터 설치율’ 만을 집중적으로 거론하며 장애인들을 공격하고 있다. “결국 지하철 시위를 하는 이유는 이미 (지하철 엘리베이터가) 94% 설치되었고 3년 뒤 100% 설치될 것으로 이미 약속이 완료된 이동권 문제가 아니라 장애인평생교육법안, 탈시설지원 등에 대해 자신들의 뜻을 관철시키기 위해 ‘지하철 타는 시민’을 대상으로 한다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면담에서 미국 유학 시절 경험을 꺼내며 “일부 마을버스 노선에 저상버스 도입도 논의하고 싶다”던 태도와는 180도 달라진 것이다.
박경석 전장연 대표는 <한겨레>에 “엘리베이터 100% 설치만 딱 잡아서 게시물을 올리고 있다. 집권여당 대표가 될 사람이 꼬투리잡기 말장난하는 식으로 이야기하는 게 실망스럽다”고 했다. 면담자리에 함께 했던 변재원 전 전장연 활동가는 “당시 이준석 대표는 예산 배정과 관련한 기재부의 중요성을 알고 있었고, 그 뒤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이종성 국민의힘 의원을 연결해줬지만 진전이 없었다. 이 대표는 이제라도 대통령직인수위와 전장연이 장애인정책에 대해 논의할 수 있도록 여당 대표로서 자리를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한편 이 대표는 지하철 운영사인 서울교통공사가 시위 장애인들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조성하기 위해 일부 맥락을 잘라 퍼뜨린 현장 사례를 인용하며 “장애인이 절대 선자(선한 사람)라는 프레임은 작동하지 않는다”고도 했다. 앞서 서울교통공사 홍보팀 직원은 지하철 시위 때문에 할머니 임종을 못 할 거 같다는 시민 항의에 이형숙 서울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회장이 “버스 타고 가세요”라고 말한 사실을 언론에 알려 이용해야 한다는 대응 전략을 만든 바 있다. 그러나 당시 이 회장은 10여초 뒤 울먹이며 “작년 7월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응급실에서 임종이 임박했으니 빨리 오라는 전화를 받았는데 제가 휠체어를 타고 이동할 수 있는 수단이 없어서 임종을 못 봤다. 그래서 그 마음을 안다. 정말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박지영 기자 jy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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