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꿈치 부분이라도 건드리지 못했다면 큰일이 났을 겁니다. 천만다행입니다.”
전직 대통령 박근혜씨를 향해 지난 24일 소주병을 던진 40대 남성을 제지한 이주석 경사(41)는 이렇게 말했다. 부산경찰청 5기동대 소속인 이 경사는 박씨 경호를 위해 대구에 파견 근무를 와 있었다.
이주석 경사는 25일 경향신문 취재진과의 통화에서 “소주병 투척이 순식간에 벌어졌다”고 설명했다. 이 경사는 대구 달성 사저에 지난 24일 오전 8시쯤 도착한 뒤 대기하다, 이날 오전 10시반쯤 현장에 배치됐다. 그는 박씨 사저 앞 취재진이 모여있던 구역을 안전펜스 밖에서 지켜보고 돌발상황에 대응하는 임무를 맡았다.
지난 24일 박근혜씨가 대구 달성 자신의 사저 앞에서 입장을 밝히던 중 박씨를 향해 소주병을 던진 이모씨(48)가 경찰에 연행되고 있다. 독자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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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경사는 “해당 구역에는 (카메라와 취재수첩 등을 든) 30여명의 기자들이 있었는데, 펜스 가까이에는 (촬영을 더 잘하기 위해서) 사다리 위에 기자들이 올라가 있었다”면서 “소주병을 투척한 남성 역시 사다리 위에 올라간 채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고 있던 터라 당연히 기자인 줄 알았다”고 말했다. 이 경사는 해당 남성이 사진기자처럼 취재용 접이식 사다리를 가져온 뒤, 다른 기자들과 마찬가지로 사다리 위에 앉거나 일어서며 촬영을 했다고 기억했다. 마스크까지 쓰고 있어 표정을 읽기 어려운 데다 기자처럼 행동해 의심하기가 힘들었다는 것이다.
이 경사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사저 앞에 도착하자 기자들이 사진을 찍기 위해 안전펜스 바로 앞까지 몰렸다”면서 “이 때문에 펜스가 넘어질 우려가 있어 손으로 펜스를 받쳐야만 했다”고 말했다.
기자인 척 하던 40대 남성의 행동이 수상해진 것은 그때였다. 취재 열기가 고조돼 기자들이 앞쪽으로 몰리면서 행동이 비교적 자유롭게 되자, 이 남성은 들고 있던 휴대폰을 어딘가에 집어넣고 자신의 가방 안으로 손을 뻗었다. 손에 들린 것은 녹색 소주병이었다. 병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액체가 절반 넘게 담겨 있었다.
이주석 경사는 “(박씨의) 연설이 시작되자 이 남성도 처음에는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었다”면서 “하지만 이내 촬영을 중단하고 가방에서 뭔가를 꺼냈는데, 소주병 같은 게 보였다”고 말했다. 이때부터 이 경사는 ‘왜 기자가 소주병같은 걸 들고 있지?’라는 생각에 남성을 유심히 지켜봤다고 한다.
이 경사는 “남자가 갑자기 소주병을 들었는데, 병의 목부분을 잡고 거꾸로 들더라”면서 “순간 큰일나겠다 싶어서 제지하려고 손을 뻗었는데, 완전히 뺏지는 못하고 (남자의) 팔꿈치 부분을 치는데 그쳤다. 남자가 사다리 위에 올라가 있어 키가 닿을 수 없었던 탓이다”고 회상했다.
박근혜씨가 인사말을 하던 곳과 취재진들이 있던 곳은 불과 5~6m 떨어져 있었다. 남성이 던진 소주병은 4m가량 날아가 박씨가 있던 곳에서 채 2m가 되지 않는 곳에 떨어지면서 깨졌다. 소주병 투척을 막지는 못했지만, 이 경사가 제지하지 않았더라면 박씨에게 위해를 가할 수 있었을 거라는 게 현장 경찰관들의 전언이다. 이치훈 대구 달성경찰서 형사과장은 “해당 남성이 자유로운 상태에서 병을 던졌다면 박 전 대통령을 맞혔거나 바로 앞에서 병이 깨져 파편이 튀는 등 다치게 할 수도 있는 위험한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이 경사는 병이 던져진 직후 있는 힘껏 손을 뻗어 남성의 목덜미를 잡아 챘고, 다른 경찰관들의 도움을 받아 펜스 밖으로 그를 끌어내 긴급 체포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끝으로 그는 “현장에서 많은 경찰관들이 고생했는데, 불상사가 벌어지지 않아서 정말 천만다행이다”고 말했다.
이날 부산·경남·울산·경북·대전·충북 등지에서 20개중대 1300여명의 경찰이 박씨 사저 인근에 파견 근무를 온 것으로 파악됐다. 대구경찰청 인력 200명을 포함해 1500여명이 현장을 지켰다.
소주병을 던진 이모씨(48)는 범행 직후 가진 경향신문과의 전화 통화에서 “먹다 만 소주병을 들고와서 박씨를 향해 던졌다”며 “(박씨를) 해치기 위해서 던졌는데, 그렇지 못해서 아쉽다”고 말했다.
경찰은 이씨에 대해 특수폭행미수 혐의를 적용해 25일 구속영장을 신청할 예정이다. 경찰은 이씨가 던진 소주병 입구에 남아있던 액체에 대한 분석을 국과수에 의뢰한 상태다.
백경열 기자 merc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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