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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3 (토)

이슈 고령사회로 접어든 대한민국

[르포]"식사준비 버겁고 집에만 꽁꽁" 고령 독거男, 고독사에 취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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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홍효진 기자, 강주헌 기자] [편집자주] 코로나19로 공공이 분담하던 역할이 제기능을 못하면서 가정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졌다. 거리두기와 비대면 일상화에 따른 부작용도 커졌다. 매 맞는 아이, 학대당하는 부모가 있어도 주변에서 파악하기가 쉽지 않고, 홀로 살던 누군가 죽어도 알아채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코로나19가 만든 사각지대, 이른바 '코로나 그레이존'에 갇힌 사람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코로나19로 짙어진 우리 사회의 그늘을 짚어본다.

[MT리포트]코로나 그레이존(하)-고독사, 죽어야 보이는 사람들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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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오후 12시 인천 부평구의 한 영구임대아파트에서 혼자 살고 있는 주민 이승동씨(70)의 집안. /사진=홍효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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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롭지. '내가 얼른 떠나야지' 이런 생각만 하게 되고…"

8일 오후 12시 인천 부평구의 한 영구임대아파트. 아내와 이혼 후 20년간 홀로 생활하고 있는 이승동씨(70)가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집안에는 옷가지들이 정갈하게 놓여있었다. 깔끔한 집 안 풍경은 외로운 분위기를 더했다.

집 문 앞에서 처음 만난 승동씨는 오랜만에 시장을 찾아 장을 보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승동씨는 독거생활 직전 뇌성마비 진단을 받았다. 이따금 전동 휠체어를 타고 장을 보러 가는 것 외에는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낸다.

승동씨는 "밖에 나가면 말도 잘 통하지 않는다"며 "오늘은 '파'라는 단어가 생각이 안나서 손으로 (설명)했다"고 양손을 옆으로 길게 늘이며 기다란 '파' 모양을 허공에 그렸다.

중장년층 1인가구 등 고독사 위험군에게 사회서비스 지원은 절실하다. 특히 고립 성향이 강한 고령 남성으로 대표되는 계층은 외로움에 취약하다. 1인가구 증가, 코로나19(COVID-19)로 인한 사회적 교류 위축으로 고독사 예방 필요성이 커지면서 공공 차원에서도 대응하고 있지만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실정이다.

이날 머니투데이 취재진이 찾은 아파트에는 약 1900세대의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었다. 그 중 중장년층과 노인층을 포함한 독거주민은 1400세대 이상이다. 영구임대아파트다 보니 입주민 가운데 독거어르신, 장애인, 한부모 가정 등 사회적 지원이 필요한 이들이 대다수를 차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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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오전 11시30분 만난 독거노인 박영철씨(84)가 지내는 집안. /사진=홍효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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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움 감내하는 고령 독거 남성, 고독사에 취약

아파트 단지 내 삼산종합사회복지관에서 근무하는 문은영 복지사는 "혼자 사시는 아버님들은 특히 외로움을 많이 탄다"며 "돌봐줄 사람이 없다보니 식사 준비도 혼자 하기 어려워하신다"고 말했다.

문 복지사는 "입주민들 가운데 기초생활수급자 비율이 95% 이상"이라며 "그 중에서도 혼자 사시는 아버님들은 프로그램 참여율도 상대적으로 낮아 코로나19 이후 '외롭다'는 말씀을 많이 하신다"고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밑반찬 만들기, 공연 관람 등 1인가구 대상 프로그램을 복지관에서 운영하고 있지만 참여 의지가 없는 주민에게 강제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날 머니투데이 취재진과 함께 승동씨를 찾은 문 복지사가 "집에만 계시는 것보다 프로그램에 참여하시는 건 어떠냐"고 물었지만 승동씨는 말없이 웃으며 고개만 가로저었다.

20년간 혼자 살고 있다는 박영철씨(84)는 집안에 고립돼 혼자 지내고 있었다. 사업 실패와 동시에 오랜 기간 류머티즘성 관절염을 앓아온 아내와 사별하며 홀로 살기 시작한 그는 "운명이라고 생각해야지 별 재간이 있겠느냐"며 "20년 가까이 돼서 생활하는 건 익숙하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박씨의 익숙한 '홀로 생활' 속에서도 코로나19의 존재감은 크게 다가왔다. 10년째 폐쇄성 폐질환을 앓고 있는 박씨는 부작용이 걱정돼 백신 접종도 하지 못했다. 섣불리 외부 활동에 나섰다가 감염될까 제대로 된 외출도 거의 끊겼다. 박씨는 "코로나 전에는 나가서 노인네들이랑 얘기도 나누고 그랬는데 자주 그러지 못하니까 말동무가 사라진 기분"이라며 "집에만 있으니 하는 일 없이 앉아만 있다"고 말했다.

'80대 노인'이라는 고령자 꼬리표도 박씨를 집안으로 숨게 만드는 배경 중 하나다. 박씨는 "복지관에서 혼자 사는 사람들 (대상으로) 뭘 한다는 건 알고 있다"면서도 "나이가 있다보니까 그런 곳에 가서 어울리기도 힘들다. 도움이 될지도 잘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고령의 독거 남성일 경우 비활동적인 성향이 강해 집안에만 고립되는 경우가 많다. 2020년 10월 김원이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보건복지부로부터 제공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6~2020년 6월 기준 65세 이상 독거노인의 고독사 비중은 전체 9734명 중 4170명으로 가장 많았다. 이 가운데 남성은 2736명, 여성은 1434명으로 남성이 여성보다 1302명 더 많은 것으로 집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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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오전 9시30분 기자가 찾은 인천 부평구의 한 영구임대아파트 단지 내 급식소에서 준비한 도시락. /사진=홍효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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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콜' 등 모니터링 대응, 인력 한계…"지자체 관리 강화해야"

일부 지자체에서는 고독사 예방 대응을 위해 대책 마련에 나섰다. 인천시 동구는 가정 내 전기사용량이나 조도의 변화가 없을 경우 일대일로 연결된 관리자에게 문자가 가는 '스마트 돌봄플러그 사업'을 진행 중이다.

충북 음성군의 '똑똑안부확인서비스'는 3일 동안 휴대폰 위치에 변화가 없거나 유무선 전화기 통화 기록이 없으면 자동 안부콜이 가는 서비스다. 콜을 받지 않으면 이를 확인한 담당자가 다시 전화를 시도하고 연결이 되지 않으면 가정방문에 나선다. 대구시도 인공지능(AI) 안부 전화를 통해 중장년 1인가구의 상태를 확인하는 시범사업을 이달부터 도입한다.

이 같은 정책이 지속되려면 예산과 인력이 확보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존 복지 업무는 물론 고독사 예방을 위한 모니터링 대상군이 점차 늘어나면서 업무가 과중되면서다.

서울시 관계자는 "한 자치구 주민센터 등 모니터링을 담당하는 일선 현장 공무원들이 고충을 토로한다"며 "모니터링뿐만 아니라 재택방문 등 예방 매뉴얼이 순조롭게 이뤄지려면 이를 담당할 인력 확충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이날 함께 아파트를 찾은 문 복지사도 "주민들을 한 분 한 분 찾아가 세대 특징을 확인하고 프로그램 안내를 돕고 있다"며 "적극적인 분께는 도움 드릴 기회가 많이 열려있지만 홀로 고립돼 있는 분들과는 소통이 쉽진 않다"고 전했다.

전문가는 사회적 고립이 심화되는 현실에 발맞춰 지자체 차원에서의 사회서비스 지원 제공이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말한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한국 고령 남성의 경우 과거 가부장적 구조에서 누린 남성적 특권 때문에 관계망 형성 능력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게 사실"이라며 "혼자 고립된 분들을 밖으로 꺼내기 위한 지역사회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복지관 프로그램에 참여하도록 하는 것도 해결방안이 될 수는 있지만 본인 의지가 중요하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며 "빈곤이 사회적 단절과 고독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은 만큼 관련 사례 관리를 지자체별로 강화하고, 관계망 형성 욕구를 채워줄 수 있는 사회 서비스 전달 체계가 구축돼야 한다"고 짚었다.

홍효진 기자 hyost@mt.co.kr, 강주헌 기자 zoo@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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