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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7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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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대선…절묘한 민심, 모두가 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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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정치학자 6명이 말하는 제20대 대선 ‘잿더미’ 이후의 한국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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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지도부가 2022년 3월9일 대선 방송사 출구조사 결과를 보며 반가워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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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진 선거였다. 당선자는 있지만 승자는 없었다. 2022년 3월9일 대한민국은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이하 당선자)를 제20대 대통령에 선출했다. 최종 득표율 48.56%(1639만 표). 탄핵 정국에서 촛불의 힘으로 정권교체를 이룬 더불어민주당은 5년 만에 심판받았다. 87년 체제 이후 설정된 ‘정권교체 10년 주기설’도 개혁 진영의 막판 총결집도 성난 민심을 넘지 못했다. 이재명 민주당 후보는 3월10일 새벽 3시47분 기자회견을 열어 패배를 인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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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관계자들이 출구조사 결과를 보며 씁쓸한 웃음을 짓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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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최악의 선거’ 그 이상


그러나 윤 당선자에게도 아슬아슬한 결과였다. 2위인 이 후보(47.83%·1614만 표)와 윤 당선자의 표차는 30만 표를 넘기지 못했다. 역대 대선 가운데 1, 2위 간 격차가 가장 적다. 정권 교체 여론이 선거 막판까지 꾸준히 설문조사 결과마다 과반을 하며 구도를 지배했지만, 민심은 선거전의 최종심급에서 여야를 차갑게 저울질했다. 야당에 거뜬한 승리를 안겨주는 대신, 0.73%포인트가량의 근소한 차이로 마지못해 정권 교체를 허락했다. 1·2위 주자만이 아니다. 반전을 거듭하다 윤 당선자와 ‘막판 단일화’를 이룬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는 체면을 구겼다. 대선에 세 번째 도전한 심상정 정의당 후보는 2%대 득표에 머물며 진보정치의 한계를 드러냈다. 20대 남녀를 갈라치기 하며 ‘이대남’의 여성혐오 정서에 편승한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2030세대 여성의 심판을 받았다. 절묘한 민심 앞에 모두가 패자였다.

선거 내내 이대남 담론에 밀려 존재를 소거당했던 2030 여성만이 국민의힘의 ‘혐오정치’를 심판하며 선거의 진짜 주인으로 살아남았다. 역대 최악의 선거라고 불렸다. 유권자가 심판한 것은 이 지리멸렬한 정치일지 모른다. “소통을 거부하면서 상대방을 물어뜯으려고만 하는 좀비 정치”(강준만, <좀비 정치>), “합리적 논쟁이 사라진 정치, 불모의 흥분 상태가 지배하는 정치, 파당적 싸움만 있는 정치”(박상훈, <시민정치의 시대>).새 시대가 열렸지만 주위를 돌아보면 잿더미다. 문제는 이번 선거에서 양당이 취한 ‘비호감’과 ‘편가르기’ 정치가 결코 우연적이거나 일회적인 전술전략이 아니라는 데 있다. 대선을 전후해 <한겨레21>이 인터뷰한 정치학자 6명은 ‘극단적인 정치 양극화가 이번 선거로 드러났고, 대선 이후에도 지속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정치가 타협과 조정 대신 극단적인 대립과 적대로 치닫는 걸 말하는 ‘정치 양극화’는 가장 많이 득표한 후보가 홀로 모든 걸 가져가는 단순다수제의 승자독식 구조에선 피할 수 없다. ‘득표’가 모든 걸 결정하기 때문이다. 한국과 미국의 선거제도가 대표적이다.

문우진 아주대 교수(정치외교학)는 “(의회가 갈등을 해결하지 못하면) 유권자는 정당 대신 인물에게서 탈출구를 찾아 정치가 개인화되고, 특정 인물을 중심으로 형성된 지지 세력과 반대 세력 간에 정치 양극화가 심화될 수 있다”고 짚었다. 정당의 양극화가 지지자들의 양극화로 이어진 셈이다. 이준한 인천대 교수(정치외교학)도 “과거 ‘노사모’ 등의 팬덤과 달리 현재의 팬덤정치는 구심력 없이 원심력으로만 작동하면서 정당마저 흔들고 있다. 득표 격차가 크지 않아 대선 이후에도 각 정치인의 팬덤정치가 쉬이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미국에서도 정치 양극화 문제는 심각하다. “문제는 이념적 헌신성이 아니라 적대와 증오의 여론 동원”(정치학자 박상훈)에만 급급하다는 것이다. 2021년 1월6일, 대선 결과에 불복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지지자들이 연방의사당에 난입한 사태가 대표적이다. 김준석 동국대 교수(정치외교학)는 “최근 미국 여론조사에선 미국인의 압도적 다수가 (러시아와의 갈등에서) 우크라이나를 지지하는 거로 나타났지만, ‘바이든 정부’의 우크라이나 정책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응답은 40%에 그치는 거로 조사됐다. 이는 조 바이든 대통령의 국정지지도와 비슷한 수준인데, 진보-보수의 갈등이 정파와 인물을 넘어 뿌리 깊게 자리한 걸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다만 김 교수는 “정치 양극화는 의원내각제를 택한 영국에서도 심각한 문제여서, 대통령제의 문제라기보다 정치가 파당의 이익을 좇는 도구로 전락하면서 발생한 문제로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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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정 정의당 후보 캠프의 3월9일 저녁 풍경.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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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보다 지위를 추구하는 정당정치”


이번 선거에서 그런 양극화는 한층 심화했다. 문재인 정권이 펼친 ‘적폐 청산’과 ‘보복의 정치’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유죄 확정판결과 ‘박근혜 탄핵’으로 명분을 잃고 흩어진 보수 진영에 응집의 명분을 줬다. 여기에 ‘조국 사태’ 등을 지나며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을 향한 팬덤정치는 촛불세력 가운데 일부를 이탈하게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적폐 청산의 ‘칼’로 쓰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중심으로 ‘양립 불가능한 반대파’가 형성되는 듯 보였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정치학)는 “문재인 정부 들어 팬덤정치와 진영 논리에 따른 편가르기가 일상화되면서 양극화가 심화하고 ‘더 센 사람(후보)’ ‘판을 흔들 사람(후보)’에 대한 선호가 많아진 것”이라고 분석했다.

선거 기간 두 진영은 서로를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았다. 정당도, 지지자들도 서로를 악마로 규정했다. 후보들은 ‘서로의 감옥행’을 공약했다. 그런 의미에서 박원호 서울대 교수(정치외교학)는 이번 선거가 ‘역대 최악의 선거’라는 단순한 수사를 넘어 “민주주의에 위협이 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고 평가했다. “선거라는 룰 안으로 들어온 이상 정당들은 같은 게임을 하는 상대방으로 서로를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이번 선거에선 ‘범죄자랑 무슨 토론을 하느냐’(윤석열)는 식의 기본적인 존중조차 없는 말이 오갔다. 게임 상대방을 인정하지 않는 건 선거 자체에 대한 위협이고 민주주의에 대한 큰 위협이 될 수 있다.” 그러면서도 거대 양당은 적대적 공생을 모색한다.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네거티브전에 골몰했던 선거 과정을 두고 “정책적 차별성보다는 상대방의 약점을 이용해 부정적 이미지와 감정을 조성하는 방식이 지지 획득과 득표에 가장 효율적이라고 여기는 게 아닌가 싶다. 정책을 추구하기보단 지위를 추구하는 성향이 월등하게 강해진 정당 정치 문제에서 이유를 찾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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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분석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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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한 ‘적대적 공생’ 전략


본래 정치는 ‘사람을 모으는 기예’지만 양당이 택한 전략은 “70%로 압승하려 노력하기보단 49%로 안전하게 이기는 대안”이다. “든든한 45%의 지지 기반에 근거한 정치는 안전하다. 70%의 광범위한 지지를 얻기 위해 노력하는 부담 없이, 49%로 이기느냐 46%로 지느냐에 승부를 걸어 대립적 공생을 존속하는 전략을 택한 거로 보인다.”(박원호 교수) 이 때문에 당내 경선에서 각 당은 부동층을 향한 확장성이 있는 주자보다 강력한 지지층을 가진 후보를 ‘전략적’으로 택했고 그 결과가 ‘비호감 경쟁’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윤석열과 이재명, 두 후보 모두 당내 조직이 약한 아웃사이더인 탓에 차기 지방선거와 총선에서 공천권을 휘두르기 어렵단 점에서도 ‘현상유지’에 맞춤한 주자들이었다는 게 박원호 교수의 부연 설명이다. 대선은 다양한 이해관계와 묵은 갈등이 튀어나오고 드러나는 장이어야 한다. 김윤철 교수는 “이번 대선에서는 사회적 갈등 해소 방안을 주로 다뤄야 했다. (코로나19 이후) 고통분담 방안과 함께 그 과정에서의 사회적 합의, 신뢰 기반 조성 문제에 대해서도 말했어야 한다”고 돌아봤다.하지만 양극 구도에서 선거는 공동체의 미래담론을 키워내지 못했다. 박근혜 탄핵과 촛불정국으로 열린 제19대 대선은 ‘소득주도 성장’과 ‘적폐 청산’이 지배했고 박근혜가 당선된 제18대 대선에선 ‘경제민주화’라는 선 굵은 의제가 제시됐다.

국민 다수가 동의하든 동의하지 않든 제17대 대선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은 ‘한반도 대운하’를, 제16대 대선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은 공공기관 이전을 비롯한 ‘지방분권’을 약속해 당선됐다. 제20대 대선이 끝난 자리엔 이재명의 ‘소확행’ 공약과 윤석열의 ‘심쿵약속’이 남았다. ‘탈모약 건강보험 적용’ ‘사병 월급 200만원’ ‘수능 응시료 세액공제’ 등이다. 김형준 교수는 “공약 자체에 동의하냐를 떠나 이런 공약들을 에워싸는 더 큰 비전이 없다는 게 한계다. 지금 우리 앞에 4차 산업혁명, 미-중 패권전쟁, 북한 미사일, 오미크론 대응 등 얼마나 무거운 의제가 많은가. 여기에 대해 치열하게 논쟁을 벌이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김준석 교수는 “여당은 여당대로 부동산정책 실패라는 방어하기 어려운 정책 실패의 귀책 사유로 인해, 야당은 야당대로 리더십 부재로 정책선거를 하지 못하고 후보 간 도덕적 흠결을 찾는 선거만 펼쳤다. 하지만 이후의 대선이 지금보다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이 별로 없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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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이 ‘친형 강제입원’과 관련해 허위사실 공표 혐의를 받은 이재명 경기도지사에 대해 무죄 취지로 판결했다. 2020년 7월16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이재명 지사 지지자들이 무죄 취지 파기환송 판결이 내려진 직후 환호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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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룰 수 없는 과제, 정치개혁


민주화 35년, 2022년 한국의 민주주의는 다시 제로그라운드에 섰다. “증오와 적대의 정치에서 책임을 공유하는 정치로의 전환은 어떻게 가능한지 물어야 할 때다. 그러나 정치하는 사람 가운데 아무도 그런 고민을 하지 않는다. 다름과 차이가 선용되는 다원민주주의 국가론이 필요하다.”(박상훈, ‘정치 없는 민주주의’)더는 정치개혁을 미룰 수 없는 때라는 지적이 나온다. ‘0.73%포인트’의 득표율 격차가 타당성을 더한다. 하지만 정치개혁은 사회적 동의가 필수적이다.

민주당이 선거에 앞서 △국무총리 국회 추천제 등 통합정부 구성 △위성정당 방지를 기본으로 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와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 △대통령 4년 중임제와 대선 결선투표제 도입 등을 당론으로 채택했지만 집권당이 아닌 이상 탄력을 받기 어렵다. 김윤철 교수는 “정치 양극화 해소 방안을 추진할 정치사회적 합의와 신뢰 기반이 미약하다. 이를 어떻게 조성할지 먼저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정치학자들은 안철수 후보의 막판 단일화도 그런 의미에서 시민들에게 안 좋은 시그널을 주는 아쉬운 결정이라고 봤다. “안 후보는 지난 10년 동안 다당제를 말하면서 합당, 탈당, 연대, 단일화를 반복했다. 이번 합당 선언으로 양당제에 회귀하면서 정치개혁에 대한 국민의 효능감을 떨어뜨렸다.”(이준한 교수) “실제로 국민의힘 표에 도움이 됐느냐보다 중도정당으로서 가진 좌표를 안 후보가 포기하면서, 향후 정당체제에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한다.”(문우진 교수)

‘제왕적 대통령’과 ‘식물 대통령’은 한 끗 차이다. 180석 야권을 ‘패싱’하고 새 정권이 착수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박원호 교수는 “짧은 현대사에서 의회가 대통령을 두 명이나 탄핵한 나라가 아닌가. 국회의 ‘백업’이 없는 한국 대통령제는 그다지 제왕적이지 않다. 새 대통령도 어떤 형태로든 야권과의 거버넌스(협치)를 꾸려나갈 방법을 찾을 수밖에 없을 듯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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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7월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에서 한국대학생진보연합 소속 대학생들이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참배에 반대하며 기자회견을 열자 윤 전 총장의 지지자들이 회견을 막아서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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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적’이라는 착각


‘선거의 여왕’ 박근혜는 2017년 탄핵으로 정치생명을 끝냈다. 선거마다 거푸 패배하던 민주당은 2016년 총선부터 2017년 대선, 2018년 지방선거, 2020년 총선까지 내리 4연승을 거뒀다. 촛불의 찬란한 빛에 의지한 정권은 ‘무적’이라는 착각과 오만에 빠졌다. 그리고 5년 만인 2022년 저지당했다. 정치엔 영원한 승리도 영원한 패배도 없다. “지금 승리하는 사람은 항상 무적처럼 보일 것이다.” 작가 조지 오웰의 말이다. 정치신인 윤석열이 기억해둘 만한 말이다.

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

참고 문헌

<좀비 정치>(강준만·인물과사상사)

<시민정치의 시대>(송호근 외·나남)

<누가 누구를 대표할 것인가>(문우진·후마니타스)

<위험한 민주주의>(야스차 뭉크·와이즈베리)<대통령의 권력>(리처드 E. 뉴스타트·다빈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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