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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4 (일)

이슈 차기 대선 경쟁

닭·고라니·고래는 투표권이 없지만, 이들을 위해 공약을 낸 대선 후보..."동물권을 헌법에 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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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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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소득당 관계자들이 지난 21일 청와대 사랑채 앞에서 동물권 관련 공약을 낸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가운데가 기본소득당 오준호 대선 후보. 기본소득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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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고라니·고래 등 동물에게는 투표권이 없다. 하지만, 이들 동물은 지구, 아니 대한민국의 영토를 사람과 공유하고 있다. 이들 동물의 입장에서 보면, 사람이 지배하고 있는 이 세상에 대해 요구할 것이 많을 수 있다.

하지만, 이번 대통령선거에 나선 유력 후보 중 동물권을 얘기하는 경우는 없다. 대부분이 사람을 위한 것이고, 그나마 찔끔 들어가 있는 것도 반려동물과 관련된 것이다.

“닭, 고라니, 도요새, 밍크고래와 함께하는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기본소득당의 오준호 대선 후보가 동물과 함께 하는 대통령이 되겠다면서 동물권과 관련된 공약을 내놔 관심을 끌고 있다.

기본소득당은 “20대 대선은 ‘멸종위기’, ‘생태위기’를 극복할 대선이 돼야 한다”면서 “공존의 길을 열어갈 대안들을 다양한 목소리를 통해 전하겠다”고 밝힌 뒤 “지구의 주민인 모든 동물과 지구생명체를 대변하는 공약을 제시하라”고 각 정당에 촉구했다.

기본소득당은 “현재의 대통령 선거에서 동물권·생태 이슈는 실종됐다”며 “양당 후보들은 반려동물 공약을 내세우며 동물친화적인 듯 행세하지만, 실제로는 동물 이용 산업을 증진시키는 공약, 생태계를 파괴하는 토건 공약, 핵발전 공약 등 수많은 종과 생명체들을 파멸로 밀어 넣는 공약들을 발표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기본소득당 관계자들은 지난 21일 청와대 사랑채 앞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고라니, 닭, 밍크고래 등의 모습을 한 가면을 쓰고 나와 동물들의 절절한 목소리를 전했다.

■동물들이 대선을 앞두고 쏟아낸 말들

먼저 닭이 등장했다.

“태어나 집 밖으로 나가본 적이 없어서, 닭이 아닌 다른 누군가와 이야기하는 게 사실 처음이에요. 요새 사람들 사는 곳이 너무 작고 열악해서 문제라면서요. 얼마 전에 (양계장)직원이 하는 이야기를 엿들었어요. 고시원이라던가. 사람들이 사는 케이지(좁은 닭장)의 이름인가 보죠. 저도 너무 좁고 열악한 곳에서 살고 있어서 공감이 되더라고요. 저는 다섯 명의 동료와 함께 케이지를 공유하고 있어요. 안 그래도 좁은 곳인데 여섯이 함께 사니까 날개는 펼쳐볼 수도 없죠. 여름이면 진드기가 몸을 물어대는데 털어낼 수도 없고 정말 괴로워요. (중략)나는 밥이 나오면 밥을 먹고 알을 낳으면서 양옆으로 끝이 보이지 않도록 많은 동료들과 함께 머리만 내어놓고 매일 그렇게 살아요. 단 한 번이라도, 이 케이지를 나가 날개를 펼치고 맑은 공기를 마시며 마음껏 뛰어보고 싶어요.”

닭은 또 간절하게 요구했다. “자신은 물건과 고기가 아니라면서 공장식 축산을 폐지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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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의 모습을 한 가면을 쓰고 나온 기본소득당 관계자가 좁은 닭장(케이지)에서 겪는 고통스런 삶을 호소하고 있다. 기본소득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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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이어 고라니가 나왔다.

“나는 멸종위기종이자 유해조수인 고라니입니다. 고라니는 국제적 멸종위기종으로 보호를 받고 있어요. 그런데 한국에서는 농작물에 피해를 준다는 이유로 유해조수로 분류돼 있고, 어떤 지자체에서는 포획을 장려하고 사로잡거나 죽인 고라니에 대해 포상금을 주기도 했어요. 인간들은 야생동물들이 사는 자연서식지를 마구잡이로 개발해 농사를 짓거나 인간들이 사용하기 위해 자연생태계를 파괴하고 깊은 산에도 길을 내서 숲에 사는 많은 동물들의 생명을 위협합니다. 해마다 많은 야생동물들이 로드킬로 죽습니다. 그 중 우리 고라니가 가장 많습니다. 우리도 행복하게 살고 싶어요. 우리가 사는 땅을 조각 내지 마세요. 우리도 지구를 함께 공유하는 주민입니다. 나, 고라니도 이 지구 생태계에서 생명의 위협 없이 행복하게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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밍크고래 모양의 가면을 쓴 사람이 밍크고래가 겪는 절박한 상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기본소득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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밍크고래도 빠질 수 없었다.

“나는 밍크고래입니다. 남방큰돌고래, 상괭이, 백령도점박이물범, 참돌고래, 낫돌고래, 줄박이 돌고래 등도 그렇지만 저도 곧 바다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지경으로 내몰리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의도한 듯 아닌 듯 우리를 그물에 가두고, 숨을 쉬지 못하고 질식해 죽은 우리의 몸을 두고 경매에 부칩니다. 나의 몸과 죽음은 ‘바다의 로또’로 여겨집니다. 숨이 끊긴 우리의 몸은 조각조각 해체 되어 비싼 가격에 팔린다고 합니다. 하지만 인간은 모르나 봅니다. 우리의 죽음이, 우리의 죽음으로 인한 멸종이 모두의 파멸로 향하는 길이라는 것을.(중략) 한 해 동안만 해도 혼획으로 그물망에 걸려서 죽는 고래가 무려 1960명(마리)입니다. 너무 많은 것을 먹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우리의 씨를 말리고 있습니다. 인간은 바다를 인간의 곳간으로 여기지 말고 제발 가만히 놔두십시오.”

■‘동물권을 헌법에 명시한다’...기본소득당이 내놓은 동물권 공약

기본소득당 오 후보는 동물권과 관련된 공약을 집중적으로 내놨다. 오 후보는 우선 동물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동물과 자연의 권리, 공존의 가치를 헌법에 명시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동물도 소송의 당사자가 되어 소송을 수행하고 판결을 받을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하겠다고 공약했다.

그는 동물의 권리를 가르치는 교육프로그램을 정규교육과정에 포함시키겠다는 공약도 내놨다.

그는 또 공장식 축산의 중단과 탈육식을 위한 로드맵을 구축하겠다고도 밝혔다. 그 로드맵에 개식용 금지가 들어있는 것은 물론이다.

기본소득당 관계자는 “동물과 자연의 정치적·법적 권리 보장, 축산동물 권리 보장, 야생생물 권리 보장, 해양생태계의 권리 보장, 공존을 위한 기후위기 대응 등을 정치권에 강력하게 요구한다”고 밝혔다.

윤희일 선임기자 yh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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