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조지아 사태의 반복이냐 2015년 시리아 내전 개입으로 인한 비극의 재연이냐.’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 블라디미르 푸틴 정권의 의도와 전술을 이해하는 데 조지아·시리아에서 러시아의 행보가 시사점을 주고 있다. 조지아는 침공 과정과 목표가 우크라이나 때와 유사할 뿐 아니라, 친러시아 세력이 존재하는 동유럽 다른 지역으로까지 파급효과가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도시 포위작전을 벌이면서 러시아의 개입 이후 민간인 수만명이 숨진 시리아의 비극이 되풀이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우크라이나 교두보로 몰도바 등 동유럽 노릴 가능성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푸틴이 “조지아 때의 각본을 따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올 만큼, 2008년 8월 조지아 침공 당시와 여러모로 유사하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정부가 동부 돈바스 지역 주민들을 대량학살하고 있다는 거짓주장을 한 것처럼, 당시에도 조지아 북부의 분쟁지역이던 남오세티야 주민 보호를 명분으로 내걸었다. 대규모 군사훈련 이후 병력을 철수하는 것처럼 하다가 전격 침공한 것도 마찬가지다. 푸틴이 돈바스 지역의 도네츠크·루한스크 인민공화국의 독립을 승인한 뒤 발표한 문서가 2008년 압하지야·남오세티야 독립 승인 당시 문서와 형식과 내용 면에서 사실상 똑같다는 지적도 나왔다.
친서방 성향인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정부의 교체를 노리고 있다는 점도 비슷하다. 당시 러시아는 미국 등에 공개적으로 미하일 사카슈빌리 조지아 대통령의 축출 필요성을 언급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수도 키이우(키예프) 방어에 성공하더라도 이미 러시아군이 남부와 동부 도시를 점령한 만큼 우크라이나 내 친러-친서방 정치 갈등이 고조될 수 있다.
특히 조지아 사태 당시 서방으로부터 아무런 저지를 받지 않은 러시아가 2014년 크름반도(크림반도) 강제합병, 2014년 이후 돈바스 내전, 2022년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거침없이 나아갔다는 점에서 ‘도미노 효과’를 우려하기도 한다. 세르기 카파나드제 조지아 일리아주립대 교수는 최근 유럽정치분석센터(CEPA)에 기고한 글에서 친러 자치 공화국 트란스니스트리아가 있는 몰도바, 러시아인들이 집단 거주하는 에스토니아 나르바 지역, 친러 국가 벨라루스와 발트해 연안의 러시아 영토 칼리닌그라드와 국경을 접한 리투아니아 등이 다음 타깃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나 조지아군이 5일 만에 항복한 것과 달리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인의 강력한 저항에 밀려 예상 외로 고전하고 있다. 천연자원이 풍부하고 농업 및 산업 경쟁력이 있는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에 조지아보다 전략적 가치가 크다는 점도 다르다. 미 싱크탱크 중동연구소는 “푸틴이 군사적 비용을 치르더라도 우크라이나를 차지해 장기적인 경제 이익을 확보하려 할 수 있다”며 “게다가 지금 푸틴은 1950년대 스탈린처럼 고립되고 편집증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민간인 대량살상 비극 재연 우려
군사적 측면에서는 러시아가 2015년 시리아 내전 당시 벌인 도시 포위·고립 작전, 민간인 살상 등이 우크라이나에서도 재연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푸틴 대통령이 바샤르 알 아사드 정권을 지지하며 시리아 내전에 개입한 이후 러시아군은 시장, 병원, 학교 등을 가리지 않고 폭격을 퍼부었고 화학무기를 사용했다는 의혹까지 제기됐다. 특히 2016년 시리아 제2도시 알레포에서는 러시아군의 지원을 받은 정부군의 포위 작전으로 민간인 수만명이 사망했다.
포린폴리시는 러시아가 시리아에서처럼 우크라이나 주요 도시를 하나씩 포위하며 물자 이동 통로를 봉쇄하고 민간인 살상을 저지르면서 협상의 초점이 분쟁 종식이 아니라 구호 활동가의 이동 보장이나 민간인 대피 통로 확보 등으로 옮겨가게 만들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2011~2014년 시리아 주재 미국 대사를 지낸 로버트 포드는 최근 NPR에 “러시아인들은 민간인 표적을 타격하는 데 주저하지 않고, 이에 대해서 끊임없이 거짓말을 한다”며 “체첸을 포함해 (민간인 겨냥은) 그들의 각본에 있기 때문에 우크라이나에서도 이를 활용할 때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우크라이나에서도 러시아가 민간인 대량 살상 위험이 높은 집속탄과 진공 폭탄을 사용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그나마 시리아 내전 때와 달리 아직까지는 서구가 우크라이나 사태를 외면하지 않고 있는 것은 차이점이다.
내전으로 여전히 잿더미 상태인 시리아 북서부 비니시의 한 마을에는 지난달 말 우크라이나 지도 모양의 벽화가 등장했다. 전쟁을 일으킨 푸틴을 꼬집고 우크라이나인들에 대한 연대의 뜻을 담은 그림이다. 벽화를 그린 청년 아지즈 알 아스마르는 알자지라에 “시리아 정권과 시리아의 동맹 러시아는 지난 11년간 우리 집을 폐허로 만들었다”며 “우크라이나에서 지금 벌어지는 일은 러시아의 (시리아) 정책의 연장선이며, 국제사회가 단결하지 않으면 결코 멈추지 못할 것이다”고 말했다.
시리아 이들리브주의 비니시 마을에서 청년들이 그린 우크라이나 지지 벽화가 서 있다. AF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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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진 기자 yj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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