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후략)'
1941년 '서시'(序詩)를 쓴 시인이자 독립운동가 윤동주(尹東柱)가 해방 직전인 1945년 2월 16일 일본에서 옥사했습니다.
1917년 12월 중국 길림성 화룡현 명동촌에서 태어난 시인은 명동학교와 평양 숭실중학교 등을 거쳐 연희전문학교 문과를 졸업했습니다.
중학교 때 처음 시를 발표한 데 이어 연세대 모태인 연희전문 2학년 때 소년(少年)지에 시를 발표해 문단에 정식으로 데뷔했습니다.
대학 시절 민족이 처한 현실을 눈을 뜨게 되고 자신의 시세계를 구축해나갔습니다.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한 뒤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는데요. 1942년 일본 도쿄 릿쿄대학 영문과를 다니다가 흉흉해진 도쿄 분위기를 피해 교토 도시샤대학 영문과로 편입했습니다.
윤동주는 유학중이던 1943년 7월 조선인 유학생이자 고종사촌인 송몽규와 함께 독립운동을 했다는 혐의(치안유지법 위반)로 일본 경찰에 체포됐습니다.
1944년 3월 징역 2년 실형을 선고받은 데 이어 다음해 2월 16일 후쿠오카(福岡)형무소에서 27세 나이로 요절했습니다.
사인은 뇌졸중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일본의 소금물 생체실험이라는 견해도 있고 사후 일본군에 의한 마루타, 생체실험설도 제기됐지만 불확실합니다.
2010년 윤동주의 재판 판결문이 공개됐는데요. 판결문에는 그가 '조선 민족의 실력과 민족성을 향상해 독립이 가능하게 한다.', '장래 대동아전쟁에서 일본이 패전하게 될 때 우수한 지도자를 얻어 민족적 무력 봉기를 결행해야 한다.'라고 하는 등 글에서 독립 의지와 저항 정신을 명확히 드러낸 것으로 돼 있습니다.
일제강점기 후반 양심적 지식인의 한 사람으로 인정받는 그는 연희전문 시절인 1941년 이후 작품들에서 삶에 대한 고뇌, 암울한 조국 현실에 대한 주제의식을 한층 더 강렬하게 표현했습니다.
유명한 작품인 '별 헤는 밤', '서시', '자화상', '참회록' 등도 이 시기의 작품들입니다.
사후인 1948년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출간됐습니다.
그는 본명 외에 윤동주(尹童柱), 윤주(尹柱)라는 필명도 사용했다고 합니다.
유해는 고향인 북간도 용정에 안장됐습니다.
정부는 1990년 그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했습니다.
그는 짧은 생애를 살았지만 특유의 감수성과 삶에 대한 고뇌, 독립에 관한 소망이 서린 작품들을 써 대한민국 문학사에 크게 기여한 문인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특히 1930년대부터 일제의 강압과 회유책으로 문인들의 절필과 변절이 심해져 1940년대쯤부터는 다수의 문인이 절필하거나 친일파로 변절했기 때문에 윤동주는 이육사와 함께 1940년대를 대표하는 민족시인으로 일컬어지고 있습니다.
유창엽 기자 김지효 크리에이터
yct9423@yna.co.kr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연합뉴스 앱 지금 바로 다운받기~
▶네이버 연합뉴스 채널 구독하기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