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적 만화가 꿈 접고 의대 진학
병원 개원 뒤 경험 소재로 그려
네이버웹툰 ‘도전만화’에 올리자
웹드라마 제안 오고 티빙에 편성
“이 시대 40대 애환으로 읽혀 다행
독자 몰입 방해될까 내 얼굴 숨겨”
웹툰 <내과 박원장>. 네이버웹툰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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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라? 민머리에 배가 불룩 나온 모습을 상상했건만, 보기 좋게 배반당하고 말았다. 지난 7일 서울 강남구 모처에서 남들 눈을 피해 접선한 장봉수(45) 작가는 웹툰 속 박원장의 모습과는 거리가 있었다. 네이버웹툰에 연재 중인 <내과 박원장>은 의사 출신 작가가 경험담을 녹여 그린 걸로 알려졌기에, 작가의 정체가 특히 궁금했다.
“신비주의를 의도한 건 아닌데, 어쩌다 보니 얼굴을 숨기게 됐어요. 의사가 의사 만화를 그린다는 사실이 알려지다 보니, 제가 완전히 드러나면 독자들의 몰입에 방해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얼굴 공개를 꺼린 장봉수 작가가 사진 대신 그려서 제공한 자화상. 싱크로율은, 음…, 독자들의 상상에 맡긴다. 네이버웹툰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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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이야기를 다룬 콘텐츠는 차고 넘친다. 드라마 속 의사들은 연애를 하고, 권력 다툼을 하고, 환자를 살리기 위해 열정을 불사른다. 웹툰·웹소설도 다르지 않아 <중증외상센터: 골든 아워>처럼 신의 경지에 이른 의술을 발휘하는 주인공이 인기다. 그런데 <내과 박원장>은 다르다. 어린 시절 티브이(TV) 속 멋진 의사를 동경한 박원장(이름이 원장이다)은 이를 악물고 의대, 인턴, 레지던트, 군의관 등을 거쳐 개원까지 했건만, 현실은 성인병 덩어리의 40대 머리 벗겨진 아저씨다. 허리가 아파 숙이지 못하는 할머니 환자의 발톱을 깎아주고, 레이저로 얼굴 점을 빼는 비보험 시술로 근근이 수지타산을 맞춘다. 화려한 줄만 알았던 의사도 알고 보면 짠내 나는 생활인이었던 것이다.
웹툰 <내과 박원장>. 네이버웹툰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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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장처럼 그도 어릴 때부터 의사를 꿈꾼 건 아니다. 부모님이 의대에 가라 하니 응당 그래야 한다고 믿었을 뿐이다. 그가 좋아한 건 만화였다. 만화책을 끼고 살았고, 독서실 가서 공부는 안 하고 만화만 그리다 온 적도 있다. 미대 진학을 고민하기도 했지만, 결론은 ‘의사 하면서 만화 그리면 되지’였다.
오산이었다. 의대생 때는 공부하느라, 인턴·레지던트 때는 몸이 세개여도 모자랄 판이라 만화는 꿈도 못 꿨다. 군의관 제대 뒤 봉직의로 근무할 즈음에야 짬이 났다. 만화 못지않게 좋아하는 바둑을 소재로 그려 2010년 바둑 사이트에 연재한 게 <바둑광 박부장>이다. 그때 만든 필명 장봉수는 자신의 성에다 프로바둑기사 서봉수 9단의 이름을 붙인 것이다.
“반응이 괜찮아서 자신감이 붙었지만, 1년 만에 그만둬야 했어요. 개원을 했거든요. 애들도 있고, 돈도 좀 모아야겠다 싶어서 개원을 결심하고는 전남 여수, 강원 인제, 제주까지 전국을 다 돌았는데, 개원 자리가 진짜 없더라고요. 결국 어느 시골에 병원을 열었죠.”
장봉수 작가가 웹툰 <내과 박원장> 작업을 하는 모습. 그는 아직 얼굴 공개를 원하지 않는다고 했다. 네이버웹툰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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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정도 적응하고 나니 만화가 너무 그리고 싶었다. 경험담을 콘티처럼 대충 그려 의사들끼리 보는 게시판에 올리니 반응이 괜찮았다. 아내에게도 보여주려고 평소 ‘조회수 0’인 자신의 블로그에도 올렸다. 그런데 그걸 누가 퍼가면서 재밌다는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2018년 병원을 접고 다시 봉직의가 된 그는, 개원의 당시 경험을 담은 <내과 박원장>을 그려 네이버웹툰의 아마추어 작가 등용문인 ‘도전만화’에 올리기 시작했다. 7화 만에 연락이 왔다. 웹드라마로 만들고 싶다는 것이었다. 승낙은 했지만,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지난해 7월 대반전이 일어났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티빙에 편성되고 이서진이 주인공으로 캐스팅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틀 뒤 네이버웹툰에서 연락이 왔다. 정식 연재 요청이었다. 꿈이 이뤄지는 순간이었다. 아내와 상의한 끝에 봉직의를 그만두고 전업 웹툰 작가가 되기로 했다. “믿고 응원해준 아내에게 감사하죠. 처음엔 수입이 의사 월급에 많이 못 미쳤는데, 이젠 유료 미리보기 수익 덕에 의사 때보다 많이 법니다.”
웹툰 <내과 박원장>. 네이버웹툰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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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서 하는 일이어도 결코 쉽지 않다. “직원을 3명이나 두고, 주말도 없이 매일 오전 10시에 작업실 가서 새벽 2시에 집에 오는데도 일주일에 한편 올리기가 힘들어요. 의사 때보다 업무량이 더 많아요. 그래도 재밌어서 버팁니다.”
독자들의 응원도 큰 힘이 된다. “의사에 관한 기사를 보면 댓글이 좋진 않잖아요. 그래서 저도 의사 만화는 그리고 싶지 않았는데, <내과 박원장>에는 공감해주시는 댓글이 많아서 힘이 납니다. 의사 얘기가 아니라 이 시대 40대 가장의 애환과 시대상을 담은 얘기로 읽히는 것 같아서 다행이에요.”
동명 웹툰을 시트콤으로 만든 티빙 오리지널 시리즈 <내과 박원장> 포스터. 티빙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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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빙 오리지널 시리즈 <내과 박원장>이 지난달 14일 공개되면서 웹툰에 대한 관심이 더 늘었다. “처음 이서진 배우가 캐스팅됐다고 들었을 땐 당황스러웠는데, 민머리 분장을 한 모습을 보고는 의외로 자연스러워서 놀랐어요.(웃음)” 12부작으로 만들어진 시리즈는 오는 18일 최종화를 공개한다.
그는 웹툰의 마지막 44화까지 모두 스토리를 짜놨다고 했다. 결말을 알려달라고 하니 “스포는 안 된다”고 했다. 7월께 연재를 마치고 나면, 차기작으로 바둑 만화를 그리려고 구상 중이다. 바둑 천재 소녀가 강호의 고수들을 물리치는 이야기다. “웹툰 독자 연령대가 낮아서 바둑 만화가 될지 모르겠네요. 그래도 제가 좋아하는 걸 마음껏 펼쳐보렵니다.”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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