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두드려라, 그러면 열릴 것이다."
이 유명한 성경 문구를 굳이 인용하지 않아도,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들의 성실과 끈기는 새삼스러울 것이 없다. 좋은 작품을 만들고, 상업적 성공까지 거둘 수 있다면 이보다 좋을 일이 있을까. 여기에 부상처럼 주어지는 수상의 영예까지 얻을 수 있다면 금상첨화다.
OTT 업계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는 넷플릭스가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새로운 역사에 도전한다. 3년 연속 도전했지만, 끝내 이뤄내지 못했던 작품상 트로피를 올해는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가능성이 그 어느 해보다 높다.
넷플릭스에게 환희를 선사할 것으로 기대를 모으는 작품은 제인 캠피온 감독이 연출한 서부극 '파워 오브 도그'다. 이 영화는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과 감독상(제인 캠피온), 남우주연상(베네딕트 컴버배치)을 비롯해 총 12개 부문 후보에 올랐다.
대망의 날이 5일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파워 오브 도그'는 앞서 열린 골든글로브 시상식, 크리틱스 초이스 어워드,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 등에서 작품상을 휩쓸며 아카데미에 한 발 더 다가갔다.
◆ 서부극의 외피를 쓴 훌륭한 심리극…오스카가 보인다
'파워 오브 도그'는 1920년대 미국 몬태나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서부극이다. 25년간 목장을 운영해오던 버뱅크 형제에게 새 가족이 생기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렸다. 서부극 장르이지만, 영화의 분위기나 연출 방식을 보면 심리 스릴러에 가깝다.
영화 '피아노'(1994)로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며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제인 캠피온 감독이 12년 만에 연출한 작품이다. 인물의 심연을 파고드는데 남다른 재주를 가진 감독답게 이번 작품에서도 인물 간 심리묘사가 탁월하다.
거친 남성성 아래 남모를 상처와 비밀을 품은 남자 필(베네딕트 컴버배치)과 가녀린 체구와 여린 심성의 소유자처럼 보이지만 내면은 누구보다 단단한 피터(코디 스밋 맥피)의 갈등과 대립을 통해 쉼 없는 긴장감을 유발하고, 후반부에 두 사람의 관계에 큰 변화를 보여주며 미스터리한 제목의 궁금증을 해소한다.
영화의 배경은 미국 몬태나지만 촬영은 모두 뉴질랜드에서 이뤄졌다. 또한 서부 영화지만 총싸움이나 결투 장면은 나오지 않는다. 장르 컨벤션을 깨면서 장르의 매력을 확장한 수작이다.
'서부극 같지 않은 서부극'에 한 유명 영화 배우는 신랄한 비판을 가하기도 했다. '서부 영화의 아이콘'인 노배우 샘 엘리어트는 이 작품을 '쓰레기'라고 혹평하며 "웨스턴 영화에서 웨스턴은 어디에 있나. 카우보이가 말을 타지 않는 것은 모순"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영화 속에 흐르는 동성애 코드에 대해서도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뿐만 아니라 "뉴질랜드의 저 아래에 사는 이 여성이 미국 서부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을까?"라며 성차별적인 발언도 거침없이 쏟아냈다.
이에 대해 제인 캠피온 감독은 "서부는 환상적 공간이고, 해석의 범위가 굉장히 넓다."라고 받아쳤다. 이 한마디가 '파워 오브 도그'의 매력을 압축한다고 볼 수 있다. 장르에 어울리는 영화적 문법이라는 게 있을 수는 있지만, 그것이 반드시 정답은 아니다. 장르의 클리셰를 깨고 자신만의 언어로 이야기를 풀어나간 제인 캠피온의 연출은 더없이 훌륭하다.
◆ 쿠아론, 스콜세지, 핀처도 못 이룬 쾌거…OTT 영화는 왜 안 돼?
넷플릭스는 2019년 '로마'(감독 알폰소 쿠아론), 2020년 '아이리시 맨'(감독 마틴 스콜세지)와 '결혼 이야기'(감독 노아 바움백), 2021년 '맹크'(감독 데이빗 핀처)와 '트라이얼 오브 더 시카고7'(감독 아론 소킨)으로 3년 연속 아카데미 작품상에 도전했다.
이 중 가장 근접한 작품은 '로마'였다. 평단으로부터 그해 가장 뛰어난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보수적인 아카데미 위원들은 OTT 영화 대신에 미국적인 감동 드라마 '그린북'을 선택했다. '로마'는 감독상과 촬영상, 외국어영화상 수상에 만족해야 했다. 비록 작품상 수상에는 실패했지만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로서는 최고의 성과였기에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그 이후로도 매년 아카데미 작품상 부문에 한 편 이상의 영화를 올리며 넷플릭스는 '영화의 명가'로서의 명성을 쌓기 시작했다. 올해는 '파워 오브 도그'가 최다인 12개 부문에 이름을 올리며 작품상과 감독상 동시 석권을 노린다.
올해가 넷플릭스에 적기인 이유는 작품상 후보에 오른 10편('파워 오브 도그', '듄', '벨파스트', '코다', '돈 룩 업', '드라이브 마이 카',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리코리쉬 피자', '킹 리처드', '나이트메어 앨리')중 5편이 OTT 영화다. '파워 오브 도그'와 '돈 룩 업'은 넷플릭스, '듄'과 '킹 리처드'는 HBO 맥스, '코다'는 애플TV 플러스 제작이다. OTT 영화가 극장 영화의 대항마로 떠오른 것이 아니라 이제는 대세가 된 것이다.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극장 산업이 붕괴되다시피 했고, 유명 감독들도 OTT 영화 연출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넷플릭스는 수년 전부터 공격적으로 영화 제작에 나섰다. 스튜디오가 난색을 표했던 거장들의 영화적 비전을 막대한 제작비, 편집의 전권을 쥐어주는 확실한 지원을 통해 실현시켜줬다.
극장용 영화의 위기 속에서 넷플릭스의 오리지널 영화들은 나날이 발전했다. 영화인들은 "극장은 사라지지 않는다", "영화는 멈추지 않는다"라고 한 목소리로 입을 모았지만 극장 상영을 전제하는 영화만이 영화라고 여겼던 전통적 개념을 그들 스스로가 뛰어넘었다. 'OTT 영화라서 안 돼'라는 말은 이제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통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올해 '파워 오브 도그'가 아카데미 작품상을 타게 된다면 '최초의 역사'라는 금자탑을 쌓게 된다. 수상이 가지는 의미는 클 수밖에 없다. 넷플릭스의 염원이 실현되는 것은 물론이고, OTT 영화와 극장 영화의 파워 게임의 판도도 달라질 수 있다.
할리우드 시상식 예측 사이트 골드더비에 따르면 '파워 오브 도그'는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 부문에서 전문가, 편집자, 일반 회원 투표를 모두 합해 4,654표를 받아 수상 예측 1위에 올랐다. 2위는 852표를 받은 '코다'였다. 전문가 투표에서는 '파워 오브 도그'(12표)와 '코다'(10표)가 각축을 벌이는 모양새다.
각종 시상식에서의 성적을 바로미터로 본다면 '파워 오브 도그'의 1강이다. 2중은 '코다'와 '드라이브 마이 카' 정도다. '코다'는 미국 선댄스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받으며 주목받았고, '드라이브 마이 카'는 칸영화제에서 각본상을 받으며 바람을 일으켰다. 그러나 두 영화 모두 '파워 오브 도그'에 비하면 미풍 수준의 주목도라 할 수 있다.
'드라이브 마이 카'의 경우 '기생충'에 이어 또 한 번 아시아 영화의 오스카 작품상에 도전하고 있지만, 미국 배급사가 중소 규모인 자누스 필름이라 오스카 캠페인에 있어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고 있다. 반면 넷플릭스는 '파워 오브 도그'의 오스카 캠페인에 전폭적인 지원을 하며 새 역사를 쓰기 위한 마지막 퍼즐을 끼우고 있다.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은 오는 3월 27일(현지시간) 미국 LA 돌비 극장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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