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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6 (화)

이슈 러시아, 우크라이나 침공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나토 가입 문제 삼기는 핑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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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올레나 쉐겔 한국외대 교수 인터뷰

“푸틴의 야심과 내부 불만 해소가 본질”

“크림반도 병합 후 사실상 8년째 전쟁 중”

“20분이면 러시아 탱크부대가 국경까지”

“돈바스 지역 충돌 침공 빌미 삼을까 우려”

경향신문

올레나 쉐겔 한국외대 교수가 17일 경기 남양주의 한 카페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 우철훈 선임기자


“어제 어머니께 우크라이나를 왜 떠나지 않으시냐고 물으니 ‘여기는 우리 땅이다. 끝까지 있겠다’면서 눈물을 흘리시는 걸 처음 봤다.”

올레나 쉐겔 한국외대 우크라이나어과 교수(41·사진)는 17일 고국 우크라이나의 상황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고향에 있는 가족들을 생각하며 눈시울이 붉어졌다. 쉐겔 교수는 “우크라이나는 8년째 전쟁 중인 것과 마찬가지”라며 대다수의 우크라 사람들이 자신의 부모님과 같은 생각일 것이라고 전했다.

오랜 기간 동안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관계를 연구해온 쉐겔 교수는 이번 사태의 이면에는 소련 시절의 영향력을 회복하고, 국내의 정치적 불만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야심이 있다고 평가했다. 전면전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높지 않으나, 러시아의 의지가 없다면 외교적인 해법도 힘들다는 점에서 사태가 장기화될 가능성도 우려했다. 그는 향후 폴란드나 발트 3국까지 푸틴의 야심이 확장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우크라이나 현지 분위기는.

“우크라이나에선 미국이 D데이로 지목한 지난 16일 ‘단결의 날’이 선포됐다. 사람들이 길거리에서 전쟁을 반대하고 푸틴 대통령을 비난하는 시위를 했다고 들었다. 사실 우크라이나 입장에서는 2014년 크림반도 강제합병 이후 8년째 전쟁 중이나 마찬가지다. 워낙 오래 지속돼서 사람들에게 이런 상황이 새롭지 않다. 2014년에는 걱정되고 공황도 있었는데 지금은 차분한 듯하다. 해외에 있는 우크라이나인들 중에는 ‘전쟁나기 전에 조국에 돌아가자’는 이들도 많다. 우리 부모님께도 지난해 11월쯤 ‘상황이 가라앉을 때까지 한국에 오시라’고 하니 ‘우리가 왜 떠나나. 상황이 나아지면 가겠다’고 얘기하시더라. 다만 심리적으로는 타격이 없을 수는 없다. 어제 어머니와 영상으로 통화하는데 눈물을 흘리시는걸 처음으로 봤다. ‘여기는 우리 땅이다. 끝까지 있겠다’고 하시면서도 눈물을 보이셔서 맘이 아팠다. 아마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다 이럴 것이다. 내면적으로 지친 모습이 보인다.”

-실제 전쟁 가능성이 있다고 보나.

“전면전까진 벌어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이 일어났을 때 러시아를 포함한 당사자들이 잃을게 너무 많다. 러시아에는 전쟁을 원하는 국민도 별로 없다고 알고 있다. 경제적으로 좋은 상황도 아니고, 전쟁이 일어난다면 푸틴과 측근들의 자식이 아니라 국민들의 자식을 (전장에) 보내야 한다는 것도 안다. 암묵적으로 정권교체를 원하는 이들도 많다. 다만 현재의 러시아는 푸틴 혼자의 결정으로 전쟁을 벌일 수 있는 구조라서 매우 위험하긴 하다. 러시아는 최근 우크라이나 국경에서 6~7㎞ 위치에 있는 벨라루스의 한 강에 부교를 놓았는데, 이 곳을 통하면 우크라이나까지 20분이면 탱크부대가 지나갈 수 있다. 물론 압박용일 가능성도 있지만 우크라이나 입장에선 신경을 안 쓸 수 없다. 러시아와 벨라루스의 합동훈련이 끝나는 20일 이후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지 봐야할 것이다.”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의 조짐도 심상치않다.

“우크라이나가 도네츠크와 루한스크을 공격했다는 러시아 측 보도가 나왔는데 침공의 구실로 삼을지 매우 우려된다. 러시아 매체들은 이전부터 우크라이나가 이 지역을 공격할 준비를 하고 있다며 정부 개입이 필요하다고 주장해왔다. 우크라이나가 자신들을 먼저 공격한 것처럼 꾸미고 있는 것이다. 이런 공작이 이어진다면 전쟁을 일으키지 않더라도 러시아가 이 지역에 병력을 장기 배치할 가능성도 있다. 이러면 우크라이나에게 큰 압박이 되고 지역 정세도 불안정할 것이다.”

-이번 사태의 본질은 결국 무엇인가.

“크게 보면 대외적으로는 옛 러시아 제국이나 소련 시절의 영광을 되살리려하는 푸틴의 야심이 작용했다고 본다. 영토나 영향력을 소련 시절처럼 확장하고 싶어하는 것이다. 러시아는 예전부터 지정학적으로 우크라이나를 확보하지 않고는 제국이 될 수 없는 상황에 있었다. 슈퍼파워가 되려면 우크라이나가 필요한 것이다. 국내적 요인도 있다. 러시아에선 현재 푸틴의 장기 독재로 국민들의 불만이 커진 상황이다. 부패 스캔들을 비롯해 국내 문제가 산더미같이 쌓였다. 우크라이나 사태는 러시아 국민들의 불만을 이 곳에 돌리기 위한 측면도 있다고 본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푸틴이 리비아의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와 같은 운명이 될까 두려워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가입 추진을 문제삼고 있다.

“이번 상황이 고조되기 전에도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은 가능해보이지 않았다. 우크라이나에게 나토 가입은 외교정책의 방향성이자 장기적인 목표로서의 의미가 있지만 나토가 실제 우리를 받아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이것은 푸틴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추진을 문제로 삼는 것은 위기를 만들기 위한 핑계에 가깝다.”

-외교적으로 가능한 출구전략은 무엇인가.

“서방 국가들은 지금까지 미사일 배치 제한 등 여러 조건들을 제시하며 일종의 양보 의지를 보였다. 하지만 러시아는 지금까지 양보한 것이 없다. 협상이란 서로 양보해 접점을 찾는 것인데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으면 협상이 아니다. 결국 러시아의 변화 의지 없이는 출구 찾기가 힘들다고 본다. 전쟁에 따른 리스크를 감안하면 사태가 금방 진정될 것 같은데 푸틴 머릿 속에 있는 생각이 무엇인지 알기가 힘들다. 사실 푸틴이 지금 물러선다고 해도 몇주 혹은 몇달 뒤에 다시 일을 낼 수 있다. 푸틴이 러시아의 정권을 잡고 있는 한 위기 해결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우크라이나인들도 있다.”

-미국이나 유럽 국가들은 적절히 대응하고 있다고 보나.

“미국이 전쟁 가능성을 지나치게 강조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다만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아프가니스탄 사태에서 동맹을 버렸다는 얘기를 많이 듣지 않았나. 이번엔 자기 편을 끝까지 지키겠다는 모습을 보여주려는 취지일 수 있다. 미 정부 차원에서 우크라이나를 많이 지원하기에 상황의 위험성을 국민들에게 전달할 필요도 있을 것이다. 또 크림 사태 당시처럼 러시아의 행동을 가만히 보고있지 않을 것이란 메시지를 푸틴에게 보내는 취지도 있다고 본다.”

-우크라이나 내부적으로 돌아봐야 할 문제는.

“우선 부패를 차단해 힘을 키워야 한다. 우크라이나에선 국가예산을 쓰는 과정에 입찰 비리가 많아 안보는 물론 여러 분야에 악영향을 끼치기도 했다. 안보를 위협할 정도면 심각한 문제다. 한순간에 해결하기 힘들어도 사회적으로 활발한 노력이 이어져야 한다. 친러시아 세력들의 문제도 있다. 예전에 우크라이나 언론들 중에는 비공식적인 소유주가 러시아에 있는 경우가 많았다. 러시아가 배후에서 우크라이나 언론을 통제할 수 있었던 것이다. 지금은 나아졌지만 전쟁 가능성까지 거론되는 만큼 이런 친러 세력들은 규제돼야 한다.”

-이번 사태가 국제사회에 던진 의미가 있다면.

“러시아가 이번엔 우크라이나를 노렸지만 다음엔 폴란드나 발트 3국 등의 국가들도 위험할 수 있다. 시나리오는 늘 비슷하다. 친러시아 성향의 주민들이 많은 곳을 골라 독립국으로 인정해야 한다면서 침략 구실을 만드는 것이다. 발트 3국은 소련의 일부였고 폴란드도 소련의 영향권에 있지 않았나. 합병까진 아니라도 러시아의 영향권에 편입될 위험이 있다. 우크라이나 다음은 대만이 될 수 있다는 얘기도 있다. 미국이나 유럽이 이번 사태에서 러시아를 눈감아주면 중국까지 나설 수 있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 3차 세계대전은 말에 그치지 않을 수 있다. 어느 누구도 세계대전을 바라진 않겠지만 군사적 긴장이 계속되면 언젠가는 실수나 우연에 따른 충돌이 일어날 수도 있다.”

박용하 기자 yong14h@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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