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1.24 (일)

이슈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

‘523호 법정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대장동 재판 당분간 공전 [법조 Zoom In/대장동 재판 따라잡기⑦]

댓글 1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대선 전 불리한 증언 피하기 위한 지연작전” 분석도

《경기 성남시 대장동 개발사업 특혜 및 로비 의혹과 관련해 1월 10일부터 본격적인 재판이 시작됐습니다. 이 사건은 당시 성남시장이었던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가 대권 도전에 나서면서 본격적인 의혹이 불거졌습니다. 동아일보 법조팀은 대선 결과와 관계없이 이 사건에 대한 기록을 역사에 남기기 위해 매주 진행되는 재판을 토요일에 연재합니다. 이와 함께 여전히 풀리지 않은 남은 의혹들에 대한 취재도 이어갈 계획입니다.》

“정식으로 공판절차 갱신을 한다면 원칙적으로 (이전 공판 내용) 녹취파일을 재생해서 법정에서 청취하는 형태만이 현재 법령상으로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동아일보

24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부장판사 이준철) 심리로 523호 법정에서 열린 ‘대장동 개발사업 특혜 의혹 사건’ 8차 공판에서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사장 직무대리 측 변호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날 공판은 법원 정기인사로 재판부 구성원이 이준철 부장판사(50·사법연수원 29기)와 남민영 판사(35·42기), 홍사빈 판사(34·44기)로 모두 바뀐 뒤 열린 첫 재판이었습니다.

형사소송법에 따라 재판부 판사가 바뀔 경우 판결 선고만을 남긴 경우를 제외하고는 반드시 ‘공판절차 갱신’을 해야 합니다. 대법원 형사소송규칙은 공판절차 갱신을 위해서는 재판장이 이전 증인신문 내용 등 이전 공판에서 이미 조사했던 증거도 다시 한 번 법정에서 조사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사실상 처음부터 재판을 다시 해야 한다는 겁니다.

이런 원칙에도 불구하고 재판부가 바뀔 때마다 매번 앞선 재판 절차를 그대로 되풀이하는 건 아닙니다. 형사소송규칙이 검찰 및 피고인 측이 동의할 경우에 한해 ‘상당하다고 인정하는 방법’으로 공판절차 갱신을 위한 증거조사를 진행할 수 있도록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건은 법정에서 지난 증거조사 내용을 간단히 짚고 넘어가는 등의 방식으로 공판절차 갱신이 이뤄집니다.

그런데 이 사건에서 정영학 회계사를 제외한 4명의 피고인 측 변호인들은 이날 원칙대로 공판절차 갱신을 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습니다. 재판부가 재고를 요청했지만 뜻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결국 재판부는 “한 명의 피고인이라도 동의해주지 않으면 현실적으로 법령에 규정된 대로 갱신절차를 밟을 수밖에 없다”며 이를 받아들였습니다.
● “녹취파일 틀어야” 1월 중순으로 되돌아간 재판

이날 피고인 측은 원칙적인 방법으로 공판절차 갱신을 해야 하는 이유를 크게 두 가지로 들었습니다. 첫째는 기존 증거에 대한 검찰과 피고인 측 판단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상황이라 구성원이 모두 바뀐 재판부의 판단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17일 검찰이 추가로 신청한 증거의 양이 너무 많아서 검토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동아일보

남욱 변호사 측은 “검찰이 추가 신청한 방대한 양의 증거는 기소 단계에서 다 제출할 수 있었던 것”이라며 “변론 준비하기가 정말 힘들고 아주 열악한 상황”이라고 불만을 나타냈습니다. 유 전 직무대리 측도 “추가 신청 증거들이 어떤 내용이고 무슨 내용을 담았는지 파악하지 않고서는 증인신문은 물론 증거 인부조차 재검토해야 할 상황”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들은 원칙적인 방법은 구체적으로 법정에서 지난 재판에서 이뤄진 증인신문의 녹취파일을 재생하는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유 전 직무대리 측은 “지금까지 진행된 증인신문 녹취 파일이 조서의 일부로 작성된 상태이기 때문”이란 근거를 들었습니다. ‘대장동 5인방’ 중 유일하게 혐의를 모두 인정하는 입장인 정영학 회계사 측만이 “녹음된 파일을 전부 재생하는 방법으로 절차를 갱신하는 것은 비효율적”이라는 의견을 냈습니다.

재판부는 오전에 이 같은 피고인 측 의견을 듣고 “피고인 입장에서 절차 하나하나 중요하지 않은 부분이 없으리란 건 충분히 이해한다”면서도 “최대한 집중적으로 심리를 진행하는 게 맞다는 생각이고 협조를 부탁드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다시 생각해보고 오후에 다시 의견을 달라”고 말했습니다.

오후에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다만 피고인 측은 앞서 증인신문을 마친 총 8명의 증인 중 성남도시개발공사 직원 등 5명에 대해서만 녹취파일을 재생하는 걸로 하자는 ‘성의’를 표시했습니다. 유 전 직무대리 측 변호인은 “재판장이 말씀하신 대로 최대한 신속하게 재판을 진행하실 필요성이 있다는 점에 공감한다”며 “절차가 진행되는 시간 동안 최대한 추가증거에 대해 검토해 증거인부를 마치겠다”고 말했습니다.

동아일보

결국 이날 오후에는 지난달 17일 2차 공판에 출석했던 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사업2팀장 한모 씨에 대한 증인신문 녹취 파일이 재생됐습니다. 오전에는 지난달 10일 첫 공판에서 진행됐던 피고인 진술거부권 고지와 인정신문, 검찰 및 피고인 측 모두진술이 다시 진행됐습니다. 당초 예정됐던 증인신문을 위해 법원에 온 김민걸 회계사는 증인으로 출석하지 못하고 그대로 귀가했습니다.

이에 따라 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에 비유하면 523호 법정의 시간은 거꾸로 당분간 가게 됐습니다. 일각에선 이들이 대선을 앞두고 특정 후보에게 불리한 증언이 나오지 않도록 지연작전을 쓰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옵니다.
● 檢, “재판 지연과 구속기간 도과가 목적” 반발

검찰은 녹취를 재생하는 방식의 공판절차 갱신에 대해 반대했습니다. 검찰은 형사소송법과 형사소송규칙 각 조항을 조목조목 거론하며 “(녹취를 재생하지 않더라도) 재판장께서 상당한 방법으로 요지를 고지하면 갱신절차가 되는 걸로 이해한다. 원활하고 신속한 재판 진행을 위해 그런 방법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냈습니다. 피고인 측이 불만을 표시한 추가 증거에 대해서도 “대부분 기존에 제출된 증거라 신규로 검토할 증거는 그렇게 많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형사소송법이나 규칙에 관한 내용은 재판부도 검토했다”며 “(피고인 측이 상당한 방법에 동의하지 않아) 정식으로 증거조사를 해야 한다면 녹취파일을 재생하는 것이 맞다는 것이 재판부 판단”이라고 밝혔습니다. 다만 녹취파일 재생 배속을 빠르게 하고, 다음주까지 최대한 기일을 연달아 잡아 공판절차 갱신을 빨리 끝내기로 했습니다.

이날 3시간가량 녹취 재생을 마친 뒤 검찰은 작심한 듯 다시 한 번 불만을 표시했습니다. 검찰은 “일부 변호인이 전후 맥락없이 오로지 재판 지연과 구속기간 도과만을 목적으로 하는 변론을 해 우려된다”며 “(녹취를 재생하기로 한 8명 중 5명의) 증인 선별 기준이 납득이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검찰은 “소송지휘권을 사실상 변호인이 행사하는 게 아닌가”란 말까지 꺼냈습니다.

지난달 한 씨에 대한 증인신문은 두 차례 공판기일을 꼬박 채워 이틀 간 진행됐습니다. 검찰의 주장은 원칙대로 하자면서 일부만 고르는 것도 이해가 안 되고, 일부러 한 씨처럼 녹취 재생 시간이 오래 걸리는 증인을 택한 게 아니냐는 겁니다. 재판부는 “규칙 상 피고인 측 의사에 따라 할 수밖에 없다”며 “최대한 재판을 신속하게 진행하겠지만 피고인의 방어권을 충분히 보장하는 것도 재판부의 의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처럼 검찰과 피고인 측은 이날 내내 치열한 신경전을 벌였습니다. 재판부는 재판 말미에 “사건의 실체 규명에 있어서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 부분에 날을 세우거나 열정을 쏟는 것은 지양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며 “사건을 충분히 잘 심리하고 좋은 판단을 내리기까지도 굉장히 바쁜 상황에서 다른 것으로 시간을 소요하기가 너무 아깝다. 유념하고 도움을 줬으면 한다”는 당부의 말을 남겼습니다.

다음 날인 25일 열린 9차 공판에서는 한 씨의 증인신문 녹취를 모두 재생하고 지난달 24일 진행된 성남도시개발공사 직원 이현철 씨의 녹취 재생이 이어졌습니다. 재판부는 휴일인 다음 달 1일을 빼고는 28일부터 연달아 기일을 잡아 다음주 안에 공판절차 갱신을 마치겠다고 예고한 상태입니다. 이에 따라 새로운 증인의 출석은 아무리 일러도 3월 7일 이후부터나 가능할 것으로 보입니다.

김태성 기자 kts5710@donga.com

ⓒ 동아일보 & donga.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