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대통령 전두환씨를 비방했다는 이유 등으로 재판에 넘겨져 옥살이를 한 고인에 대해 42년 만에 죄가 없다는 재판부의 판단이 나왔다.
대구지법 제4형사단독 김남균 판사는 17일 전씨를 비방했다는 이유 등의 혐의(계엄법·반공법 위반)로 재판에 넘겨져 옥살이를 한 A씨(사망)의 계엄법 위반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A씨의 행위는 헌법을 수호해야 할 국민으로서 12·12군사정변 및 5·18민주화운동 당시 신군부의 헌정질서 파괴 행위에 저항하는, 민주주의 질서를 지키기 위한 정당행위였다”면서 “이는 위법성 조각 사유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즉 (A씨의 행동이) 범죄의 구성요건에는 해당하지만, 일정한 사유가 있다고 판단해 범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재판부가 판단한 것이다.
서울지방대법원에서 1996년 8월26일 열린 12·12 및 5·18사건 선고공판 법정에 서 있는 전직 대통령 전두환씨와 노태우 전 대통령. 경향신문 자료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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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재판부는 반공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는 “재심 사유가 없다”며 유죄로 인정하고, 원심과 같이 징역 3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A씨는 1980년 2가지 혐의로 기소돼 징역형을 선고받고 1년 동안 복역했다. 그는 출소 후인 1986년 숨졌다.
A씨(당시 40세)는 1980년 9월4일 오후 11시40분쯤 대구지역의 한 식당에서 지인 2명과 함께 술을 마시던 중 당시 국가원수인 전두환씨를 비방·모독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A씨는 “전두환은 별 2개에서 한 달 후에 별 4개를 달고 자기보다 선배가 있으나, 별 4개를 다는 것은 사전계획된 것이 아니냐”, “현 정부에서 하는 정치는 옳지 못하다. 이래서는 사람이 살지 못한다”, “실제로 정치는 김대중이가 해야 되는데 전두환이가 한다” 등이라고 언급했다.
또 A씨는 “이북에는 정치를 잘하기 때문에 김일성이 현재까지 정치를 하고 있으나 학생들의 데모도 없이 하고 있다”, “이북이 더 살기 좋다”, “나는 김일성을 좋아한다” 등이라고 말해 반국가단체 및 그 구성원을 찬양한 혐의도 받았다.
앞서 대구지검은 지난해 3월12일 ‘5·18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A씨의 유가족에게 재심 의사를 물어본 뒤 청구서를 접수했다. 이 법은 5·18민주화운동과 관련된 행위 또는 1979년 12월12일과 1980년 5월18일 전후로 발생한 헌정질서 파괴범죄 행위를 저지하거나 반대한 행위로 유죄 확정판결을 받은 경우 재심을 청구할 수 있다고 정한다.
법원은 지난해 11월2일 재심을 결정했다. 재판부는 A씨가 계엄법을 어긴 부분에 대해 재심 사유가 있다고 판단했다.
지난해 12월14일 첫 재판에 출석한 A씨의 아내 B씨(72)는 남편이 출소 직후 대인기피증에 걸리는 등 폐인처럼 지냈다가 숨을 거뒀다고 언급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B씨는 “사람이 현재 처한 상황이 나쁘다거나 비관적인 삶을 살고 있다면, 정부에 대해 반대할 수도 있다”면서 “(남편의 말은) 마음에서 우러난 게 아니라 그냥 하는 말이었다고 생각한다. 일반 서민이 술 마시다가 일어난 일이다”고 말했다.
백경열 기자 merc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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